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하면서 지하철 역 앞을 지나는데 보니 아저씨 몇분이 술을 마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낮이 길어져서인지 아직은 오후의 느낌이 남아있는 퇴근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눈쌀이 찌푸려졌는데 그모습을 보다보니 상념에 빠져듭니다. 튀김집 앞에 놓여있는 간이 테이블이었는데 안주는 갓튀긴 튀김과 소주였습니다. 7-8분이 빽빽히 둘어앉아 있었고 얼굴은 홍조였으며 녹색의 소주병은 10넘게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자리에 있는 모두 밝은 얼굴이었습니다.

그런 술자리를 가져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바둑에 관심은 있었지만 원껏 두질 못했고 늘 마음만 바둑을 두던 20대였습니다. 도서관에서 일과를 마치고 학교를 걸어나와서 지나가는 제일 마지막 집이 우연히도 '흑백논리'였습니다. 튀김과 순대 등 간단한 안주와 술을 파는 아주 작은 집이었습니다. 테이블이 4개정도였는 것 같습니다. 바둑을 두는 친구들이라 그 집이 마음에 들었고 늘 가장싼 튀김과 순대를 안주로 술을 마셨습니다. 낮에 바둑을 두지 못하는 아쉬움을 서로 그렇게 달랬나 봅니다.

그렇게 마시던 것이 1주일이 지나고 2주일이 지나고 늘 해가지는 무렵이면 그렇게 계속 들렸습니다. 가장 싼 안주였지만 요즘 먹는 기름진 안주보다 훨씬 맛이 있었던 것은, '황후의 밥 걸인의 찬'이라는 말처럼 비록 하찮은 것을 마주하고 앉아있었지만 친구들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친구들을 마주하고 나누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요즘은 술자리에 앉아도 친구들이 아닌 탓에 그런 이야기가 없습니다.

세월도 멀어져가고 친구도 멀어져가고.. 이백처럼 친구는 술과 달뿐인가요? 꽃사이에서 술을 마시다가 달과 그림자가 와서 셋이 술을 마신다는 이백의 시가 생각납니다. 바둑을 두고 길에서 눈앞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처럼 술을 마시고 싶은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