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아버지가 만취한 채로 집에 왔다.
“물 가져와!”
방에 들어와 앉자마자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는 허겁지겁 물을 컵에 따라 건넸다. 그렇지만 컵은 벽으로 날아가 박살이 났다.
“찬물을 가져와야지, 미지근하잖아!”
동시에 아버지의 주먹이 어머니의 배에 꽂혔다.
“아이구!”
제대로 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어머니가 배를 움켜쥐고 방바닥에 나뒹굴었다.
“엄마!”
지제수는 엉겁결에 엄마를 몸으로 덮었다. 그의 등 위로 아버지의 무차별적인 주먹과 발길질이 쏟아졌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었다. 전생에 성취한 강력한 내공으로 그는 겨우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굵은 눈물이 그의 눈에서 떨어져 방바닥을 적셨다.
지제수의 머릿속을 다시 맴도는 전생의 기억!
나사렛으로 돌아온 그는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의 메시지는 단순하고 명쾌했다. 로마의 억압 속에서 희망을 잃고 마음속의 위안을 갈구하던 백성들은 사랑을 주창하는 지제수의 설교에 즉각 반응을 일으켰다. 그리고 뜻을 같이 한 동지이자 제자들인 12명의 선지자. 서른 나이의 성취는 놀라웠다. 그러나 그의 대중적인 성취는 독이 되었다. 기득권의 도전과 위협과 모함, 그리고 주변인들의 알력까지.
결국 지제수는 형틀에 매달렸다. 그럼에도 그는 좌절하거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12명의 동지들이 늘 구름처럼 모여들던 청중과 함께 나타나 형틀에서 자신을 내려놓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기다림이 길어졌다. 그리고 그의 마음이 점점 망가졌다.
“내 고통이 너무 크구나. 동지들이여,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가.”
그리고도 시간은 더 흘렀다. 이제 기진해 가는 몸이 정신을 헝클어 놓았다.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절망은 신을 부르짖게 만들었다. 논리가 사라진 것이다.
“너 그 소문 들었어?”
“무슨 소문인데.”
“저 죄수가 자기 스스로 메시아라고 떠들고 다녔다며.”
“그랬다네. 미친 거지.”
“그렇지. 그런데 미친 저 사람을 따르던 제자들이 많았대. 그런데 그 제자들 중에 하나가 은전을 받고, 제 스승을 팔아넘겼대.”
“그놈이 참 어중간한 놈이네. 그래도 늦게라도 정신 차렸구먼. 그놈 이름이 뭐래?”
“유다이라고 하던가?”
“그놈 이름 참 적당하네. You die, 맞네. 너는 이제 죽었다.”
지제수는 혼미한 중에도 형틀을 지키는 군인들의 농짓꺼리 말을 들었다. 이제 모든 것들이 명확해졌다. 지금 자신이 형틀에 달려 있는 이유와, 동지들과 추종자들이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았던 이유가!
현자임에도 그의 마음은 분노로 들끓었다.
‘내 삶이 완전히 망가졌구나. 어머니는 왜 나를 잉태했단 말인가. 나는 무엇을 바라고 아버지의 목수 일을 그렇게도 열심히 도왔고, 무엇을 얻으려고 머나먼 인도까지 다녀왔으며, 무엇을 이루려고 대중들에게 사랑을 설파했던가. 결국 그들은 나를 이런 식으로 사랑하고 말 것을. 깨달음 그 허망한 진리라니!’
자괴감과 배반당한 아픔으로 그는 울부짖었다. 하늘도 그의 아픔을 헤아리는지 비를 퍼부었다. 지제수를 지키던 군인들은 죄수가 울부짖는 바람에 시끄러웠던 차에 비까지 내리자 짜증이 부쩍 올랐다.
“아니 저놈이. 야, 조용히 안 해?”
그렇지만 형틀에 매달린 죄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악을 써댔다.
“저 놈 때문에 시끄러운데 비까지 오네. 에이, 재수 없어. 내가 저놈 옆구리에 이 창을 꽂아줘서 얼른 죽게 만들어야겠다.”
