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페리온이 급히 크로노스를 찾았다.
“대장군, 트리톤장군 관련하여 시급하게 동향을 보고하고자 찾아뵙니다.”
늦은 시간에 찾아온 부하를 보며, 그는 심각한 사태를 예감했다.
“조금 전에 트리톤장군이 일당들과 다시 회합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직 정비와 강령 채택까지 하였답니다.”
“강령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는군.”
“예, 짐작하시는 대로입니다. 조만간 행동으로 나서려는 움직임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자신들의 잇속이나 챙기려들다니. 밤이 늦었으니 내일 더 이야기를 하기로 하자. 수고 많았다.”
히페리온이 돌아간 뒤, 그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나에게 기회가 왔다고 여기는 순간이 되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지금의 기회를 충성심을 보여야 할 시기인지, 시대적인 소명으로 여겨야 할 시기인지 판단하는 데는 오랜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부족의 앞날을 책임질 자신감이 있고, 야망도 있음을 잘 안다. 다만, 자신에게는 명분이 필요했다. 아툼족장이 왜 그의 심복인 트리톤장군을 비행선에 승선시켰는지를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도 자신의 야망을 눈치 채고 있기에 아들을 보호하고자 안배를 한 것이다. 그 트리톤장군이 자신에게 명분을 주고 있다고 부하장수가 지금 보고를 한 것이다.
다음날 아침, 그는 히페리온 장군에게 지시를 내렸다.
“무슨 방법을 동원하든 트리톤장군 일당이 만들었다는 행동강령을 입수해라.”
트리톤장군 측에서 작성한 행동강령은 어렵지 않게 입수되었다. 강령은 트리톤과 아트라하시스를 제거할 충분한 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부족의 단합과 발전을 저해하려는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조직을 결성하고 실행을 시도한 죄’
이제 얻은 패를 언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만 남았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들이 불리해진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이제 성급함이 부추겨 곧 때가 무르익게 된다.’
트리톤은 조급함이 실패를 불러올 수 있음을 잘 아는 지장이었다. 그렇지만 마음은 자꾸 그를 재촉했다. 자신은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데 크로노스의 위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견고해지고 있어 조바심이 일게 만들었다.
‘신중해야한다. 내가 일을 그르치면 이는 곧 아트라하시스님의 신변이 위험해지는 것과 같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는 비밀무기를 개발하는데 몰두했다.
“유사시 우리는 크로노스에 비해 숫적인 열세에 몰릴 것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나는 지금부터 선족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개발하겠습니다.”
“그동안 우리부족에게는 무기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영을 채집하는 기구 스펙트럼만 있으면 더 이상의 장비를 사용할 일이 없었는데, 이제 우리 부족에게도 서로를 다치게 할 일이 생긴다는 뜻이군요.”
트리톤이 딸 테티스와 아트라하시스에게 비장하게 앞으로 닥치게 될 일을 말하자, 족장의 아들답게 아트라하시스는 부족을 먼저 염려하였다.
“안타깝지만 내 손으로 그런 준비를 해야 하게 되었답니다. 부족에게는 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크로노스가 야욕을 버리지 않을 것이 너무 확실해서 우리가 대비하지 않으면 족장님의 유지를 받들 수 없을 것입니다.”
트리톤이 고통스런 얼굴로 말했다.
“예, 아빠. 무기가 필요할거란 말씀에 저도 동감이에요. 오빠, 무기는 사용하는 자의 마음에 따라 흉기가 되기도 하고, 보호도구가 되기도 해요. 우리가 이 대결을 승리하고 무기를 다시 없애버리면 우리 부족에게 더 이상 해악이 되지 않을 테니 너무 염려 말아요.”
“일단 장군님이 무기를 만드시면 버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부족에게 무기가 필요 없도록 하려면, 반드시 승리를 해야만 합니다.”
“비밀 유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무기를 개발한 뒤에도 우리가 모두 무장할 수량을 확보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트리톤장군의 동태는 이미 히페리온에게 보고되고 있었다. 다만, 아직 아무 물증이 없어서 크로노스에게 보고를 미루고, 모르는 체 관망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스타치오텐허를 중심으로 한 외곽의 즈뉘, 허구, 텐진 지구에 기지 확장 공사가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에 트리톤의 무기도 양산이 가능할 만큼 무기 개발이 완료되었다. 트리톤의 동향을 감시하던 히페리온은 그의 아지트에 대량의 물자가 반입되는 것을 파악했다.
