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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베 단편소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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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방문
2022-06-02 오전 9:46 조회 482추천 5   프린트스크랩

카톡 수다방에 공지가 떴다. 

퇴임을 앞둔 친구가 국회에서 오찬에 초대했으니 희망자는 알림방에 신고하라는 내용이었다. 

국회의사당을 관람하고, 오찬을 끝낸 다음에는 관저까지 구경한다는 스케줄이었다. 

나는 국회의사당 내부를 관람한 적이 없다. 

TV로만 보던 내부를 구경하고 싶었다. 

내가 국회의원이 될 일은 절대 없을 터이니 이번 기회가 의사당 내부를 구경할 마지막 찬스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알림방이 없다. 

전에 어쩌다가 탈퇴했는데 다시 입방이 되지 않았다. 

친구들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나와 같은 사정에 처한 친구들이 몇 명된다. 

그 몇 명의 친구를 위하여 새로 방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내려진 듯하다.


나는 수다방에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알림방에 못 들어가는데 이 방에서 신고하면 안 되겠느냐?” 

시를 쓰는 친구가 대뜸 답장을 보내왔다. 자기가 대신 신고하겠노라고 했다.


사실 나는 잔꾀를 쓴 거였다. 

시를 쓰는 친구에게 개인적으로 전화를 해서 부탁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것을 공개적으로 수다방에 하소연 한 것은 참석하는 친구들이 한 명이라도 더 늘어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공짜로 구경시켜주고 밥을 먹여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사정은 복잡하다. 

우리 친구들은 나를 포함해서 보수적인 친구들이 많다. 

국회에 우리를 초대한 친구는 ‘검수완박’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원망을 듣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참가하려는 친구들이 별로 없을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시를 쓰는 친구는 그래서 그런지 정치를 떠나서 오로지 퇴임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친구만을 생각해서 참석하자고 독려하던 중이었다.


일요일 저녁에 알람을 맞춰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혹시나 늦잠을 자서 늦을까 염려가 되었다. 

월요일 아침에 일찍 잠이 깼다. 시간이 넉넉했다. 

딸애가 알려준 최상의 경로를 잡았다. 

월곡역에서 6호선을 타고, 공덕역에서 5호선을 갈아타고 여의도역으로 간다. 

거기에서 다시 9호선을 갈아타고 국회의사당 역에서 내리면 되는 거였다.


전철을 타는 긴 시간동안 시간에 여유가 있어서인지 여러 가지 상념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며칠 전 집에 왔던 아들 녀석이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자가 태권도를 배운다고 하였다. 

그것을 보고 두 살 어린 손녀가 동작을 열심히 따라한다고 하였다. 

그 생각 속에 어릴 때 외삼촌이 당수를 배우는 동작을 내가 따라하던 것이 생각났다. 

어른들은 나에게 당수 시범을 시키셨다. 

나는 열심히 동작을 반복했다. 

어른들은 대견해하시면서 박수를 쳐대고 나는 더욱 으쓱하여 수도치기와 정권지르기에 빠져들었었다.


여의도역에서 9호선으로 갈아타는데 문제가 생겼다.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니 반대편으로 간 것이었다. 

저 건너편으로 어떻게 건너가나? 

주위의 사람에게 물었더니 다시 나가라고 하였다. 

젠장, 잘 모르면 모른다고 할 것이지. 

나가서 아무리 찾아도 길이 안보였다. 

다시 5호선 쪽으로 가서 화살표를 되짚었다. 

조그맣게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반대편으로 가는 것은 승강장에 도착한 다음에 양쪽의 에스컬레이트를 이용하라는 문구이었다. 다시 승강장으로 들어갔다.


역만 빠져나오면 바로 친구들을 만날 줄 알았다. 

최소한 30명은 나오겠지. 

그러면 한가한 의사당 앞에서 금방 발견하겠지. 

이것은 나의 무지의 소치였다. 

백수인 나는 매일이 휴일이다. 내 기준으로만 생각했다. 

정기총회가 없으니 국회는 휴무상태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니 우리를 초대했겠지. 

국회의사당을 관람한 다음에는 아마 밖의 일반 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먹을 것이다. 

