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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달의금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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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야스쿠니 의거 2
2022-08-06 오전 10:03 조회 223추천 8   프린트스크랩

저녁 식사를 마친 세 사람은 식탁에 둘러앉았다.

나 며칠 전에 민희 때문에 울컥했다.”

걔가 무슨 속 썩인 일이 있었어?”

아니, 너무 철이 든 소리를 해서.”

언니보고 시집가래?”

그게 철든 소리니? 철없는 소리지.”

최선애는 동생의 농담에 웃고 말았다.

민희가 우리 집안이 두 조각이래. 동생과 아버지가 다른 것이 마음에 걸려 있나봐.”

어쩌다 그런 말이 나왔대. 속에 있어도 꺼내기 어려운 말이잖아.”

그녀는 동생 부부에게 해야 할 말이 있으면서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하시모토와 결혼을 하게 되어서 일본으로 들어가 살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두 사람에게 가져올 충격이 쉽게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동생이 가지고 있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라는 자부심과, 제부의 결혼 동기도 고모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가 시작점이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독립군의 후손이 일본인의 아내로 산다.’

자신마저도 한동안 받아들이기를 망설이게 만들었던 이율배반적인 일이었기에 동생 부부가 가질 거부감이 염려되었다. 하시모토와의 관계를 그들이 알고 있지만 그것은 두 사람이 모두 독신으로 그저 만나 외로움을 달래는 수준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민희는 우리가 세 조각이 될 것을 걱정하고 있어.”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최선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니, 임신했어? 남자가 누군데.”

동생의 말에 그녀는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너는 제부 앞에서 무슨 그런 망측한 말을 해. 절대로 아니야.”

자신의 강력한 부정에 안도하는 동생을 보며 그녀가 나직하게 말했다.

, 너희 부부에게 할 말이 있다. 하시모토상이 청혼을 했어. 어쩌면 우리 가족 일본에 가서 살 거 같아.”

그녀의 말에 두 사람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처형, 축하드려요.”

분위기를 수습하려고 설민국이 다급하게 말을 꺼냈다. 그렇지만 최선미는 아직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이 분주하고 복잡해졌다. 축하할 상황도 반대할 상황도 못되는 현실이 좀처럼 정리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고모가 안 계신 것이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행복을 찾아가겠다는 조카를 말리지도 못하고, 일본 사람과 살겠다니 축하도 못할 난감한 처지를 고모는 겪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지만 부모세대의 삶과 자식 세대의 삶이 아무리 별개의 것이라고 해도 이것은 분명히 옳지 않은 일이었다. 세상을 살아가기가 버겁다 한들 언니가 일본인의 아내가 되다니!

 

집으로 가는 승용차 안에서도 두 사람은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만큼 최선애의 발언은 충격적이어서 두 사람은 아직도 감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도 두 사람은 말없이 잠자리를 준비했다. 잠자리에 누워서야 그가 말을 꺼냈다.

아까 당신하고 처형이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에 대한이랑 잠시 대화를 나눴어.”

그랬어? 무슨 얘기를 했는데.”

일본으로 이민 가서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기에 어림짐작으로 하는 말이려니 했었어. 처형이 아마도 조카들과 이미 상의를 했나봐.”

그래서 민희도 그런 말을 한 거네. 하시모토상과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을 거고 그럼 세 조각이라는 말이고. 나는 민희에게 너무 미안하고 얼굴을 못들 거 같아.”

나도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데 아이들이 느끼게 될 혼란이 걱정스러워. 지난번 고모 장례식에 다녀온 대전국립현충원에서 민희가 고모를 자랑스러워하는 걸 느꼈거든. 그 자부심이 상처를 입게 되는 거야.”

나도 언니에게 그 말을 하고 싶었어. 아이들이 가치관에 큰 충격을 받을게 염려돼. 그렇지만 언니가 선택한 사는 방법은 단지 편하게, 여유롭게 살고 싶은 거였어. 그 기본적인 바람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서 나도 언니에게 더 해줄 말이 없었건 거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처형과 조카들의 삶이 참 안쓰럽다.”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일본제국주의의 최대 피해당사자인 한국의 엄청난 저항에 부딪혔다. 그렇지만 목소리를 높이는 자국 내 우익들의 눈치를 살피는 정치권에서는 한국 내의 여론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이제는 무엇인가 대응을 하고, 응분의 조치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지만, 한국 정부의 대응은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한국이 미국의 지지를 얻어야만 일본을 압박할 수 있는 국제정세의 흐름을 등에 업은 일본은 한국의 반응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우익들이 조바심을 느끼는 것 같군요.”

한영운을 만난 이재길이 말했다. 그는 의현단을 결성하고 난 뒤의 경과를 말할 겸, 조직운영에 대한 조언을 얻고자 그를 만난 자리였다.

저들은 자국이 경제적으로 장기간의 침체에 빠져 있는데 한국은 계속 성장을 해서 격차가 줄어들자 머잖은 미래에 한국에 역전당할 것을 염려해 동요하고 있고, 우익세력의 구심점을 얻으려고 한국을 계속 자극하고 있어요. 앞으로 저들의 도발은 더욱 야비해지고 저급하게 지속될 겁니다.

