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동 부르스 (4)

                                                                                            저니

 "우리 애가 바둑이 배우고 싶다고 하네"

 Y 선배가 몇 일 전 부터 중학교 3학년 딸아이에게  바둑을 가르치고 싶다고

이것 저것을 물어본다.

네이버에서 선배집 근처 바둑교실을 찾아드렸지만, 선배가 직접 찾아가보니 

초등학생들과 어울려 배우기엔 또래가 없어서 망설이시길래  내가 나서서

가르쳐 드리겠다고 했더니 무척 반기신다.

딸 아이가 무엇인가 배우고 싶다고 표현한 것이 처음인지라 꼭 가르치고

싶으셨으리라.

막상 가르치려고 하니 나 또한 설레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대학때 후배들을 놓고 가르치던 추억이 떠오른다.

새까맣게 깔고도 울컥하는 눈물을 뒤로 하고 동아리 방을 튀어나가게도 했으니

참으로 못된 선생이다.

하지만, 분노와 오기는 좋은 약이 된다.

나 또한 아홉점을 깔고 내리지던 수모가 쌓여 있었던  때가 있었다.

그 수모가 오기를 발동하게 해서 사카다 선생의 포석 책 한 권을 책장이

헐도록 들고 다니면서 공부하게 했으니 분노와 오기를 활용하면 좋은 에너지가

된다.

교보문고에 가서 바둑 책들을 보니 예전에 비해 책의 양이 참 많다.

그 책들 사이로 현현기경, 기경중묘, 관자보 ... 즐겨보던 책들이 눈앞에서

황홀하게 다가온다.

무심하게 펼치자 화장실에서 다리가 저리도록 풀지못해서 그대로 굳어버린

문제들에 절로 웃음이 난다.

내가 예전 부터 결심한 것이 있다.

바둑실력을 향상하는 가르침은 하지 않겠다.

바둑은 인생이 담겨져 있는 작은 연습장이다.

매일 주어진 하루를 새롭게 시작하듯 바둑 또한 매번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화지와 같다.

차가운 바둑알이 손에 쥐고 있을때 따뜻해짐을 안다면,

바둑판에서 느껴지는 나무의 향기를 느낀다면,

앞에 있는 사람에게서 그의 세계를 느낄 수 있다면,

바둑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바둑을 사랑하는 사람은 분노와 화를 다스리는 것에 유익하리니

바둑을 통해 나의 기질을 알고 바둑을 통해 더불어 함께하는 것을 안다면,

요즘처럼 뉴스보기가 겁나는 세상에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힘이 되지 않겠는가?

비오는 아침, 수리산 기슭에 핀 산유화처럼 곧 다가올 만남에

내 마음에도 꽃이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