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별.
제주도에서는 벌써 봄이 온다는 들썩거림도 있다지만
3월에 발도 못 걸친 2월 끝머리에 충주 수용 면에 산길은
아직 겨울에 발목이 그대로 잡혀있다.
맑고 시원한 산 공기를 마시려고 열었던 차창을 이내 닫고 말았다.
어린 날 한 동네에서 친자매처럼 아내와 가깝게 살았다 하지만,
서울에서 충주. 다시 차도 사람도 허덕거리며 굴곡 많은
산길로만 접어 30분이 넘게 가고 있는
처 육촌 언니의 낯선 문상(問喪)길은 내게는 너무 길고 멀었다.
전화 통화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크게 놀라고 상심한
아내의 눈물바람에 얼굴 한 번 제대로 구겨보지도 못했다.
처가 일에 투정을 부리다간 노후가 편안치 못한 세상이다.
내 두 아들의 험난할 여정에 한 숨이 절로 보내진다.
언니의 첫 아이 돌날에 가면서 40년 전 아내가 보았다던
5~60여 호를 훌쩍 넘었을 것 같다던 큰 마을은
농자 천하지 대본(農者天下之大本) 을 쓰레기통에 쳐 박아 버린
가치관이 바뀐 세월에 시달려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트여있는 동네에 입구를 제외하고 마을을 둥그렇게 끼고 있는
산기슭에는 다랑이 논(계단식)과 밭이 제법 큰 자리를 남겼는데
묵정이 되어 모두 버려져 있었다.
한 때는 소박한 풍요를 구가하며 북적였을 마을은 폐허처럼 버려진
너른 자리에 세 가구의 집에 겨우 노인 몇을 남겨 희미하게
사람 냄새를 피우며 폐촌을 면하고 슬픈 흔적으로만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익숙한 불빛 아래에서 산다.
함께 살자고 조르는 자식들 손짓을 마다하고
아내의 언니는 오지나 다름없어진
이 깊은 산마을 외 등 아래를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가는 내내 아내는 쉴 새 없이 눈물을 찍어냈다.
자식들 곁에 살며 쓸모없고 짐 되는 노인이 되기보다는,
어쩌다 오는 새끼들에게 고추 한 포대. 감자 한 바구니라도
더 실어 보내려고 애썼던 팔순 가까운 나이에 언니.
모두가 버리고 떠난 땅에 남아 안간힘을 쓰던, 지독하게 미련한
그 언니의 엄마노릇이 너무 가엾다고 울고 또 울었다.
장례식장을 마다했던 어머니의 소원을 지켜 불편함을 감수하고
외진 곳에서 초상을 치루는 상주(喪主)는 크게 마음에 들었지만
서로 나눌 사연이 거의 없는 그의 곁은 지루했다.
그 지루함을 지우려고 둘러본 집안은 양쪽의 방이 있고 가운데
마루가 있는 전형적인 구옥(舊屋)의 형태였는데,
부엌을 이용하려면 마루를 내려서 옆으로 돌아가야 하는
불편함까지 그대로 남아있었다.
처음에는 산골에 노인을 버려 둔 자식들의 무심한 불효를 탓했다.
헌데 찬찬히 살피다 깔끔하게 정돈 돼있는 그 집안이
내게도 몹시 익숙한 시간에 정지되어있음을 알았다.
집안의 모든 모습은 주인이 머무르고 싶어 했던 그녀의
가장 아름다웠을 옛 시간에 그대로 멈춰져있는 듯 보였다.
부엌 옆에 달려있는 외양간으로 보이는 큰 창고에는
우렁찬 소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여물을 주던 구유에는 여물바가지가 담겨 있었고,
벽에는 멍에가 퇴색은 되었지만 모습을 잃지 않고 살아있었다.
