점심을 먹기 전에 아내와 함께 산책에 나섰다.
비가 오고 있었다.
큰 우산을 들고 나갔다.
어제는 뒷동산 꼭대기까지 올라갔었는데 작고 낡은 우산을 가지고 갔었다.
꼭대기 까지 올라가는 동안에는 비가 오지 않았었는데 꼭대기에 다다르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참새들이 비 맞는 것을 싫어하는지 모두 나무 밑으로 재잘거리며 피신하였다.
우리도 비를 피하여 흰 바탕에 빨간 줄이 쳐져있는 금줄을 넘어 정자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비가 약간 들여 쳤지만 견딜 만 했다.
비 내리는 서울 시내를 굽어보는 운치가 제법이었다.
산을 내려오는 동안에 아내의 팔뚝이 모두 젖어버렸다.
아내가 투덜댔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아무래도 내가 우산을 들어서 그런지 내가 비에 덜 맞은 모양이었다.
오늘은 큰 우산을 써서 둘이 모두 비를 맞지 않았다.
그런데 우산이 너무 무거워서 팔이 아팠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계속 바꾸어가면서 산책을 마치었다.
점심을 먹고 나자 딸애가 말했다.
“아빠, 에스프레소 한잔 하실래요?”
얼마 전에 우리 동네에 있던 편의점이 우리 아파트 근처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그 편의점이 있던 자리에 카페가 생겼다.
편의점이 있던 자리가 부수어 지고 새롭게 단장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들은 무슨 가게가 생길까 하고 호기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다.
넓은 통 유리가 전면과 측면을 감싸면서 가게는 차츰차츰 모습을 갖추어갔다.
그것을 보고 딸애가 예측하였다.
“고급 카페가 생길 것 같아요.”
단돈 천원이면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실 수 있는 우리 동네인데 고급카페라니?
딸애는 얼마까지면 그 집에서 커피를 마실 것인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삼천 원이라고 답했다.
얼마 후에 그 집에서 파는 아메리카노 한 잔 값이 사천 원이라고 딸애가 말해주었다.
딸애와 마누라가 탐색 차 먼저 그 집에 다녀왔다.
남자종업원들이 미모를 기준으로 뽑았는지 모두 아이돌 수준이라고 노처녀인 딸애가 말하였다.
나도 기회가 되면 한번 가보겠노라고 말을 해주었다.
나는 본전을 뽑기 위하여 가게를 여는 순간에 들어가서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거기에 머물겠노라고 덧붙였었다.
그 집은 문을 연 이후에 계속 손님들로 북적였다.
우리가 갔을 때에도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빈자리가 없어 보였다.
딸애가 서성이는 사람들은 QR코드를 찍는 사람들이라고, 자리가 비었는지 본다고 창 쪽으로 갔다 오더니 자리가 있다고 하였다.
아내는 아메리카노, 나는 에스프레소, 딸애는 무언가를 주문했다.
넓은 통유리를 통해서 비오는 바깥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그냥 괜찮았다.
나름 나 자신이 멋있어 보였다고나할까?
이 가게가 계속 잘 되기를 바라면서 커피를 마셨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우리 동네의 가게들이 파산하여 부수어졌던가?
그 광경을 보면서 늘 가슴 한쪽이 아렸었다.
커피 맛은 잘 모르지만 스페인의 미하스에서 마셨던 에스프레소의 맛과 동일한 맛이라고 느꼈다.
누군가는 우리 동네를 60년대의 달동네 같다고 폄하한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 동네는 계속하여 좋아지고 있다.
우리 동네가 좋아지면서 이런 고급카페도 분명히 성공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나는 우리 동네의 뒷동산 꼭대기를 이스탄불의 피에르 로티 언덕으로 여기며 그 밑의 골짜기를 샹그릴라라고 생각한다.
사실 뒷동산에서 바라보는 서울시내의 풍경이 피에르 로티 언덕에서 바라보는 보스포루스해협의 경치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또한 소설 속에 있는 샹그릴라가 푸른 달 골짜기에 있고, 우리 동네의 명칭이 달 골짜기인 것은 엄연한 진실이 아닌가?
조리대에서 젊은 청년이 와플에 둥그런 아이스크림덩어리를 얹어놓았다.
그것을 보는 순간 아내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딸애가 말리면서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엄마가 또 먹는 것에 꽂혔어.”
그 아이스크림에 브라운 치즈를 갈아서 덮는 순간 또 다시 아내가 일어서려고 하였다.
이번에는 내가 아내의 손을 잡았다.
“다음에 꼭 사줄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