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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베 단편소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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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방위. (1)
2022-03-18 오전 11:54 조회 484추천 8   프린트스크랩

방위병 대여섯 명이 둘러앉아서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주제는 방위가 사람이냐 아니냐이다. 

사람이 아니라는 측은 이렇게 주장한다. 

“모두들 우리를 부를 때 ‘야, 방위!’라고 한다. 그런고로 우리는 사람이 아니고 그저 야방일 뿐이다.”


토론은 방위도 사람이라는 쪽의 우세승으로 끝이 났다. 

사람이라는 쪽의 한 명이 다음과 같은 결정적 증거를 들이댔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제 퇴근할 때의 일이다. 길을 가고 있는데 앞에서 어린애들이 놀고 있더구나. 나는 그대로 그들을 향하여 직진하였다. 

그때 애들 중 한명이 이렇게 말하더구나. ‘애들아 비켜라. 사람이 온다.’라고”


K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삭발했다. 

내일이 방위소집일이다. 

어딘가 깊은 산속에서 근무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외로움을 견뎌내면서 자기의 정신력도 기르고, 국가를 위하여 봉사도 하고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일이 아닐까? 

겨우 6개월간의 소집기간이다. 

2대독자이상이거나 부선망 독자들은 모두 여기에 해당되었다. 

반면에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는 자들은 1년의 소집기간이 주어졌다. 

일반 사병으로 군대에 가면 거의 3년의 기간이 부여되는 것에 비하면 큰 혜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마 젊은 청년들의 수가 넘쳐나서 나온 제도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이른 아침에 상계동의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청계천까지 간 다음에 다시 지하철로 갈아탔다. 

지하철은 시청을 지나고, 서울역을 지나고, 한강철교를 건넌 다음에 노량진을 거쳐 대방역까지 K를 태워주었다. 

대방역에서 내린 후 길을 따라 신길동 쪽으로 올라가다보면 공군본부에 다다르게 된다.

 K의 방위소집 장소가 바로 공군본부였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위병소를 지났다. 

군부대에는 처음 들어와 보는 것이다. 

K처럼 사복을 입은 청년들이 상당수 위병소 주위에 줄을 맞추어 앉아있었다. 

모두 공군방위 소집대상자들이었다.

 K도 그들의 뒷줄에 가서 앉았다. 

청년들은 아무 말이 없이 반은 두려움에 떨며, 반은 호기심어린 눈으로 출입문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장교들, 사병들, 문관들 사이사이에 개구리복에 파란 견장을 단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이 눈에 띠었다. 

청년들이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우리보다 위 기수의 방위들이다.” 

K는 제 7기의 공군방위가 될 판이었다. 

K에게는 방위복장이 꼭 나치독일의 특공대 복장과 비슷하게 보였다.


인원이 다 채워지자 청년들은 줄을 맞추어 행진을 시작했다. 

낮은 언덕을 지났다. 

언덕을 넘어서자 막사가 여러 개 보였다. 

한 군데가 의장대 막사라고 하였다. 

키가 쭉쭉 뻗은 장병들이 막사 앞에 앉아서 지나가는 행렬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마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오합지졸들은 대체 무슨 자들일까?” 

의장대 막사를 지나서 한 쪽 구석에 있는 막사에 다다랐다. 

막사로 들어서자 막사는 이미 와 있는 청년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하루 종일 신체검사를 받았다.

 K는 징병검사를 고향과 가까운 조치원의 한 부대에서 받았다. 

비록 갑종은 못 받았지만 1을종 판정을 받았다. 

충분히 군대생활을 할 수 있는 신체조건이었다. 

여기에서 왜 다시 신체검사를 받는지 몰랐다. 

그저 하라니까 할 수 밖에. 신체검사를 받는 도중에 군대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소위 짬밥이라고 하는 군대 밥이다. 

식당에 들어서기 전에 식당에서 풍겨오는 된장국 냄새가 구수하였다. 

어릴 때 굶주렸던 K는 어떤 밥이라도 달게 먹을 자신이 있었다. 

처음 먹어보는 군대 밥을 맛있게 먹었다.


신체검사가 끝나고 이런 저런 주의사항을 듣고는 방위 복을 지급받았다. 