‘무기 개발이 끝났구나. 무기가 만들어지면 우리 쪽의 피해가 클 수 있다. 크로노스님께 보고할 시점이다.’
“역시 트리톤이다. 세력의 열세를 무기로 만회하려는 작전이었구나. 그의 두뇌는 역시 천재적이다. 덕분에 우리도 무기를 얻게 되었군.”
“대장군, 명령만 내리시면 즉시 트리톤 일당을 잡아들이고 무기도 확보하겠습니다.”
“아니다. 서두를 것 없다. 저들이 우리를 위해 무기를 만들어주고 있지 않은가. 많이 만들도록 기회를 주어야지!”
크로노스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생각하지도 않은 무기를 얻고, 그를 빌미로 아트라하시스도 제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트리톤은 무기 만들기에 열중하였다.
“이 무기의 이름을 ‘바리사다’로 지었습니다. 우리 부족에게 사용하는 무기여서 너무 과하지 않은 살상력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장군님께서 큰일을 해내셨습니다. 이제 일전을 벌일 날이 멀지않았군요.”
“아직은 이릅니다. 무기가 목표수량의 절반밖에 안됩니다. 그리고 모두가 무기 사용법도 익혀야합니다. 먼저 테티스와 아트라하시스님이 시작 하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테티스와 아트라하시스는 바리사다의 사용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기가 완성 되는대로 회합에 참여했던 친위대원들에게도 차례로 바리사다를 지급하여 사용법을 숙지하도록 했다. 바리사다를 친위대 모두에게 지급하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무기에 대해 익숙해졌다는 생각에 트리톤은 기지 외곽이 비밀 장소로 친위대를 집결하였다.
“이곳에서 바리사다의 성능을 검증하고, 무기를 지급받지 못한 대원들도 손에 익혀볼 기회를 가지고자 합니다.”
친위대원들이 무기를 시연해보고 성능에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질서정연하게 무기 시연과 체험이 진행되던 중 친위대는 갑자기 수천의 부족원들에게 둘러싸였다. 트리톤과 친위대일행이 당황하고 있을 때, 세 명이 그들 중에서 앞으로 나섰다. 크로노스와 히페리온과 레아였다. 크로노스의 눈빛은 자신만만하였고, 히페리온의 눈빛은 득의양양하였으며, 레아의 눈빛은 안타깝고 슬펐다.
트리톤은 일이 실패했음을 알았다. 조금 더 신중하고 조심했어야 했다. 후회를 해본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트리톤장군, 당신이 아트라하시스님을 궁지로 몰아넣었소. 죽어서 어떻게 아툼족장님을 뵙는단 말이오.”
히페리온의 말은 차라리 조롱이었다.
“크로노스대장군, 포위망을 푸시오. 우리는 부족의 미래를 위해 무기를 개발했고, 이 자리는 무기의 성능을 실험하기 위해 모인 것이었소.”
트리톤의 변명에 크로노스는 말했다.
“아툼의 아들 아트라하시스와 당신이 만든 친위대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 부족을 향해 사용하려던 무기라고 솔직하게 말하시오. 당신은 우리 부족을 해치는 무기를 만들었으니, 부족의 이름으로 당신을 심판할 것이오.”
그들이 설전을 벌이는 동안 테티스가 말했다.
“오빠, 우리가 바리사다로 저들을 막아 퇴로를 확보할게. 오빠만이라도 여기에서 빠져나가. 그래야 우리가 후일을 기약할 수 있어.”
“나 혼자 빠져나간들 그것은 죽은 목숨과 다름이 없다. 나는 동지들과 함께 하겠어. 크로노스가 나를 죽이지는 못할 거야.”
“다른 이에게 자신의 목숨과 부족의 앞날을 맡긴다고? 그렇게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어. 아빠와 우리 친위대가 왜 여기에 있는데! 시간이 없어.”
“맞는 말입니다. 저희가 퇴로를 열겠습니다. 바리사다가 있으니 조금은 버틸 수 있습니다. 테티스님도 트리톤님과 같이 피하세요. 아트라하시스님 혼자는 위험합니다.”
“알겠어요. 친위대 중에 탈출한 분들이 있다면 아폴로분화구로 오도록 하세요. 미안합니다. 부디 살아서 만나기를 바랍니다.”
“9시 방향이 험한 지형입니다. 친위대 모두 그곳으로 화력을 집중해서 포위망을 뚫고 탈출한 뒤, 크로노스가 추격하지 못하도록 막는 동안 우리가 탈출합니다.”
“부디 모두가 아폴로분화구에서 만날 수 있도록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