당연히 술도 나오겠지. 

친구들과 거나하게 이것저것 소란을 피우다가 다시 의사당 관내로 들어와서는 거기에 있는 관사를 구경하겠지 (의사당 부지가 넓으니까 나는 당연히 의장 관사도 그 안에 있을 줄 알았다. 한남동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그 날은 월요일 이었다. 

당연히 공적인 근무가 행해지는 날이었다. 

친구는 점심시간인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 사이에 우리를 초대한 것이었다.


의사당주변은 넓기도 하지만 사람들도 많았다. 

저놈들인가 하고 쫒아가 보면 친구들이 아니기를 두어 번 반복했다. 

할 수 없이 정문에 있는 경비에게로 갔다. 

경비 둘은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친구인 국회의장의 초대로 왔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무언가 정보를 알고 있는 듯했다. 

1문에 모여 있을 거라고 한 명이 말했다. 

이 넓은 천지에서 어떻게 1문을 찾는가? 

 그러나 또 한 명이 침착하게 말했다. “친구에게 전화를 해보시지요.” 

시를 쓰는 친구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없는 번호라고 하였다. 

몇 년간 통화를 안 했으니, 또 다른 친구도 역시 없는 전화번호. 

11시는 다 되어가고 진땀이 흘렀다. 

그 때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잘 아는 친구 L이 절룩거리며 정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반가웠다. 그 친구와 함께 걸었다.


길에서 또 두 명을 만났고, 1문에 가니 3명이 더 있었다. 

시를 쓰는 친구만 아직 도착을 하지 않았다.


비서의 안내로 의사당 내부를 구경했다. 

생각한 것보다는 거대하지 않았다. 의자들이 촘촘하게 놓여있었다. 

맨 앞에 의장석이 보였다. 

저기가 바로 전에 의원들이 빽빽하게 모여서 몸싸움을 하던 곳이 아닌가? 

구경을 하는 동안 시인도 도착했다.


의장실에 들렀다. 비서들이 여러 명 밖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역시 휴일이 아니었다.


의장실이나 옆의 대통령 접견실이나 모두 위치의 무게감은 상당했으나 화려함이 전혀 없고 수수한 도리아식인 것이 마음에 들었다.


친구들이 카톡에 올렸었다. 

의장에게 밥만 얻어먹고 오지 말고 단단하게 따지라고. 

다행히 한 친구가 질문을 하였다. 

“검수완박에 대하여 친구들의 불만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마치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울분(?)을 토해냈다. 

“분명히 잘 합의시켰다. 국민의 힘은 의총에서도 합의안을 받아들였다. 

오히려 민주당 강경파에서 수 없이 항의와 질책이 들어와서 견디기가 힘들었었다. 

그것이 하루 만에 뒤집어졌다.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 

역시 무슨 의견이든지 한 쪽 말만 들어서는 안 되고 양쪽의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는 덧붙였다. “여러분, 조중동만 보지 마시고 경향이나 한겨레도 보십시오. 그래야 균형이 잡힙니다.” 

 나는 속으로 뜨끔하였다. 나는 동아일보만 애독하고 있다. 

친구는 기자시절에 5년간 홍콩특파원을 지냈다고 하였다. 

그래서 중국어는 통역 없이도 술술 이야기 할 수 있단다. 

나는 자카르타에 5년간 파견되었었는데 지금 인도네시아 말을 거의 하지 못한다. 

내가 친구의 검수완박에 대한 답변을 카톡에 올렸더니 친구들이 나를 비난했다. 

“따지라고 보냈더니 설득만 당했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평생을 설득과 연설에 매진한 친구와 수학 언저리에서만 건들건들 떠돌던 내가 상대가 되겠는가? 

나는 또한 논쟁에는 소질이 없다. 

바둑모임에서도 전교조 출신 친구들에게 말로 늘 뒤진다. 

다음 번 모임에서 또 논쟁을 걸어오면 어떻게 대처할지 걱정하다가 한 가지 꾀를 냈다. 

이렇게 말하기로 했다. 

“우리 잠시 결론을 보류해두고 한 십년정도 더 살아보세. 그때 가서 다시 따져보세.” 

