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동굴 밖으로 나와 집으로 향했다. 멀리 거마산 중턱에 구름이 걸려 있었다. 눈을 반쯤 감고 멋진 경치를 감상하던 서치우의 눈에 바위틈 사이로 쓰러진 형상이 보였다.
“엄마, 저 위쪽 바위에 뭔가 있어요.”
아들이 가르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묘화에게도 희미한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무엇인가 다친 것 같구나. 가보자.”
모자는 서둘러서 바위틈에 도착했다. 사람의 형상이었다.
“다치셨나보군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신음을 하고 있던 형상이 정신을 수습하고 두 사람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당신들은 살아있는 사람 아닙니까? 어떻게 나를 본단 말이오.”
모자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스러질 듯 창백한 존재가 하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우리에게 말을 하고 있어. 부상이 심해 그냥두면 죽을 것 같기도 하고. 어쩌지?”
묘화에게는 그 형상이 산신령처럼 느껴졌다.
“우선 동굴로 데려가자. 엄마 생각에는 동굴이 아주 신령스러운 곳이라 도움이 될듯하다.”
서치우는 그 형상을 안아들었다. 너무 가벼워 마치 허공에 팔을 뻗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동굴에 들어온 지 서너 시간이 흘렀다. 데려온 형상의 윤곽이 더 뚜렷해졌다.
“고맙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무엇인가가 내게 기를 보충해주고 있군요. 이제 기운을 차릴 수 있겠어요.”
“다행입니다.”
“아까도 내가 두 분께 말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분명히 살아있는 사람이신 두 분이 어떻게 나를 보는 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모자는 역시 무슨 말인지 몰라서 서로 얼굴만 마주보았다.
“나는 죽은 사람의 영입니다.”
“그럼 내가 혼백을 보고 있고 혼백과 말을 하고 있다는 겁니까?”
묘화가 소스라치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모두에게는 이 상황이 정리될 시간이 필요했다. 셋은 한동안 아무 대화도 없이 앉아있었다.
묘화는 얼마 전에 아들이 했던 ‘이상한 것들이 영을 잡아간다.’던 말이 기억났다. 그때는 신령님이 점지해준 아들이라 그런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죽은 사람의 혼령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아무리 심산유곡을 찾아 치성을 드리고, 사람들에게 점을 쳐주는 무당이지만, 세상에 이런 일은 가당치 않은 것이다.
‘내가 많이 허해졌거나, 큰 신이 내게 내린 것이 분명해.’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아들 서치우가 어제 그녀를 치료해준 이후부터 무엇인가 많은 감각들이 새로워졌다.
‘내 아들이지만 범상치 않아. 분명 내가 신령님의 점지를 받은 거야.’
“나는 살아생전에 끊임없이 심신을 수련해서 일 갑자의 공력에 도달한 수도자입니다. 이제 그 공력으로 영계에 들어가려고 이곳으로 왔는데, 어떤 알 수 없는 존재가 마치 덫을 놓아 짐승을 잡아들이듯이 나를 포획하려 했어요. 다행스럽게도 내게 약간의 공력이 있어 도망을 쳤지만, 이렇게 심하게 내상을 입고 쓰러졌는데, 두 분께서 나를 이 동굴로 데리고 온 덕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 동굴은 정말 신묘하군요. 기가 충만해 있습니다. 그리고 두 분에게서 느껴지는 공력이 대단하십니다. 더구나 아드님의 기운은 수천갑자는 능히 될 듯 고강하군요. 문파 하나를 충분하게 이끌 내공이십니다. 존경스럽습니다.”
기력이 회복된 자칭 죽은 사람의 영이 말했다.
“이제 동굴을 나서면 어디로 갈 예정입니까.”
“이곳 거마산은 강한 기가 모이는 곳으로 ‘볼텍스’라고 합니다. 볼텍스를 통해야만 영계로 들어갈 수 있으므로 죽음을 맞이한 모든 생명체의 영들은 세계의 곳곳에 있는 볼텍스로 모여듭니다. 제가 살아 있은 동안 많은 연구를 통해서 알아낸 것들이지만, 미지의 존재는 전혀 뜻밖입니다. 거마산도 미지의 존재가 있어 위험합니다. 제 생각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거마산 볼텍스마저 미지의 존재가 노리고 있다면 이제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그러면 가실 곳이 없군요.”
