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계의 변화는 곧바로 눈족과 티탄족에 영향을 미쳤다. 두 부족 모두에게 식량이 부족해졌다.
“히페리온대장군, 오랜만입니다.”
두 부족은 긴급한 대책이 필요하였고, 공동의 대책을 세울 필요가 생겼다.
“이렇게 장군님을 다시 뵙습니다. 안녕하셨습니까.”
쿠트나호라 시절에 상급자였던 트리톤을 히페리온이 정중하게 맞이했다. 비록 두 부족이 갈라져서 각각 다른 족장을 모시고 있는 처지였고, 지난번 서로가 한차례 전투도 벌였으나, 공적인 자리에서마저 서로 대면을 꺼릴 만큼은 아니었다.
“티탄족의 부족원이 많이 번성하고 있다지요. 크로노스족장님의 지도력이 대단하십니다.”
“뜻밖에 아툼족장님의 혜안으로 눈족도 큰 번영을 이루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트라하시스족장님과 대장군님의 크신 영도력에 저도 감탄하고 있습니다.”
두 대장군은 덕담으로 말문을 열었다.
“크게 보면 선족의 번영이니 축하하고 축하 받을 일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요즈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우리 부족들의 번영에 장애물이 될 염려가 있어서 걱정입니다.”
“‘영계’라는 것이 존재하다니 저도 놀라울 따름입니다. 한낱 우리 부족에게 먹이가 되는 하등동물의 영으로만 알았었습니다.”
“만약에 그 ‘영계’라는 곳을 우리들이 차지한다면, 두 부족은 두어 단계의 번영을 한순간에 획득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는 순도가 높고 영양가가 풍부한 영들이 가득할 테니 말입니다.”
“저도 정말 욕심이 납니다. 우리 두 부족이 힘을 합치면 가능 한 일이 아닐까요.”
공동의 적이 나타나자 두 부족은 결속하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두 부족이 가진 장비는 영을 포획하는 알마스가 전부였다. 쿠트나호라 시절부터 모든 영을 포획하는 데에는 이 장비 하나면 충분했었기에 다른 장비를 개발이 필요하지 않았다. 또한 두 부족이 가지고 있는 무기인 바리사다는 선족에게만 공격이 가능한 장비였다.
“우리가 영계를 공격 할 무기가 지금 당장에는 없으니 알마스를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부족이 연합하여 영계를 공격 할 무기를 개발합시다. 이 무기는 영계를 공략하는데 쓰일 테니, 서로에게 부담이 없을 것입니다.”
두 대장군은 의미 있는 회담의 성과를 거두고 헤어졌다.
경황이 없어서 두 사람은 자신들의 공력이 급격히 증가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은 두 사람 모두 자신들에게 공력이 있다는 것도, 공력이 무엇인지도 이번에 자명을 통해 비로소 알았다.
“두 분께서 어떤 인연으로 이렇게 엄청난 성취를 얻으셨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연구한 영의 세계를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제 잠시 말씀드렸듯이 사용하던 몸을 떠난 영은 지구의 곳곳에 있는 볼텍스로 이끌립니다. 그곳은 자기장이 강한 곳으로 영들에게는 1차 목적지입니다.
볼텍스에 모인 영들은 영계에서 나온 인도영에 이끌려 영계로 들어가서 보호를 받게 됩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사후세계입니다. 그렇지만 일부 원한으로 죽음을 맞이한 영들은 볼텍스로 향하지 않습니다. 지구에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 영들은 흑화되어 심약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현혹하게 됩니다. 이들 영에는 사람의 영도 있고 동물과 식물의 영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동안에 상처를 입고, 한에 사무친 원한마저 가지게 된 영이 원한을 풀고자 악행을 저지릅니다. 다만, 아무리 강력하게 흑화 된 영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몸에 직접 위해를 가하지는 못합니다. 심약한 마음을 건드려 사람 스스로 망가지게 만들 뿐입니다.”
“영계라는 것은 어디에 위치하고 어떤 일을 하는 것입니까?”