독일이 주변국들을 침략한 일에 대해 사과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감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일본은 이와 전혀 달라요. 물론 그들의 왜곡된 사무라이 정신에 따라 정복한 나라에 대한 피정복기간 동안의 핍박과 수탈은 정당하다고 여기는 부분도 있지만, 저들은 오랜 옛날부터 가져온 한국에 대한 열등감이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어서 사과를 할 수 없는 거죠. 이런 와중에 경제력에서만큼은 영원히 한국이 따라잡을 수 없다고 자신했는데, 그마저도 어려울 것 같아지자 우익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 염려는 이러다가 양국의 국민들에게 적대감이 자꾸 커지는 문제가 생긴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저희 단원들은 가시적인 행동에 나서고 싶어 해서 문젭니다. 조급한 행동이나 섣부른 대처를 한다면 자칫 소탐대실 하는 결과가 생기기 때문이죠.”

저도 그 부분이 염려됩니다. 지금보다 더 양국 국민들에게 감정의 골이 깊어진다면, 회복할 길이 없어지죠.”

 

다른 단장들의 사정은 어떤지 잘 알 수 없었지만, 3단의 단원들이 개별적으로 단장에게 연락을 취해서 행동에 나설 방안을 달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아마 이는 다른 단장들도 소속된 단원들에게서 이슈를 빨리 정해서 공유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을 터였다.

단원들에게는 과업의 성격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본을 향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에 환멸을 느껴, 무력감에 빠져 있는 자신들에게 저항하고 있다는 상징성이 필요한 것이었다. 이 점은 단장인 자신도 느끼는 단원들과 다름없는 감정이었기에 충분하게 공감이 되었다.

그는 자신들에게 소속된 단원들에게 공지를 보냈다.

단원들의 요구에 따라 일본을 이겨내고, 일본에 저항하고, 일본인에게 대한인의 의기를 보여줄 수 있는 이슈를 결정하고자 합니다. 제가 결정할 수도 있지만, 여럿의 의견을 모으면 더 효과적인 과업을 정할 수 있기에 공지 드립니다. 사회전반의 문제든, 경제적인 문제든, 정치적인 문제나 경제적인 과제여도 좋습니다. 각자의 생각을 모아주십시오.’

모든 단원들의 답신이 도착하는데 불과 2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부분은 단장이 결정하면 따른다는 내용과 임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모든 지원을 책임지겠다며 나서는 단원들도 있었다. 또한 몇몇은 구체적인 실행()을 보내왔다.

그중에 한 단원이 거사를 도모하겠다며 나섰다. 스스로를 도구로 써달라는 내용까지 첨부한 그는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신사에 일본이 계속 집착하고, 일본 우익들이 성지로 여기고 있어 주변국들을 우롱하고 있는 그곳을 없애줘서 더 이상 일본이 죄를 짓지 않도록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설민국은 그 단원의 주장에 충격을 받았다. 현실성이 부족하고, 그 파장으로 인해 시도하는 것이 무모할지라도, 무척 의미 있고 상징성이 강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을 숙고하던 그는 의장에게 보고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면 그 자신마저도 그 단원의 생각에 동조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꼬릿글 쓰기
영포인트 |  2022-08-09 오후 4:10:0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아들이 진로를 타진하고 있었습니다.
트럼프가 취임하고 얼마 후의 일이라
예전과는 다르게 동양인이 설 자리가 많지 않았고
그마저도 제시하는 연봉이 예전에 비해 많이 낮아진 상태였습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만큼...  
영포인트 |  2022-08-09 오후 4:15:0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아들은 일본과 중국에 일할 수 있는 자리를 타진하였는데
일본의 일자리는 미국에서 제시하는 연봉의 두 배 수준이었지만
내가 선듯 동의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막연히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거부감도 작용했겠지만
1980년대의 후반 출장으로 처음 밟았던 일본에서의 불쾌한 기억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잘 생각하고 결정하라고만 말해주었습니다.  
영포인트 |  2022-08-09 오후 4:20:1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우리의 아픔이
우리의 좋지 않은 기억들이
우리의 아들들에게, 우리의 손자들에게 물려져서는 안되지만
같은 실수가 되풀이되어서는 안되기에
우리는 우리의 아들들에게, 손자들에게 적어도 사실을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신인 잊지않아야 다시 당하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집요한 일본은 우리를 식민지로 만들었던 기억을 절대로 잊지않을겁니다. 우리가
계속 긴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선배님의 응원에 감동!!💚💚💖💚💚
영포인트 |  2022-08-09 오후 4:24:3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신인]님은 우리의 후손들이 새겨야 할 가르침을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가슴판에 깊이 새길 것이고 누군가는 귓등으로 흘려버리겠지만요.
[신인]님을 응원합니다!!
 
⊙신인 외로운 외침이라고 생각했어요!
콩나물에 붓는 물이 흘러내리지만, 어느덧 콩나물은 자라고 있다고 여깁니다.
선배님의 응원에 용기를 백배해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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