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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달의금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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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야스쿠니 선열 3
2022-03-16 오전 9:50 조회 470추천 10   프린트스크랩

네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너는 빨갱이.”

능구렁이 같은 웃음을 흘리며 권철식이 자신만만하게 내뱉는 말이 최윤경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지만, ‘가슴이 답답하고 억울하고 분하다고 어디에 하소연조차도 할 곳이 없어, 그녀는 그를 노려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조국은 해방을 맞은 지 40년이 다되어가지만, 어째서 저런 흉악무도한 인간이 번들거리는 낯짝을 들고, 더구나 거들먹거리며 살아가도록 놓아두고, 그도 모자라 벼슬까지 줘서 나라의 녹을 먹게 만들고 있는지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며 원통해 할 노릇이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투쟁을 하다 제 민족을 팔아먹는 저런 인간들에게 잡혀서 죽고 옥고를 치렀건만, 그 무수하게 많은 투사들 앞에, 조국은 왜 저런 인간을 속 시원하게 처단해내지 못하고, 오히려 나라를 맡기고 이렇게 멸시와 모멸을 받게 한단 말인가.

김원봉 선생께서 해방된 조국의 경찰과장이 된 권철식에게 수갑을 채여 잡힌 뒤 면회를 온 의열단 동료에게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해방된 조국에서 악질 친일파 경찰의 손에 의해 수갑을 차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선생의 가슴이 얼마나 답답하고 원통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권철식은 일본이 원자폭탄 2발을 맞은 뒤 무조건 항복선언을 하고, 조선이 해방을 맞이하자 망연자실했다.

이젠 동네 사람들에게 맞아죽겠구나!’

이런 생각에 그는 어디로 가서 목을 매 죽을 수밖에 없다고 자포자기 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 군정이 해방 후 한반도 상황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판세가 묘하게 흐르고 있음을 눈치 챘다. ‘이 뛰어난 그는 자기가 살아날 구멍이 생겼음을 알았다. 미 군정이 1945년 말까지 일제의 경찰조직 체계를 유지시켜 치안을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다. 일제의 경찰 조직을 그대로 복원, 유지시키기로 정책을 정한 것이다. 이로써 해방 후의 정부에서 경찰은 경위 이상의 고위직중 일제 경찰 경력자가 80% 이상을 상회하는 일제의 조선인 순사 조직으로 되살아나 버렸다.

권철식은 바뀐 세상의 어엿한 경찰 간부로 재탄생했다. 그는 이제 독립 운동가를 잡는 순사에서 공산당을 때려잡는 경찰로 완벽한 신분 세탁을 이뤄냈다. 이 신분을 이용해 그는 독립 운동가들을 빨갱이로 몰아 또다시 갖은 억압과 핍박을 해대는 세상으로 되풀이 하였다.

 

그녀와 같은 수많은 독립투사들은···

풀리지 않는 분을 또다시 감내하며 살아내야 하는 세상을!

해방된 조국에서 조선인 일본 순사에게 받는 고통으로 가슴을 치며 통곡해도 억울함이 풀리지 않는 억장이 무너지는 세상을!

힘겹고 눈물이 나도 조국을 독립시키겠다는 믿음으로 지켜낸 조국이 무너지는 세상을!

독립 활동의 대가로 얻어내게 되었다.

수십 년 전에 권철식에 의해 망가진 다리로 세상을 살아내기에 너무나도 벅찬 최윤경은 독립유공자로 인정을 받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자료가 부족하다는 답변뿐이었다. 그녀가 광복군을 도운 사실을 증명할 길이 없었다. 그녀가 평생 가슴에 간직한 소중한 연인이자 영원한 낭군인 박혁이 그렇게 저들의 손에 죽고, 그녀가 광복군과 연결된 끈이 사라져 버렸다. 유일한 증거는 그녀가 일본경찰에 의해 투옥되고 고문을 당한 사실뿐인데 그 자료는 권철식이 저렇게 버티면서 내놓지 않아서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신림시장 근처에서 또다시 불편한 몸을 이끌고 행상에 나섰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정부의 부단한 노력으로 주변의 동지들이 하나씩 하나씩 독립활동 사실을 인정받아 독립운동가로 새롭게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녀에게 미안해하면서도 지난 공적이 인정되어 정부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과, 그들이 죽은 뒤에 국립묘지에 묻힐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지난날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는 안도감을 나타냈다. 그녀는 그들에게 아낌없는 축하를 건네면서도,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 때문에 남한으로 같이 내려온 유일한 혈족인 남동생 최윤철의 삶도 완전히 구겨져버렸다. 강대국에 의해 처참하게 잘린 한반도에서 이념은 절대적이었다. 정치세력에 의해 나뉘어져 버린 이념은 빨갱이라는 낙인 하나로 개인을 완벽하게 매몰시켰다. 그는 남쪽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숨조차 크게 쉬면 반공법 위반의 족쇄로 옭아매졌다.

누나의 독립 운동이 어째서 이 나라에서 빨갱이 활동이 되어버렸는가!’

아무리 항변해도 그저 허공에 맴도는 외침으로 끝났다.

