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1972년)
11월 중순경 대구로 내려왔다
외삼촌은 대구은행 내당동지점 2층에 홀을 두개 만들어 영남예식장을
하고 있었다
사진촬영기사는 이종사촌인 반정식형님이 하고 있었고
이때는 칼라사진이 대중화가 되지 않아서 결혼식 사진을 흑백으로
크기는 8절정도 크기로
많이 찍었다
모든 증명 사진도 흑백으로 찍는 시기였다
내가 사진관에 취직된 후로 칼라사진이 시작된것이다
흑백사진만 보다가 칼라사진을 보니 너무 화려했다
예식장 지하에는 외삼촌 장모가 영남다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그 다방에서 먹고 놀기를 한 두어주 놀았다
취직 자리가 여러곳이 나왔다
그중에 외삼촌이 대구 사진계에 1인자로 있었기 때문에 인맥이 많아
사진기술을 배우리고
하였다
대구의 예림사진관 명성사진관은 우리 나라에서도 탑5안에 들어간다
서울에는 허바허바 사진관이 이름을 알리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40여년 전이라 지금은 없어졌지만 남문시장근처 대한극장 대도극장
옆에
대도 사진관에 취직을 시켜 주셨다
사진관 주인은 예림사진관에 외삼촌이 팀장으로 있을때 촬영기사로
일을 한 사람인데 사
진기술을 제대로 습득하신분이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17살에 사진관에 기술을 배우러 들어가긴 하였는
데
기술은 뒷전이고
-성격탓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못다한 공부를 할수 있나 그것만 생각하였다
생각만 하다가 지금도 못하고 있지만 실천에 옮겨지를 못하였다
이때는 공민학교 야간학교가 많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할수 있었는
데
그런 머리는 트이지를 못했다
누가 조금만 이끌어 주었으면 오늘날 내가 좀더 나은 생활을 하고있지
않겠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이게 인생중에서 아쉽다면 아쉬운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