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도 잘 알다시피 내직업은 사진사이다
1972년도에 예천군 용문면에 있는 재건중학교를 졸업도 못하고
3학년 2학기때 육성회비를 내지 못하여 자퇴를 하였다
17살짜리가 집에서 놀지는 못하여
사촌이 일하고 있는 서울시 하왕십리 도선동350번지에 있는
우리 나라에서 여섯번째로 개업한 六合春이란 중국음식 전문점에
취직을 하였다
이곳에서 배달일을 4개월 가량 하였다
태어나서 집떠나 남의 집살이는 처음이었다
행당동과 무학여고가 가까이 있었다
경찰학교도 인근에 있었다
8840이라는 주택이 있었는데 그집은 원로가수 한복남씨 집이었다
배달을 한번씩 가보면 집마당에 카세트테이프가 녹음이 잘못되었
는지
수북하게 버려져있음을 가끔 본다
이 육합춘이 얼마나 바쁜지 배달만 하는사람이 4명이나 된다
주방에 3명이서 일하고...
총 직원이 10명정도가 된다 보통 배달을 갈라치면 대형 철가방에
뽁은밥을 12개씩 넣고 배달을 다니곤 한다 오토바이도 없고 자전
거도 없는 상태서 걸어서 배달을 하는데
보통 거리가 2키로 정도를 걷는다
배달이 많아도 너무 많다
영업이 끝날쯤 되면 모두 파김치가 된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게 47년전의 일이었다
식당 건물이 목조2층 건물인데 건물양식은 일본식 같았다
배달이 많아 내가 너무 힘들어하니 주인이 애처로웠는지
2층 홀 손님 써빙을 하란다
1층에 손님이 다 차면 2층으로 보내는데 어떤 손님은 바로 2층으
로 올라오는 손님도 있었다
그런데 2층에 올라오는 손님은 대부분 아베크 족이다
왜냐하면 2층에는 룸이있기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식사는 보통이면 20분정도 남짓하면 다
하는데
룸에 남녀두사람이 들어가면 1시간 이상을 넘기기가 다반사이다
오래있는 방에서는 지나다 보면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소리였다
한 날은 너무 바쁘게 일하다가 주방으로 빈그릇을 갇다주러 계단
을 밟고 내려오는데
발을 헛디뎌서 계단 맨 윗쪽에서 아래까지 그대로 떨어졌다 머리
를 계단에 계속 부딛치면서....
아랫층 홀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이 놀라서 다들 일어섰다
한참동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성실하게 4개월정도 일하였더니 주방에 티오가 생겨서 주방장이
나를 주방에와서
그릇씻김이를 하란다
일단 주방에 들어가야만 중국음식 만드는법을 배울수 있긴하다
한번은 기회가 있어서 주인아주머가 면 을 한번 뽑아 보란다
이때는 기계가 없어 모두 손으로 직접 면을 뽑아서 음식을 만들었
다
흉내를 내보니 자장면 한그릇정도가 나왔다 이것을 주인아주머니
가 짜장 얹어서 드셨다
이때만 해도 대구에서 부르지만 아니하였으면 중국음식 주방장이
되어있지 안했을까 생각해본다 사람일이야 알수 없지만....
한달에 하루씩 놀게 하여주었는데 이날은 수원까지 전철이 개통되
어서 전철타고 수원작은 집에가서 놀다 오곤 하였다 물론 사촌하
고 같이
아니면 뚝섬유원지에가서 놀기도 하였고
이해는 우리나라에 지하철이 처음 생긴해이기도 하다
이 육합춘에 4개월정도 일하고 있는데 대구에서 외삼촌이 중국음
식보다 다른 기술을 배우러 대구로 내려오란다
여기서부터 내 인생이 사진사로 바뀌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