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20세기가   막바지로 접어들던 1999년 9월초.   미국에 정착해 살던 큰형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부탁이 하나 있어서..."하며 말문을 꺼내는 형의 얘기인즉, 후배 하나를 만나 달라는 거였다. 

한국서 기나긴 무명 마라토너였던 형은 형편이 어려워 운동에만 전념할수  없었고,

아이 분유값을 벌기위해 틈나는대로 우유배달이며, 야간경비등의  일은 물론,

  일명  <노가다>를 하곤 했는데 그때 알게된 후배였다.

 그 후배는, 형을 진심으로 존경했던 나머지 의형제를 맺길 간청했고,

 그렇게,  진한 우정을 간직하고 지냈으나, 미국으로 가면서 서로 연락 두절이

 된 상태였다.      다행히 지난시절, 서로 연락이 끊어질 경우를 대비해 기억  하기 좋은

1999년 9월 9일 9시에 서울 힐튼호텔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던것.

 바로  그 자리에 내가 대신나가서 소식을 전해주라는 청이었던것이다.

 나는   속으로 9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그분이 그 약속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의문이 들었으나,  형은 꼭 나올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약속 당일 30분 전에 도착해서 차를 마시며 과연 나올까 하는 생각을 하며

  두리번 거리고 있었는데, 그때, 누런빛깔의 허름한 잠바를 입은,

 그러나, 눈빛은 아주 투명하고 깨끗한 청년이 내앞에 서서는, " 저..혹시,"

 쭈삣쭈삣하며,,말을 걸어오는 이가 있었다.

 "아,,예 형을 만나러 오신거 맞죠?    제가 동생입니다."

 "아, 그렇군요" 하는 그의 말투에서, 형이 나오지 않은것에 대한 불안감과

 실망감이 엿보이는 표정이었다.

 형이  미국에 있기때문에 나오지를 못해서 대신 나왔노라고 하자 비로소

 얼굴빛이 살아나던 그.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얘기를 나눠본바로는, 차로 과일장사를 하며

 여전히 어려운 생활을 하는듯 보였다.

 그렇게 헤어지고 형과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국에서의 크고작은 뉴스며, 특히 마라톤에 관한 기사는 빼놓치않고

 스크랩을 하며, 형이 좋아할만한 책이나 음악 테잎을 보낸다는 얘기도

 들렸다..그리고 언제부터인가..내 생활에서 그는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었다

 지난달  조카가 여름방학을 이용해 한국에 들렀었다.

 일곱살에 건너가서 23살의 대학원생이 되어 돌아온 조카 녀석이

 맨처음 나에게 물어온것은,

 "삼춘...저기..자전거 삼춘 혹, 연락되세요? " 하는 거였다.

 "자전거 삼춘??"

 나는  짧지않은 시간이 지나서야 바로 그 사람이 조카가 찾는 <자전거 삼춘>

 임을 알았다.

 미국에서 이사를 하고서 다시 연락을 했더니 이미 전화번호가 바뀌어 있더라며

  소식을 궁금해 했다.

 나  역시 알 도리가 없었다.

 조카는 실망스런 눈빛이 역력했다.

 "그런데 왜 자전거 삼춘이야?"  하고 묻자,웃으며 얘기해 주기를,

 "어렸을때 동네친구가 타는 자전거 한번만 타보자고 졸랐는데, 그 아이가

 거절을 했거든요,   그래서 훌쩍이고 있는데 그 아저씨가 "내가 다음달 월급

 타면 자전거 사줄게" 하고 약속을 했어요.

 그런데 그일이 있고 바로 며칠뒤에 갑작스럽게 미국에 가게 되어버렸는데,

 미국 간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 아저씨가,  출국 하루전에 새 자전거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전 그 자전거를 단 하루밖에 탈수가 없었죠..

 결국 주인집 딸아이에게 그 자전거를 주고 갈수밖에 없었어요..

 단 하루밖에 탈수없는것을 알면서도 저와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월급날이 멀었음에도 불구 하고 돈을 어디서 빌린것 같다고,  아빠에게 들었어요..." 

조카는  침울한 표정으로, 꼭 만날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하며 말끝을 흐린다. 

순간 부끄럽기도 하고, 그사람과 따로 연락이라도 주고 받을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그동안 못했던 삼촌노릇좀 해볼까 하여 가볼만한곳, 먹을 만한곳,

구경할만한곳 여기저기를 구경 시켜 주면서도,  단 하루를 타게 하려고,

 새 자전거를 사주었던 그 <자전거 삼춘>의 마음에 비할수 없음은 어쩔수 없었다. 

조카가 미국으로 돌아갈때 자신의 휴대폰 번호와 구글의 이메일 등을

 적어줄때, 나는,  오로의 사이트를 대신해 알려주었다.

 "한번 꼭 접속해라,  삼춘이 오로에서는 꽤 유명햐~~^^*

 이메일은 편지처럼 받고 쓰고 해야하지만, 오로에 오면 일대일 대화가

 가능하니까 더 좋을거야. "

 "아 ~ 그래요"   꼭 접속할게요^^"

 그렇게 조카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자전거 삼춘>  어디 있나요, 우리 코흘리개 조카가 다큰 처녀가 되어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데...

 한동안 <나도 작가> 코너에 간판만 걸고 "개점 휴업" 상태였다.

 작가라는 타이틀 무게에 눌려 무엇인가 늘 써야하는 강박관념도 있었으나

 다른 훌륭한 작가분들이 많이 들어오시면서 좀 나태(?) 해 지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바둑관련 소재"가 딱히 떠오르지 않아서라는 변명아닌 변명이다.

 그렇다고 마냥 노는것은..직무유기 일것같고 ^^;;   바둑 얘기는 아니지만,

 나를 부끄럽게 만든 그 <자전거 삼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혹시 오로에서 낯익은 대명으로 바둑을 두고 계실지 또 어찌 알랴,

 꼭 바둑 얘기가 아니어도 좋다는 얘기를 들은것도 같고 해서리..헤헤^^

 조만간  재미난 바둑 얘기를 듬뿍 안고 <나도 작가> 코너에  나서리라, 다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