물론 십년이 지난 뒤에는 다시 또 십년. 하하 이러다보면 100살 까지 살겠다.


국회 귀빈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밥, 우거지 국과 김치, 해파리냉채, 생선 한 토막. 연 두부. 그리고 후식으로 과일과 떡, 커피가 나왔다. 

가격이 2만원이라고 하였다. 그 비용은 친구가 사비로 지출하는 거라고 하였다.


친구는 마스크를 철저하게 썼다. 

음식을 먹을 때 외에는 절대 벗지 않고 한 친구가 모르고 벗고 말하는 것을 제지하였다. 

마르쿠스 카토 같은 절제력이 몸에 밴 것으로 보였다. 

의장이 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고 복잡하였다. 

작별인사를 하고 우리는 자유롭게 의사당을 나왔지만 친구는 다시 일자리고 돌아갔다. 

안쓰러워보였다. 그러나 일주일 후면 친구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것이다. 잘 된 일이다.


시를 쓰는 친구의 전에 썼던 시구가 묘하게도 친구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시를 소개할까 한다.


먼 곳

                            박재화

낙타는 왜 석양으로 나아가는가

뒷걸음질 없이 고개를 추켜들고

눈 먼 세상 한복판을 묵묵히 가는가

무한 절대의 안팎을 품은 낙타의

등에 가만히 깃드는 달빛

서늘한 시간을 반추하며 나아가는

모래의 오롯한 혹

적막이 알을 품는다

낙타는 왜 다시 석양 속으로 들어가는가

하염없이

가뭇없이


여의도에서 한남동 관저로 가는 길은 멀었다. 

차 안에서 제주도의 생수 이야기가 나왔다. 

대한항공에 다니던 친구가 말했다. 

예전에는 비행기의 물은 모두 에비앙 이었는데 지금은 제주의 물로 바뀌었다고. 물맛이 에비앙보다 훨씬 좋다고. 한라산에 내린 비가 밑에까지 스며드는 시간이 오백년 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스민 물이니 얼마나 좋겠느냐?


이야기는 다시 전립선으로 옮겨갔다. 이런 저런 잡담을 주고받는 사이에 차는 한남동에 도착했다.


관저는 보기 좋았다. 

바로 옆에는 대법원장 관저가 있고, 더욱 왼편에는 대통령 관저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하였다. 

관저에는 역대 국회의장의 초상화가 죽 걸려있었다. 

관저의 정원과 후원을 한 바퀴 둘러본 다음에 우리는 다과회를 가졌다. 

사모님이 참석했다. 그냥 평상시의 옷차림으로 수수하게 나왔다. 

친구들끼리 모여 앉으니 마음이 편했다. 

이야기가 학창시절로 옮겨갔다. 

의장 친구는 고 2때 전교 학생회장이었다. 

누군가 말했다. 의장 친구는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배웠다고. 

그 때 또 한 친구가 정정했다. 

“아냐, 그 때는 태권도가 아니고 수박도였어.” 

맞다. 태권도란 용어는 월남 전쟁에 파견되었던 최홍희 장군이 청도 관을 창설하면서 처음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한담을 하는 동안에 그동안 찍었던 기념사진이 나왔고, 우리는 사진을 선물로 들고 관저를 나왔다. 

┃꼬릿글 쓰기
엽부 |  2022-06-02 오전 10:41:0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글을 잘 쓰셔서 문과(文科)인 줄 알았는데, 이과(理科) 출신이셨군요?
어쩐지 저번 어떤 글에서 프로그램 코딩에 대한 언급을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뼛속까지 이과(理科)여서 이과 전공분들 보면 괜히 반갑더라고요..^^.
항상 화목 다복한 가정의 모습이 너무 보기 좋고요..
가족 모두 평안하시고,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엽부 그런데 국회의장과는 언제부터 어찌 아는 사이 이신지 물어봐도 실례가 안될런지요?.^^.
짜베 중,고등학교 동기 동창입니다.
⊙신인 |  2022-06-02 오후 6:44:3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렇게 유명한 분을 친구로 두면 이런 일도 생기는군요!
조금 부러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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