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서 지제수는 열다섯이 되었다. 자신에게 드리운 악의 기운으로 인해 영역이 조금씩 소실되어 가는 일을 막아내려면 어두운 기억을 떨쳐 낼 새로운 기억이 필요했다. 그래서 환생을 결심했고, 어릴 적의 순수한 행복을 얻어낸 뒤, 다시 영의 세계로 돌아갈 시기를 열다섯으로 생각했다. 15년이면 조금씩 소실되어가는 영을 보충하고, 새롭고 깨끗한 삶으로 완전하게 깨달음을 얻은 선한 영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 생은 완전히 실패다.’
하필 결손가정에서 태어나서, 난폭한 의붓아버지와 살게 되고, 어쩌다 사람의 목숨도 잃게 만들었다. 도저히 선함을 얻을 기회가 없는 생이었다. 더구나 지은 죄로 인해 지내게 된 교도소에서 바라본 사람의 모습은, 더 이상 가망이 없는 것들이었다.
‘이번 생에서 적어도 나는 가르침 한 가지는 확실하게 얻었다. 세상의 모든 영들 중에 사람의 영이 가장 가치가 없다. 사람은 선하기가 너무 힘들구나. 엄청난 혜택을 얻고 사람으로 태어났건만, 그 바탕이 어찌 저렇게도 사나울까. 다른 생명체는 본디 선하지만, 사람의 생명체는 본디 악하구나. 이제 영계로 돌아가면 사람의 영을 포기하고, 세상의 모든 생명체 영들을 보호하기 위해 헌신하겠다.’
지제수가 잠시 영계를 떠날 결심을 하던 즈음의 일이었다.
“지제수님, 영들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소. 들은 바가 없소?”
“예, 구자님. 처음 듣는 말입니다. 영이 사라진다는 뜻은 어떤 현상을 말하시나요. 소멸을 뜻하는 것인지, 실종을 뜻하는 것인지.”
옆에 있던 석달타가 말했다.
“얼마 전부터 있었던 일이라고 하오. 나와 구자를 따르는 영들이 전해준 말이오. 사람의 영은 문제가 없는데 식물과 동물의 영들이 사라진다고 걱정들을 하고 있었소.”
“우리가 영계를 돌보며 이끌어온 시간이 2천년이 넘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오. 원인조차 알지 못하니 걱정이 너무나 큽니다.”
석달타와 구자가 크게 낙심하고 있었다.
2천년 전 영계에 들어선지 얼마 안 되어, 지제수는 밝은 등불처럼 빛나는 영 둘을 만났다. 석달타의 영과 구자의 영이었다. 그들은 자신과 같이 수많은 영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미 수백 년이나 앞서 영계에 들어온 그들은 자신들처럼 밝게 빛나는 지제수 영에게 존경을 나타내며, 새로 영계에 나타난 그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에 그도 영계의 생활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이제는 지제수가 영계를 이끌어 온 시간도 2천년에 이르고 있었다.
그는 궁금한 점이 있었다.
“두 분께서도 영력이 점차 감소하는 것을 느끼십니까.”
그가 오랜 시간동안의 고민을 두 선지자 영에게 말한 것은 그들에게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일반 영들은 드물게 그런 현상을 겪기도 합니다. 삶의 고통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 낸 영들 중에서 고통스러운 기억을 떨쳐내지 못하면 나타나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지제수님처럼 큰 깨달음을 가진 영도 그런 일을 겪으시는군요.”
“그런 영들은 어떻게 됩니까.”
“결국 소멸의 길을 걷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길은 있습니다. 환생을 해서 행복한 기억을 얻는 방법입니다. 일반 영들에게는 큰 모험이지만, 지제수님처럼 큰 영력이 있는 경우에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다만, 다음 생이 행복할지 불행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선택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제수는 전생에 있었던 어린 시절의 일과 제자에게 배반당한 일 때문에 흑화 될 위기를 겨우 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두 분의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더 이상 저의 공력이 소멸되는 것을 방치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환생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만이라도 행복한 기억으로 바꿀 수 있다면, 소멸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분 선지자께서 15년 동안만 저를 따르던 무리를 보살펴주십시오.”
이제 때가 되었다. 또한 영계에 들어가면 이루어야 할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사람의 영이 아닌 생명체의 영을 이끄는 소명도 의미 있는 일이다. 사람의 영은 석달타 영과 구자 영이 맡으면 된다. 다만, 사람의 영 외에 다른 생명체의 영이 사라지는 문제는 저금 더 조사를 해야 할 일이다.’
교도소 안에서 그는 스스로의 삶을 결정했다. 그리고 곧바로 영계로 복귀했다. 그의 복귀에 영계의 모든 영들이 환호했다.
“지제수님,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석달타 영과 구자 영이 조금은 흥분된 모습으로 영계의 복귀를 축하했다.
지제수는 두 선지자 영에게 동물과 식물의 영만 돌보겠다는 자신의 결심을 말했다.
“우리가 지난번에 걱정했던 생명체의 영이 사라지는 일 때문에 그렇게 결심하신 것 같군요. 그렇다면 우리는 사람의 영만 돌보겠습니다. 다른 영들은 지제수님이 맡아주세요. 그렇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벅찰 것으로 생각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적응이 되겠지요. 벅차면 다른 훌륭한 영에게 도움도 받고요. 두 분도 저를 도와주시겠지요.”
