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사다는 충분한 위력을 보였다. 최상위 포식자였던 선족에게는 그동안 이렇다 할 무기가 사실상 필요하지 않았다. 과거에 쿠트라호라의 다른 생명체는 선족에게 어떠한 위협도 되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만약 무기가 있다면 그 사용대상은 유일하게 선족이 대상이라는 의미이므로, 무기가 있어서는 더욱 안 될 일이었다.
부족에게 처음 사용되는 발사체 무기였기에, 칼과 창으로만 무장한 부족민들은 쉽게 퇴로를 허락했다. 그러나 완전하게 탈출하기는 중과부적이었다. 친위대 중 일부는 잡히고 일부는 탈출했다. 그 과정에서 상당수의 바리사다가 크로노스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그들이 무기를 얻었지만 사용법을 알지 못하는 덕에 탈출에 성공한 일부는 목숨을 건졌다.
그렇지만 아폴로분화구는 수천 킬로의 거리였다. 탈출하여 건진 목숨이었지만, 그 목숨을 보전하여 아폴로분화구에 도착하기는 차라리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만큼 고통스러웠다.
필사의 탈출이었기에 각자는 다른 이들을 챙겨볼 여유가 없었다. 약속된 아폴로분화구에 먼저 도착한 트리톤은 이따금씩 도착하는 동지들을 반가이 맞이하고 있었다.
“탈출하는 중에 아트라하시스님을 보지 못했나.”
안타깝게 하나하나 동지들에게 묻고 있는 그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마음이 점점 어두워졌다. 딸 테티스도 아직 도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둘이 같이 탈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위로하며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는 대원들과 휴식을 취하며 기다렸다.
“장군님! 테티스가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건강합니다.”
“그 애가 혼자였느냐?”
“예. 혹시 아트라하시스님을 보지 못했는지 저희도 물었지만, 오히려 이곳에 아직 오지 않았냐고 반문을 했습니다.”
아폴로분화구에 도착한 숫자는 불과 300에도 미치지 못했다.
“우리 동지들의 피해가 너무 크구나. 더구나 우리는 아직 아트라하시스님의 생사여부도 모른다. 그분을 잃는다면 우리가 이곳에 있는 의미도 없고, 우리 친위대 동지들의 죽음도 빛을 잃는다. 모두 그분의 행방부터 찾는다.”
“아버지, 혹시 오빠가 크로노스 대장군에게 포로가 되신 것은 아닐까요?”
딸의 말에 트리톤은 고개를 저었다.
“만약 그가 아트라하시스님의 신변을 확보했다면 끝까지 우리를 추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분이 잡혀있으면 우리들이 저항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 테니.”
“그렇다고 여기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어요. 제가 길을 되짚어 가면서 오빠의 행적을 찾아보겠습니다.”
“너무 위험한 일이다.”
“아버지는 이곳을 안정시켜야 해요. 이곳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있어야 오빠를 찾는 것도 의미가 있잖아요.”
테티스의 말이 옳았다. 생존한 대원들과 이곳에서 살아남아 있어야 훗날을 기약할 수 있는 일이었다. 트리톤은 대원들을 다독이며 급한 대로 임시거처를 만들고 진지를 보강하며 무기를 보강하는 등 장기전을 준비하였다.
아트라하시스는 몸이 회복되었지만, 아폴로분화구로 돌아갈 수 없었다. 히페리온 일당이 자신을 잡으려고 지구의 곳곳에서 수색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는 크로노스에게 쫒기다가 엉겁결에 비행선을 타고 도망을 쳤고, 추격당하는 와중에 공격을 당해 기체가 일부 손상을 당했다. 그는 다급한 나머지 단발 비행선에 탄 것이었다. 히페리온의 쌍발 비행선을 당해낼 수가 없는 일이었다. 거기에 부상까지 당한 몸으로 지구에까지 쫒기다가 이제야 겨우 포위망을 벗어난 것이다.
‘그나마 의미 있는 일이라면 암컷 사람을 구한 것일까!’
그는 지구에서 탈출하지 못하며 숨어 지내는 동안, 이곳을 관찰하기로 했다. 비행선의 부서진 곳도 수리할 겸, 조금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기회로 삼았다. 아직 히페리온이 추적을 포기하지 않았을 터였지만, 숨어서 은밀하게 행동하는 자신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이곳의 생물들도 쿠트나호라의 생물들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았다. 지구상에서 지금의 최상위 포식자인 사람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고향에서 최상위 포식자였듯이 이곳의 사람들이 그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이곳의 사람들도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잘 파악하고, 다른 생명체의 존재를 존중하고 잘 이끌어 나간다면 우리 선족처럼 오랜 시간 후에는 모두가 영적인 존재로 진화할 것이다.’
