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일이라고는 고작 한 여름에 더위 먹은 나무와 화초에게 물을

주는 것이 전부였지만, 매일같이 이어지는 불볕 더위에는 큰

공사처럼 동생과 가위 바위 보를 해서 그날의 물주는 사람을 결정

하던 심각한(?) 때 였다.

화초가 들어서기 전엔 용비라는 진돗개도 한 마리 길렀었고

닭도 몇 마리 키워서 서울 속의 농촌이 따로 없었지만,

어느 해 인가 용비가 쥐약을 먹고 자살 (?)을 하는 소동 이후엔

어머니께서 용비의 죽음에 기겁을 하셨고 집 안에서 동물이

사라졌다.

땅에 심어져 있는 화초도  많았지만, 화분에 화초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름도 모를 만큼의 많은 화초는 철마다 화려함을 선사했고

그 추운 겨울에서도 꽃이 지지 않는 작은 유토피아였던 기억이

난다.

그 대가로 일요일 낮 볕이 따뜻할 양이면 화분을 종류별로 구분해서

밖으로 내놓는 노가다가 뒤따르긴 했지만... .

그 당시 기억을 그릴 양이면 사흘 밤낮으로 이야깃거리가 있다.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은 한겨울 묻은 동치미 독에서 고추와 동치미를

듬뿍 담아 동생과 밤의 허기를 때우다가 수 많은 잔소리와 배앓이를

하던 추억.

철마다 달린 유실수를 안주로 맥주며 소주며 동생과 음풍농월 하던

기억.

집 주변 사람들은 우리 집 마당을 자기집 정원인양 감상하는 통에

동생과 내가 팬티 바람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을 중계 방송 하게

되었고 우리는 졸지에 주위 동네에 명물(?) 이 된 적도 있다.

어머니의 힘들어하는 모습에 아버지가 그 집을 포기하고

산본으로 오신지 벌써 15 년이 흐른 지금,  

그때의 모습은 베란다에 남겨진 수십 개의 화분이 대신하고 있다.

내 감수성...

그것은 아마 내가 살던 그 시절에 쌓여진 거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