“물론입니다, 얼마든지요. 지제수님께 도움을 주실 적당한 분이 계신데 아시지 않습니까. 모하도 영 말입니다.”
“아! 그분이 있군요. 제가 만나서 당부를 해보겠습니다.”
지제수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석달타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구자도 무엇인지 꺼림직 한 기분이 들던 참이었다.
“석달타님의 얼굴이 어둡습니다. 염려되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예, 제가 민감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제 눈에는 지제수 영의 후광에서 붉은 기운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걱정스럽습니다.”
“아! 그럼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니었군요. 저도 그 부분이 의아했던 참입니다.”
두 영은 서로 시선을 한차례 교환한 뒤 말없이 길을 재촉했다. 그 붉은 기운의 후광이 예사롭지 않음이 자꾸만 마음이 쓰였던 것이다.
모하도는 영계에서 차지하는 스스로의 위치가 불만족스러웠다.
‘나는 지제수님 보다 영계에 겨우 6백여 년 늦게 왔을 뿐이다. 그도 나도 선지자인데 내가 영계에서 역할이 너무 보잘것없다.’
욕심과 야망이 큰 그였다. 전생에 자신의 위치를 확실하게 다지기 위해, 자신의 교리에 스스로 최후의 예언자라고 못을 박아서 더 이상의 성현이 출현되는 길을 막아버렸다. 실제로 모하도 이후 1,500여 년 동안 단 하나의 성현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천년 동안에 4명의 성현이 지구상에 나타났었음을 보면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지제수는 그의 야망을 눈여겨보았다.
‘저 영에게 나의 길이 있구나.’
그는 스스로 흠칫 놀랐다. 사악한 목적으로 다른 영을 이용하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렀다.
‘아! 내게 점점 더 빠르게 흑화가 일어나고 있구나.’
환생으로 어린 시절의 나쁜 기억을 행복한 기억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오히려 더 나쁜 기억을 덧 씌워 버린 것이 치명적이었다. 이제는 방법이 없었다. 앞으로 스스로가 행할 악행이 두려웠다. 이렇게 스스로의 처지가 안타까운 중에도 그의 마음에는 영계를 혼란에 빠트릴 기대로 설레고 있었다.
히페리온에게 쫓기던 아트라하시스는 부상당한 몸으로 지구로 향했다. 트리톤 장군도 테티스도 다급하게 쫓기고 있어, 서로의 생사와 행방을 알 수 없었다. 트리톤장군이 개발한 무기는 이제 자신들을 해치는 무기가 되어 있었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는 그는 본능의 이끌림에만 의지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 히페리온의 추격은 이제 따돌린 듯 했다.
동굴 안!
그는 어떻게 이곳으로 들어왔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몹시 아늑하고 편안했다. 이곳이 그의 아버지 아툼족장이 만들어 놓은 비상 대피소인 것을 그가 알 길이 없는 일이었다.
커다란 바위들이 무리지어 있는 이곳은 인간들도 접근할 엄두를 못내는 험한 곳이다. 아툼은
동굴 안에 적당한 습기가 항상 유지될 수 있도록 물길도 내두었다. 특히 선족에게 효험이 좋은 백호기액이 함유된 샘물을 갖추어 놓은 곳이다. 백호기액은 지구의 기운이 응축된 정수다. 백호기액은 혜성이 지구 궤도에 근접하고 보름달이 뜬 밤 12시 정각에 옹달샘에 혜성과 보름달이 비칠 때 물을 마시러온 백호가 혜성의 기와 보름달의 정기가 담긴 물을 마시는 순간 쓰러져 옹달샘의 물에 녹아들어 걸쭉해진 진액을 말한다. 아트라하시스는 갈증이 일어 물을 마셨다. 그 물이 백호기액임을 알지 못하지만, 그 효능은 그를 눈을 감고 진기를 운용하게 만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트라하시스는 갑작스런 느낌에 눈을 번쩍 떴다. 경황없이 동굴에 들어와 다급하게 백호기액을 마시고 기를 운용하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동굴 안에서 느껴지는 다른 생명체의 기척을 알아채지 못했음이 불가사의 했다. 아트라하시스는 주변을 돌아보다 깜짝 놀랐다. 인간 여인이 쓰러져 있었다.
거의 죽은 상태의 몸이라 기운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아트라하시스는 인간의 여자를 천천히 살폈다. 특별한 외상은 없었지만 무릎 근처에 작은 이빨자국이 있었다. 독뱀에 물린 것이다. 이 인간 여자는 무척 운이 좋은 것이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들어 왔을 리 없지만 이곳에 들어온 이상 생명체의 어떤 상처도 치유되는 동굴이기 때문이다. 분홍독뱀의 맹독에도 몇 시각동안이나 생명이 끊어지지 않음은 이 동굴의 보호를 받은 덕택이다.
아트라하시스는 인간 여인의 무릎에 손을 댔다. 인간 여인의 몸에 퍼져있던 독이 아트라하시스의 손을 통해 흡수되어 중화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