그는 ‘사람’이라는 지구의 생명체에 흥미와 기대가 생겼다. 어쩌면 동굴에서 만난 사람 때문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대장군! 아트라하시스를 지구까지 추격했지만, 사로잡거나 제거하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포기하지 않고 그곳에 추격조를 남겨두었습니다.”
“히페리온, 이번에 너의 공이 컸다. 굳이 그를 죽일 필요는 없다. 이정도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수고 많았다.”
“감사합니다. 이제 대장군님의 앞을 가로 막는 것들이 모두 제거되었습니다. 감히 대장군님께서 족장에 오르시기를 권면 드립니다.”
“알았다. 조금 더 분위기를 살피기로 하자. 장군에게 지시할 것이 있다.”
“하명하여주십시오.”
“트리톤이 만든 무기 바리사다가 우리 수중에 들어왔다. 이 무기를 만들어 내고, 우리 병력들이 숙달하여 무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아폴로분화구로 도망친 잔당들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너무 잔인하게 처리하면 이곳의 우리 부족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남기게 된다. 장군 생각에는 저들이 우리에게 위협이 될 거라 생각하는가.”
“잔당들의 숫자가 오백도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트라하시스가 그곳에 있지도 않습니다.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입니다.”
“내 생각도 그렇다. 이쯤에서 마무리 짓는다. 우리는 이제 선족의 거주지를 확장하고, 부족민의 숫자를 늘려나가 부족을 안정시킬 것에 집중하기로 하자. 이렇게 하면 다른 것들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아트라하시스는 트리톤장군과 테티스 등의 동지들 안부가 걱정스러웠다. 벌써 한 달 넘도록 연락을 못했기에 서로가 걱정을 많이 하고 있을 것 같았다. 부서진 비행선 수리가 마무리되어서 연락을 취해 볼 수는 있지만, 도망치기에 바빴던 트리톤장군이 수신 장비를 가지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컸고, 더구나 크로노스에게 감청이 되기라도 하면 위험해질 것이기에 조심스러웠다.
지구를 관찰하는 것에 재미를 느낀 아트라하시스가 느지막이 비행선에 돌아왔다. 그는 무심코 통신장비 앞을 지나던 중 미확인 수신 신호가 도착되었음을 발견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신호였다. 혹시 자신을 추격하는 히페리온의 부하가 유인하려고 보낸 신호일 가능성에 그는 바짝 긴장했다.
‘확인을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
확신이 서지 않았다.
‘혹시라도 트리톤장군이 통신 장비를 확보했을까?’
확신이 서지 않은 그는 확인을 하지 않기로 했다. 아침이 되어 그는 지난밤에 신호가 다시 수신되었음을 확인했다. 갈등이 크게 일었다. 고민 끝에 그는 신호를 받기로 마음먹었다.
‘통신 장비를 비행선에서 분리시킨 다음, 멀리 이동해서 확인하자. 그러면 만약에 추격을 당하더라도 피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서너 시간이 지난 뒤, 수신음이 들렸다.
“수신하시는 분이 혹시 아트라하시스님이십니까?”
낯선 음성에 가 주저했다.
“나는 쿠트나호라에서 오고 있는 중입니다. 아트라하시스님과 연락 할 수 있습니까?”
상대방이 쿠트나호라를 말하는 순간, 그는 경계심이 사라졌다.
“내가 아트라하시스입니다. 쿠트나호라라니요. 그곳은 수십 년 전에 붕괴됐는데, 어떻게 그곳에서 오고 있다는 말입니까.”
“저는 아툼족장님의 명으로 그곳을 탈출한 트리톤장군의 부관이었던 토마스입니다.”
“아, 부관님! 기억납니다. 이렇게 통화를 하게 되다니, 무척 기쁘고 반갑습니다.”
“저는 달 기지에 3일 후에 도착합니다. 어디에 착륙 할까요.”
“정말입니까.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을까요. 트리톤 장군은 지금 아마도 아폴로분화구에 계실 것입니다. 사정이 있어서 연락을 받으시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부관님, 제가 지금 즉시 아폴로분화구로 이동하겠습니다. 지금 이 채널로 연락하면 되는 거죠?”
“예, 저희는 약 선족 3만정도가 탑승한 편대입니다.”
아트라하시스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많은 부족이 오시다니요. 이 통신 주파수가 보안이 되고 있습니까?”
“예, 통신 보안 완벽합니다,”
“알겠습니다. 3일 후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