“만약 허락하신다면 이 동굴에 숨어 지내면서 기회를 엿보고 싶습니다.”
“엄마, 이분이 여기 계셔도 되겠지요?”
맞닥뜨린 현실의 혼란스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생각에 잠겨 있던 묘화는 아들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럼 여기에 있어도 되지. 이곳이 마음에 드시는 것 같은데.”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자명입니다. 두 분의 공력이 저보다 뛰어나시니 저를 수하로 거두어 주십시오.”
“제 나이 불과 열다섯입니다. 그런 말씀은 제게 과분합니다.”
“불가사의한 일이군요. 그 나이에 무슨 인연이 닿아 이렇게 높은 경지의 공력을 얻을 수 있었는지! 하지만, 영의 세계에서 나이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높은 공력이 있어야 자신보다 공력이 낮은 영들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공력이 낮은 영들은 공력이 높은 영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따르고 싶어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앞으로 주군으로 모시겠습니다.”
자명이 서치우 앞에 엎드렸다.
“어찌 이러십니까.”
서치우가 어쩔 바를 몰라 했다. 너무 많은 일들이 갑자기 벌어져서 혼란스러웠다. 그렇지만 땅에 엎드린 자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허락을 받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을 기세였다.
영계의 노력으로 점점 미지의 존재에 대한 정체가 드러나고 있었다. 그렇지만 공포와 불안은 더욱 가중되었다. 정체마저 불분명한, 극복할 방법도 알 수 없는 강력한 포식자. 세상의 모든 영들이 새로 나타난 포식자의 먹잇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이었다. 특히 사람의 영들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최상위 포식자인줄 알고 살았는데 갑자기 먹이가 된다고 하니 감당이 안 될 것입니다.”
“이제 모든 영들이 그나마 안전하다고 여기는 영계로 들어오려고 몰려들 것입니다. 영계에 대 혼란이 불가피합니다.”
“영계에 들어 올 수 있는 영들에 대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혼란을 피하려면 영을 선별해서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너무 잔인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 4대 선지자 영들이 겨우 영계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제수영님의 공력이 예전에 비해 쇠약해져 있습니다. 7망성형을 이루어야만 세상의 모든 영들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6망성형 까지만 가능한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이 최선입니다.”
영계는 아그리파영에게 역할을 부여했다. 그는 평소에도 영의 가치를 구분하고자 노력했다.
“생명체 모두에게 존재하는 영은 생명체의 종류에 따라 영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그들의 영 모두는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
그의 이런 주장은 지금의 위기에 처한 영계에 매우 적절한 주장이었다. 그는 영계에 들이지 않을 영을 선별하는 기준을 세우고자 했다.
영력이 낮은 영
죄를 지은 영
먹이를 낭비한 영
다른 종족에 해를 입힌 영
생명을 경시한 영
다른 생명체에 예의를 잃은 영
이 기준은 사람의 영에 매우 불리했다. 사람의 영으로 살면서 지키기 매우 어려운 조건들이었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서 그만큼 사람의 영은 다른 생명체의 영에 비해 가치가 적을 수밖에 없는 영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개체에 지나치게 많은 편익과 풍요로움은 반드시 다른 개체들에게서 편익과 풍요로움을 가져온 결과물이다. 이 불균형은 대부분 사람이 만들었고, 사람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에게서 빼앗고 있다. 심지어 사람은 같은 개체들끼리도 편익과 풍요로움을 빼앗는 해괴하고 파괴적인 종이다. 그로 인해서 사람 중에는 풍요마저 불편하고, 그 풍요로 인해 삶이 지루한 나머지 생명을 버리기도 하는 개체가 있는 반면, 잃어버린 풍요로 인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생명을 잃거나 버리기도 하는 개체마저 생겨난다.
같은 종족에 마저 극단의 이기심을 보이는 사람은 동, 식물들에게는 극악무도한 존재다. 그럼에도 스스로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월계관을 스스로의 머리에 얹는 만용을 부리고 있다.
아그리파영의 기준이 제시되자 사람의 영들에게서 수군거림이 일었다. 불만이다. 그렇지만 동, 식물의 영은 환영했다. 비록 1항의 ‘영력이 낮은 영’이 아쉬웠지만, 그들에게 유리한 이 항목마저 없었으면 사람의 영들은 이 기준을 폐기하려 들었을 것이다. 여러 이해관계를 뒤로 하고, 영계에 ‘아그리파 기준’이 선포되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형편이기 때문이었다.