“그곳은 강력한 결계에 의해 보호되고 있어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역사상 가장 공력이 강한 영이었던 4대 선지자 영들이 그분들을 따르는 지상의 영들을 규합하고 그들의 영력을 한 방향으로 이끌어 더욱 강력한 영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풍요로운 물질사회가 된 뒤로 영계로 이끌 만큼 가치 있는 공력을 가진 영이 점점 줄어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동, 식물을 함부로 학대해 수명을 다 누리는 동, 식물영 또한 격감하면서 모든 생명체의 영이 영계로 인도되는 수가 확연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주군과 같이 제 능력으로는 감히 측량조차 불가능한 강력한 영력의 소유자가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아직 약관에도 미치지 않은 나이에 이룬 성취입니다”
“저는 제가 어떤 것도 의도적으로 공력을 높이려 노력한 적이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중요한 것은 주군께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영계를 이끌 만큼 강력한 영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새로운 구원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건입니다. 지금 세계 곳곳의 볼텍스가 미지의 존재들에게 점령되었다는 의미는 불행하게도 영계에서도 미지의 존재들을 물리칠 능력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영계를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방어만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혼란의 시기를 당한 지구상의 생명체 영들에게, 그들을 포획해가고 있는 미지의 존재를 물리치고 영계에 희망을 되찾아 줄, 진정한 구원자가 나타나셨음을 저는 확신합니다.“
말을 마친 자명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제가 그럴 능력이 정말 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자명님은 부족하고 어리석은 저를 너무 크게 보십니다.”
“앞으로 해나가실 일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저 치우님의 존재로써 위안을 받는 영들도 있고, 스스로 물러나는 적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어머니이신 묘화님과 함께 존재하심만으로 스스로 빛을 낼 것이며, 다른 영들이 푯대로 삼을 것입니다. 그리고 위대해질 것입니다.”
자명의 확신에 서치우와 묘화는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삶이 어떤 방향을 향해 자신들도 모르게 진행되고 있었음을 느꼈다. 그것은 숙명이었다.
“제 영적인 감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현세에 이르러 강력한 지도자 영이 출현했습니다.”
지제수의 말에 나머지 세 영도 공감했다.
“나도 그런 기운을 감지했습니다.”
석달타영이 말했다.
“다만 그 영이 강력할 뿐, 어디에 속하는 영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가 선하다면 영계는 존속할 것이고, 그가 악하다면 영계에는 살육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 오래지 않아 우리는 그 영을 직접 만나게 될 듯합니다.”
4대 선지자 영들은 기대와 염려가 교차하는 감정을 느꼈다.
“분명히 우리는 큰 위기를 만났습니다. 영계를 위협하는 적이 나타났지만, 우리는 그 적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더욱 위험합니다. 이런 시기에 출현하는 지도자 영이 우리의 적과 대적해주실 분이기를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만약 그와 반대의 경우라면 우리는 소멸을 면치 못하겠지요.”
석달타영이 가부좌를 틀며 하는 말에 나머지 세 영들도 각자 자신들의 방식으로 자리에 앉아기도를 시작했다.
“제가 자명님에게 제 공력을 조금 드리고 싶습니다.”
뜻밖의 말에 자명은 기쁜 낯빛이 되었으나, 그 의미가 궁금했다.
“제게는 더없는 영광이고 기쁜 일입니다. 제가 주군의 뜻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자명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려면, 자명님의 일 갑자 공력은 합리적이지 않을 듯합니다. 지난번 같은 위기에 처했을 경우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정도의 공역은 되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주군의 말씀에 저는 몹시 기쁩니다. 제게 공력을 내리신다는 말씀보다, 영계의 생리와 영력의 의미를 모두 이해하셨다는 이유입니다.”
“제 생각에 제 어머니의 공력은 15갑자 정도로 생각됩니다. 자명님의 공력도 그 정도면 스스로 위기를 이겨내실 수 있지 않으실까요?”
“주군의 큰 사랑에 감읍합니다. 다만, 제 영이 아직 그 정도의 공력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제게는 10갑자의 공력 정도도 벅찰 것입니다.”
“그럼 10갑자의 공력으로 하시지요.”
자명은 서치우에게 공력을 받으며 매우 놀랐다.
‘아! 공력이 이처럼 청량하고 신선하다니. 주공에게는 분명히 특별한 인연이 작용했다. 하늘이 내린 인물임이 분명하다.’
“제 어머니의 공력은 수많은 명소를 다니며 치성을 올리는 동안 얻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 정도의 정성으로 얻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주군께서 말씀하신대로 지난번에 어머니의 부상을 치료하시는 과정에서 공력을 나누신 것 같습니다. 주군이 무의식중에 행하신거죠.”
“그랬군요, 이제 어머니의 공력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제 공력에 대해서는 저는 아직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특별한 인연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