오늘 집에 갔다가 내일부터는 이 옷을 입고 출근하란다. 

출퇴근? K는 그 소리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 

“아니, 어디 오지에 가서 고생하면서 고독하게 군대생활을 할 줄 알았었는데 출퇴근이라니! 머리까지 박박 밀고 왔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침에 집을 떠나오면서 누나와 매형에게 비장하게 작별인사까지 하고 왔는데 다시 집에 가란다.


K는 고 3때 사관학교에 가려고 했었다. 

육사, 해사, 공사의 선배들이 멋지게 차려입고 와서는 저마다 자기의 학교자랑을 했다. 

원래는 S공대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고 3때 입시과목이 전 과목으로 바뀌는 바람에 사회를 공부하지 않은 K는 S공대를 포기했다. 

같이 버스통학 하던 일 년 선배는 그 학교의 교복을 입고는 여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었다. 

진로를 사관학교로 정한 K는 아침저녁으로 벽에 금을 긋고는 키를 쟀다. 

아침에 재면 키가 기준에 약간 모자랐지만 저녁에 재면 키가 훨씬 더 작아져 있었다.

 K가 사관학교를 포기한 것은 키 때문이 아니고 나이 때문이었다. 

나이가 호적에 적게 올려 져서 나이가 기준에 모자랐다. 

그것을 바로잡으려면 재판을 해야 한다는데 K에게 재판이라는 것은 달나라에 가는 것보다도 더욱 어려운 일로 느껴졌다. 

이순신 장군처럼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다던 K의 결심은 그렇게 무너지고 말았다.


한 달간의 훈련이 시작되었다. 

막사에 모여서 인원점검을 한 다음에 행진을 하여 작은 언덕을 넘고, 넓은 연병장에서 훈련을 실시하였다. 

제식훈련을 맨 처음에 시작했다.

 K는 제식훈련에는 자신이 있었다.

 K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교련수업이 도입되었다. 

K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시범학교로 선정되었다. 

각 도에서 한 학교씩 시범학교가 정해져서 그 학교들은 다른 학교보다 일 년 먼저 교련수업을 시범적으로 실시하게 되어있었다. 

학교에 교관 세 명이 배치되었다. 

대위 두 명과 하사관 한 명이었다. 

대위 중 한 명은 고등학교 선배이었다. 

세 명이 부임 인사하던 날이 K의 눈에 선했다. 

찬바람이 교정을 스치던 날 운동장 앞에 놓인 단 위의 세 명은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칼 같은 자세라는 것이 바로 그 모습일 것이었다. 

 학생들은 그들의 모습에 모두 학도병이라도 된 양 얼어붙어 버렸다. 

학교에서는 지겨운 제식훈련이 실시되었다. 

교복에 각반을 차고 M1소총 무게의 목총을 들었다. 

그래도 행진을 할 때 밴드부의 연주가 큰 도움이 되었다. 

행진곡을 연주해주면 자기도 모르게 힘이 솟았다. 

내빈들과 심사위원들이 와서 진행한 열병과 분열을 끝으로 시범평가가 끝나고 나서야 긴장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분열을 할 때 코너를 돌면서 열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던지! 

그래도 전교생이 시가행진을 하며 시민들의 환호성을 받을 때는 마음이 뿌듯하였다.


오히려 군대에서 제식훈련을 받는 것이 고등학교 때보다 부담이 덜했다. 

어릴 때 또랑또랑하던 머리로 훈련을 받은 덕분인지 K는 교관으로부터 ‘제식의 왕자’란 호칭을 얻었다. 

동료들이 잘 따라하지 못할 때면 K가 불려나가서 시범을 보였다.


군대에서의 훈련은 절반이상이 훈련이라기보다는 얼차려였다.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원산폭격, 팬텀 등등. 

넓은 연병장 위의 길로는 장교와 사병들과 문관들(그 중에는 여성들도 있었다.)이 박박 기고 있는 K네들을 쳐다보며 지나갔다.    (계속)

┃꼬릿글 쓰기
삼나무길 |  2022-03-18 오후 12:10:3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  
⊙신인 |  2022-03-19 오전 12:24:5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교련시간!!
하,,,,푸릇했던 시절은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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