지제수는 옆구리에 창이 후비고 들어오자 오히려 그 고통이 후련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마음의 고통을 이겨내려 옆구리의 통증을 반겼다. 그 덕분에 죽음에 이르는 순간, 영이 흑화 되는 화를 면했다.
아버지의 폭행이 며칠 뜸했다. 어머니와 그는 마음이 더욱 불안해졌다.
“엄마, 요즈음 왜 조용하지?”
“그러게 말이다. 얼마나 크게 난리를 치려고 며칠을 조용하게 있는 거지.”
불안이 현실이 되었다. 바로 그날 밤, 아버지는 만취해서 들어왔다. 앞으로 닥칠 가늠 안 되는 사태로 집안에 불안감과 긴장감이 가득해졌다.
“집안 분위기기 왜 이 모양이야?”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늘은 집안의 살림살이가 분풀이 대상이었다. 몽둥이를 집어 들더니 가구며 가전제품이며 닥치는 대로 부수기 시작했다. 잔뜩 겁을 집어먹고 구석에서 떨고 있던 어머니가 더 이상 놔둘 수 없었는지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어머니에게 방해를 받자, 아버지는 몽둥이를 내던지더니 주방으로 가서 식칼을 집어 들었다.
“아버지, 제발 그만하세요!”
지제수가 비명처럼 외치며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어머니를 향해 달려들던 아버지와 지제수는 충돌했고, 그 바람에 아버지가 뒤로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그는 씽크대의 모서리에 뒷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어이쿠!”
이것이 의붓아버지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숨이 끊어진 아버지를 보며 어머니는 말했다.
“차라리 잘됐구나.”
어머니는 자신이 아버지를 밀쳐서 죽었다고 경찰에 진술을 했다. 아들은 정황을 곁들이며 자신과 부딪쳤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지제수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존속 살해혐의로 구속했다. 지제수는 구치소를 거쳐 교도소에 수감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어머니가 집안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편히 계실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마저 여유로웠다.
그렇지만, 교도소 내에서의 생활은 평화롭지 않았다. 범죄자들만 따로 모아서 지내도록 하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회에서 볼 수 없는 극악함이 존재하는 곳! 그곳에서 지제수가 본 사람의 영은 너무나 하찮았다.
전생에서 십자가라는 형틀에서 죽은 지제수는 죽기 직전에 가진 처절한 배신감과 좌절에도 인도에서 얻은 지혜와 내공으로 가까스로 흑화를 모면했다. 강력한 내공을 간직한 채 육신을 벗어난 그는 허공을 흘러 다니며 갖가지 영들을 보았다. 그리고 다행스럽게 자신이 인도에서 터득한 지혜와 경지가 올바른 깨달음이었음을 알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왠지 자신의 영이 조금씩 소실되어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육체를 가졌을 때 시간이 지나면 허기를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일거다.’
그는 그렇게 깊이 고민을 하지 않고 넘겨버렸다.
땅 위에서와 같이 허공에 온갖 생명체의 영들이 퍼져 있었다. 서로는 뭉치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며, 어떤 영은 곱기도 했고, 어떤 영은 흉했으며, 어떤 영은 크고, 어떤 영은 작았다. 특이한 점은 지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떤 영에는 따르는 영들이 있는 점이었다.
‘영계의 일상도 살아있을 때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이상한 일이 생겼다. 자신에게도 다른 영들이 따르는 것이었다.
‘왜 나를 따르고 있어요?’
그는 주변의 영들에게 물었다.
‘당신에게서는 빛을 느낄 수 있어요.’
‘우리는 알 수 있어요. 육신을 가지고 살면서 선하게 살고, 덕을 쌓은 분들의 영에서는 빛이 나는 것을요.’
‘그런 삶을 살면서 현자의 깨달음까지 얻은 분들의 영에서는 당신과 같은 후광까지 드리웁니다.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이끌어주실 분을 찾아서 기쁩니다.’
주변의 영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지제수는 자신의 영을 살펴보았다. 정말로 자신의 모습은 특별했다. 크기와 밝음이 다른 영들과 비교되지 않았다.
‘깨달음이 이런 것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