지제수영과 모하도영이 올드티코영을 찾았다. 동, 식물영계를 둘이서 맡기로 했으니 그들의 속마음을 들어보아야 했다. 올드티코영은 ‘영계의 은자’로 추앙받는 영이었다. 그도 주위에 있는 그린란드상어영과 대합조개영, 거북이영들과 함께 아그리파영의 기준에 대한 토의를 하던 중이었다.
“올드티코영님! 여전히 활력이 넘치시는군요. 지상에서 9,500해를 넘기시고도 이렇게 강건하시다니요.”
“어서오세요, 두 분 선지자영님! 아직도 지상에서는 나의 일부가 생명을 유지하고 있답니다. 생명의 개념이 생명체의 종류마다 조금 다르죠.”
“여러 영들이 모여 아그리파영의 기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었던 듯합니다. 어떠신가요.”
“우리 동, 식물영은 무난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영과 달리 다른 영들은 욕심을 부릴 줄 모르거든요.”
“순하고 착하게만 보이는 동물들에게도 원령이 있습니다. 우리 중 많은 영들이 원령이 되는 이유를 생각해보셨습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거북영이 작심한 듯이 말을 꺼냈다. 수명이 긴 그는 세상사를 두루 겪어 지혜가 깊었다. 두 선지자영이 말없이 있자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동물 영 중에 자연이 부여한 제 수명을 누리는 영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물론 약육강식의 생태계에서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에 의한 동물들의 죽음은 동물 중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다른 생명을 먹어야 목숨이 유지되니까요.
그렇지만 사람에 의해 죽은 경우는 매우 다릅니다. 우리들 눈에는 배고픔만으로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사람이 동물을 죽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식가에게 맛있는 부위를 제공하기 위해, 상어의 지느러미만 자르고 나머지 몸뚱이를 물속에 던져버려 죽게 만드는 경우를 보십시오. 잡았으면 차라리 다른 부위도 먹는다면 이토록 분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그린란드상어영이 눈물을 흘리며 분노로 가슴만 두드리다 자리를 떴다.
“사람이 돼지를 길러 도축할 때, 고기가 가장 연하고 맛있을 때에 맞춰 불과 몇 달 만에 목숨을 빼앗습니다. 닭들은 알을 최대한 많이 낳도록 운동을 못하게 케이지에서 키웁니다. 또 부드러운 닭고기인 영계 닭을 얻는다고 몇 달 만에 목숨을 빼앗습니다. 이렇게 죽은 동물 영들이 원령이 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식물 영들도 사람들에게 한이 많습니다.”
올드티코영이 말을 이어 받았다.
“사람들이 여유로움이 넘치자 우리 식물들로 조경을 한다고 합니다. 그들의 눈에 보기 좋게 식물들이 사는 곳을 수시로 바꾸죠. 뿌리를 잘라버리고 당장 죽지 않을 만큼만 남겨서는 이곳 저곳으로 옮기다가 시들어버리면 영양분을 마구 줘서 당장 죽지도 못하게 하여 고통 속에 서서히 죽게 만듭니다. 그리고 사람들 눈에 좋게 보려고 사정없이 가지를 잘라버립니다. 마치 일렬로 줄과 높이를 맞춰 자란 듯이 나무들은 새순과 잔가지를 잃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몇 년 지나지 않아 파내버리고 다른 나무를 그 자리에 심죠. 식물들이 오래 한곳에서 평화롭게 살아나갈 꿈을 사람들이 짓밟은 지 벌써 수 천 년입니다. 그리고 식물의 품종을 개량한다는 미명으로 생명체의 역량들을 열매와 씨앗을 만드는 데에만 쓰게 만들어서 식물을 사람 먹거리생산 공장화합니다. 그렇게 희생된 식물의 영들이 어떻게 온전하게 선한 영이 되겠습니까.”
작심한 듯 아픔과 상처를 호소하는 그들에게, 지제수영과 모하도영이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우리의 영력이 소진되는 날까지 저는 동물 영과 식물 영을 사람 영으로부터 지켜내는데 부족한 힘이나마 모두 바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