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름 똑똑하다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고 그리고 늘 속고 산다.
하지만 속아서 분한 정도는 그 환경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난다.
스스로에게. 상대에게.
비가 추적거리는 날 여느 때와 같이 새벽길을 나섰다.
희뿌옇게 밝아오는 여명 속에 가로등 불빛도 비에 젖은 듯 촉촉하다
아직 인적은 평소보다 한산하고 쓰레기차에서 뛰어내린 미화원만 분산하다.
턱 괴고 멍하니 바라보는 도로는 빈 도화지 같은데
비 맞은 강아지 궁상스레 지나가는 트럭 아래에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
무심한 풍경에 갑자기 쓴웃음 짓는다.
왜 내가 강아지 같을까.
본능의 차이라 보기에는 너무 대조적이고 우리네 인생사도 별반 없을 것 같다
저 고양이 같이 약게 살거나. 저 강아지처럼 궁상스럽게 살거나.
모두 서로를 보는 생각의 차이지만.
그러고 보니 벌써 횡단보도에서 담배 두 개비를 피웠으니 한참을 기다린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저들과 뭐가 다를까.
비속에 젖지는 않았지만 이리저리 살피며 빗속 가로등 아래 쪼그려 앉았고
무엇인가를 원하며 담배 피워 문 초조함은. 이 궁상맞은 모습은.
저 트럭 속 고양이 같고 비 맞은 강아지 같고.
오늘 같은 날 큰 붓 하나 들고 수채화를 그리는 멋은 차마 부리지 못하더라도
흔히 말하는 파전 붙여놓고 막걸리라도 기우려야 하는데.
바둑이 있고 친구가 있으면 금상첨화 무릉도원이겠지.
가졌건 못 가졌건 사실 그렇게 여유를 부리며 사는 이 얼마나 있을까.
물질의 풍요 속에 정작 우리네 마음은 가난해진 것을.
덜커덕.
“아저씨 바빠요 빨리 갑시다.”
문만 열고 타지도 않은 채 바쁘다고 빨리 가잔다.
네네.
부~웅........
“근데 어디로 그렇게 모셔야 되지요.”
“저승길 빼고는 최선을 다합죠.”
“아저씨랑 농담하고 싶지 않거든요”
제대로 챙겨 입은 아줌마의 얼굴엔 도도함이 넘쳐흘렀다.
(...............)
“동대구역으로 10분 만에 갈 수 있겠지요.”
(지랄하고 자빠졌네)……. 꿀~꺽.
“하하하. 비도 오지만 거리상 빨라도 15분에서 20분은 잡아야 됩니다.”
“안돼요. 꼭 그 차를 타야하니 저를 그 시간까지 어떻게 좀 해주세요.”
어떻게 좀 해 달라……. 그 시간까지.
“뭐 그럽시다. 자신은 없지만 내 쌍코피 터지더라도 어떻게 해드리죠”
부~웅
(.........)
객기 담긴 농으로 응수를 하고 액셀러레이터를 힘차게 밟는다.
멍때리고 있다가 드디어 첫 손님을 모셨는데 시작부터 뭔가 산뜻하진 않았다
비가 와서 그런지 아직 이른 시간인데 통행량이 많았고 초보는 나오지 않았겠지만
여타 오너들은 귀찮은 핑계 애들 핑계로 더 많이 나섰을 것이니 도로가 혼잡하고
이럴 때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한들 어찌하겠는가.
“야옹”
갑자기 고양이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차 안에 웬 고양이가 했더니.
“아저씨”
“네. 아. 네네. 왜 그러시죠.”
“신호 다 지키고 언제 가시려고 하세요.”
“신호는 지켜야지요. 더구나 여긴 혼잡한 곳인데.”
오거리 신호라 꽤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지금 급하다고 했잖아요. 차비 더 드릴 테니 어떻게 해 보세요.”
또 어떻게 해보라고.?
에라, 모르겠다. 그래 일진이 되는대로 가보자
한두 번 속는 게 아니지만 차비 더 준다는 사람 미리 안 주고 미루어 주는 년 놈 치고
싸가지 있는 것 못 봤으니 빨리 가는 게 그렇게 좋은지 경험이나 해주고 싶었다.
기초 예의상 비상 깜박이를 켜고 빗길을 지그재그로 끼어들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다섯 번 남은 신호를 세 번을 건너뛰고 창문을 열고 옷소매 다 젖어도
옆 차와 뒤차에 양해를 구해가며 10여 분 남은 거리를 5분에 주파하여 역에 도착했다.
그녀가 원하는 시간에.
“보시다시피 미친놈처럼 나름 최선을 다했으니 서두르세요.”
그녀는 겁에 질려 넋이 나간 건지 태연한 건지 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 내가 잠시……. 얼마죠.”
하면서 미터기를 힐끗 보더니 5천 원을 선반에 올려놓으며
“아저씨 잔돈은 됐어요.”
하더니 차에서 내리는데 전화가 걸려오고 교태 떠는 목소리가 숨을 막히게 한다.
“응. 자기야. 내가 표 끊어 놓을게 천천히 와.
그리고 역으로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걸어간다.
아주 낭창하게.
내가 받은 팁은 300원이다. 요금이 4700원 나왔고 평균 6000원 내외 거리다.
(요금 더 드릴테니.) 한 대가가 300원이고 정상요금에서 1000원 적게 나왔으니...
한소리 하려고 창문을 열었더니 비가 들이닥친다.
이런. 시발낙지 같은…….
차 문을 열고 다시 나가려는데 불빛이 번쩍거리며 고함과 경적이 난무하다.
번쩍번쩍. 빵빵. 빵빵. @$#@$^%$#…….
뒤차들의 아우성이다.
“얌마. 기집 궁디 다 봤으면 얼른 차 빼.”
원래 역 승강장이 협소하고 비 오는 날 인데다 주말이니 아예 폭도들처럼 흥분해 있다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며.
멀리 사라지는 도도한 암고양이 바라보는 비 맞은 강아지의 슬픈 수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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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를 돌아다녔을까.
덜커덕. 탁.
“어서 오세요”
“아저씨 저 바빠서 그래요 역으로 10분내 가주세요.”
“요금은 알아서 더 드릴게요.”
그냥 죽여 주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