 

수십 년 전, 최윤경으로부터 광복군의 정보를 얻어내는데 실패한 권철식의 복수는, 연좌제가 되어 그렇게 그녀의 집안을 모조리 파탄시켰다. 한번 씌워진 불행은 대를 넘어 자식들까지 덮쳤다. 어렵사리 최윤식은 시장 통에서 만난 아내 박복순과의 사이에 딸 둘을 두었다. 그러나 그 결혼 생활마저 순탄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그는 울분을 술로 풀어냈고, 아내는 더 이상 그의 곁을 지켜내지 못했다.

아내가 자식들마저 버리고 떠나버린 날, 망연자실한 그에게 누나는 술 한상을 차려내는 것밖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미안하다! 못난 누나 때문에 너도 내 조카들도 세상을 모질게 살게 만들었구나.”

그런 누나를 바라보며 그는 또다시 서러움이 북받쳤다.

그게 왜 누나 잘못이야! 세상에 누가 독립 운동을 한 것이 죄라고 말을 해.”

울부짖으며 말하는 그의 충혈 된 눈을 바라보며 그녀는 말없이 동생의 빈 잔에 술만 따랐다.

누나! 나는 이 세상이 싫어. 잘난 사람들이 못난 사람들 등치고 빼앗아 배불리고, 부자들은 점점 더 돈이 많아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 더 돼지우리 같은 곳에서 사료 같은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살아. 정치가들은 제 세상을 얻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온갖 감언이설로 국민들을 호도해. 거기에 언론들은 자기들 입맛에 맞는 정치가를 띄우려고 갖은 선동을 다 하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 나갈지 자신이 없어. 내 자식들에게도 미안하고 부끄럽고!”

그녀는 그의 좌절을 알기에 묵묵하게 울분을 들어주었다.

 

독립운동을 한 것이 어째서 이 나라에서 죄가 되는지를 자신조차도 납득이 가지 않으니, 동생에게 무어라 말을 해줄 수 없었다. 그녀의 생각에는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면 안 되는 것이었다. 무슨 사정이 있건, 누가 정권을 잡았던 간에 나라와 민족을 구하려는 일편단심이었던 독립투사들에게 존경어린 존중과 따뜻한 위로와 보상을 해주지는 못할지언정, 그 의인들을 잡아가두고 핍박하고 고문하던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겨 그들과 후손들에게 고통을 가한다면 누군들 나라가 위태로울 때 나설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가슴 속 깊이 묻어 둔 박혁 동지가 떠올랐다. 그와의 하룻밤으로 자신의 삶 전체를 맞바꿔 버렸지만, 단 한 점의 후회조차 없는 소중한 기억속의 사람. 오늘같이 힘겹고 막막한 날에는 늘 그 사람이 그리워지는 것은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사랑과 존경과 안타까움 탓일 것이다.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음이니...... 진정한 사랑은 오롯하게 그리움만으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동생이 평소와 달리 늦게 일어나서 이상했으나, 어제 과음한 탓으로 여겼다. 아내도 가출하고, 할 일도 없고, 술까지 많이 마셨는데 무슨 재미로 일찌감치 아침을 열겠는가. 그녀는 어린 조카들과 아침을 먹고 아빠를 깨우지 말라고 당부한 뒤, 시장에 일하러 나갔다.

점심을 먹고 한창 손님들과 흥정을 벌이고 있는데 작은 조카 선미가 뛰어왔다.

고모! 아빠 점심을 차리고 깨우러 방에 들어갔는데 아빠가 숨을 쉬지 않아.”

뭔 소리야! 어제 밤까지도 멀쩡했는데.”

그녀의 머리를 불길한 생각이 가득 채웠다.

허겁지겁 집에 도착해서 보니 동생은 이미 숨져 있었다. 급히 경찰에 신고하고, 병원에 도착하니 의사는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이 아무리 허망해도, 네 목숨마저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리면 이 누나는 죽어서 아버지,엄마를 무슨 낯으로 뵙겠냐!”

그녀의 울부짖음은 또 그토록 허망하게 허공만 울렸다.

그녀의 삶이 또 한 번 구겨졌다. 이제부터는 불구의 몸으로 어린 조카 둘마저 감당하고 살아야 했다. 독립투사 최윤경의 삶은 너무나도 곤궁하고 비참했다.

내가 정말 조국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맞는 것인가!’

혼란스러웠다.

┃꼬릿글 쓰기
nhsong |  2022-03-16 오후 12:16:3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재밋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 합니다.  
⊙신인 재밌게 봐주시고 꼬릿글도 주셔서
저도 고맙습니다!
영포인트 |  2022-03-16 오후 2:58:3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 ♡♡♡♡♡♡♡ ~  
⊙신인 💚💛💖💛💚
머루 |  2022-03-16 오후 5:26:0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어떻게든 살아남는것 말고는 생각 할게 없었던 시대.
바로 우리 부모세대의 이야기라고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신인 그 역경을 이겨내신 분들로 말미암아 우리 세대가 있었고,
우리시대의 고통으로 자식세대는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우리세대 화이팅입니다!!^^
주향 |  2022-03-17 오후 10:11:2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앞으로가 더 많이 기대 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삼나무길 |  2022-03-18 오전 7:47:2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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