몽땅 연필처럼 끝이 달아있는 낫이며 괭이, 쇠스랑이 걸린
맞은 편 벽에는 금방이라도 밭을 일구러 나가자고
육촌 언니의 손을 잡아 다닐 것 같은 그녀 남편의 손길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대문 좌측에 소죽을 끓였을 큰 가마솥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 왔다.
외진 산마을에서 쓸쓸히 떠난 언니가 가엾다고 아내는 울었지만
자신의 손때가 묻어있는 가장 낯익은 장소에서,
살아오며 깨알처럼 행복했던 시간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었던
그녀의 작은 웃음소리를 우리는 아무도 듣지 못했는지 모른다.
추운 밖을 걱정하며 아내가 나를 찾았지만
운전 때문에 술 한 잔도 못 걸칠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안았다.
잠시 걸터앉을 곳을 찾다 마당 가운데 오랜 동안 자리를
그대로 지켰을 낡았지만 튼튼한 평상에 가만히 앉아 보았다.
평상은 사람을 반겼지만 냉기만 가득했다.
엉덩이를 걸치다 짜르르 등을 찌르고 올라오는 차가운 기운에
펄쩍 일어서려다 다시 앉았다.
별 때문이었다.
별은 사람 마음처럼 변덕스럽지 않았다.
충주 깊은 산동네 하늘에는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을 뿐이지,
언제나 곧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아서 멍석에 누워있던
어린 내 가슴을 졸였던
그 많던 별들이 모두 제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너무 많은 것을 쫒아 다니며 살았던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어버리고 살아왔을까.
유일하게 식별해낼 수 있는 북두칠성은 맏형 북극성을 중심으로
내가 처음 별자리를 배웠던 그 때처럼 7형제가 다정히 빛을 발하며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12궁명으로 雙魚宮(쌍어궁)으로 불리는 물고기자리도 그러겠지만
쌍둥이자리인지 염소자리인지 아니면 보병궁(寶甁宮)으로 불리는
물병자리일지도 모르는 수많은 별들도 그대로 있는 것 같았다.
에너지가 충만한 젊은 별은 푸른빛으로 빛나며
은하 중앙에 살고 늙은 별들은 약한 붉은 빛들을 모아
은하의 변두리에 모여서 산다했다.
젊은 별이 모여 있는 성단은 산개성단으로 푸른빛을 띠고
여러 곳으로 퍼져있어 관측할 때 희미하게 보이지만,
늙은 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구상 성단은
대체로 퍼져있지 않고 동그란 모양으로
집단을 이루고 있기에 더 밝게 보인다고도 들었다.
집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녀에게 있어 마음의
별자리와 같았을 것이다.
흐려진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별이 늘 그 자리에 있었듯이 그녀의 인생 모두가 그 집에 있었다.
두툼하고 투박했지만 따듯했던 남편의 손길도,
자신에게 매달리던 귀여운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도,
보고 싶고 듣고 싶어지면 그 별자리를 더듬어
언제나 찾아낼 수 있는 이 집안을 그래서 그녀는 떠나지 않고
외로움도 슬픔도 느낄 새 없이 살았던 가 싶다.
사람은 늙어 외롭게 사는 것을 모두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은 어쩌면 낯익고 익숙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만을 쫒아 다닌 어리석음을 후회하는
반증(反證)인지도 모른다.
흔히 우리가 보는 외롭고 쓸쓸함의 두려움보다
더 무서움 증을 주는 것은 내 모든 것이 쌓여있는
과거와의 단절은 아닐까 돌아보게 된다.
살아서 자신의 별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녀를 못 만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상가(喪家)를 떠났다.
아마도 그분은 이제 또 하나의 붉은 별이 되어 은하의 변두리
어느 한 모퉁이 옛 얼굴들이 모여 있는 성단으로 돌아가
빛을 더 할 것이다.
별 얘기를 듣던 아내가 하늘을 보자고 차를 세웠다.
차가워 보이는 겨울 새벽 별들이었지만 그리 추워보이지는 않았다.
아내가 별 하나를 찾아내 가르치며 조그맣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언니별은 참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