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기원 사람들 (5) 동명이인 (同名異人)
저니
금정기원에 묘하게도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 두명의 Y 형.
둘에게는 이름 말고도 많은 공통점이 있다.
서로 호선 칫수로 바둑실력이 엇 비슷한데다 사람들과 친화적이고 무엇보다도 집안 일이라면
바둑을 두다가도 접고 집으로 뛰어들어가는 형님들.
큰 Y형은 푸짐한 몸집에 그렇게 음식을 잘할 수가 없다. 각종 김치며 젓갈을 담구는 솜씨가 일품이다.
시장을 두루 돌아서 음식 재료를 준비하고 만든 반찬이며 음식을 기원 냉장고에 쟁여둔다.
바둑이 파할 시간에 그 음식들은 좋은 술안주가 되어서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한다.
최근에 꼴두기 젓을 담구어 오셨는데 소주 두 세병은 간단하게 비울 만큼 그 삭힌 맛이 일품이다.
그렇게 섬세한 큰 Y형의 바둑은 이상할 만큼 간 큰 세력 바둑을 두니 사람 손맛으로 바둑 스타일을
가름하긴 참으로 어렵다.
작은 Y형. 참 마음이 여린 형님이다.
소주 잔을 들면 돈을 바가지로 긁어 모으던 이야기며 영업으로 날라다니던 이야기를 하신다.
다리를 다친 이후에 평온을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을까 ...
천진한 미소가 마치 소년을 보는 듯하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큰 형님이다.
기원에서 크고 작은 언쟁이 있으면, 그때마다 나서서 문제를 중재하고 그 마저도 잘 안되면
술자리를 마련해서라도 서로를 화해시키니 마치 평화의 전도사와 같은 양반이다.
두분 Y형들은 좌청룡 우백호의 기원 지킴이같다.
두사람의 바둑 스타일은 큰 Y형은 세력바둑을 두고 온유한 바둑의 작은 Y형.
비슷한 칫수이면 거의 사생결단을 하고 이기려는 바둑을 두는데, 옆에서 바둑을 두양반의 대국을
보고 있으려면, 마치 이번엔 네가 이겨라 다음에 내가 이길란다 식이다.
싸움을 해도 킁, 내기가 걸려도 킁.
마라톤 결승점 둘이 손잡고 들어오는 격이니 보통 재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두 형님들에게 일전 불사의 상대가 각기 있으니, 큰 Y형이 불을 키는 상대는 원장이다.
원장은 모든 바둑에 말참견을 하는 괴력(?)을 보유하셨는데, Y형은 내심 그것이 불만인지라
나이가 더 많은 원장을 말로 충고하느니 바둑으로 응징(?) 하시려는 듯 하다.
처음에는 두점 칫수였는데 큰 Y형의 호방함에 눌려 원장은 그에게 넉점까지 칫수가 내려갔다.
사실 정해진 칫수가 있어도 사람이 흥분을 하면 이상할 만큼 바둑이 되질 않는다.
말싸움도 먼저 화를 내는 사람이 지는 것이 다반사가 아닌가?
원장을 위해서 반찬을 해오는 Y형도 원장을 위해서 끝내기 반집도 물러서질 않으니 참으로
반상은 미묘한 세계이다.
작은 Y형의 불타 오르는 상대는 수원어르신이다.
수원어르신은 연세가 일흔이 훌쩍 넘으신 나이에도 작은 Y형보다 쎈 기력을 갖고 계신데,
승부욕이 대단하신 것이 Y형을 자극했나보다.
결국 두사람이 붙으면 계가 까지 가는 것이 드물만큼 쌍립도 몰아 세워서 끊고 싸우는 난타전이
벌어진다. 보는 이야 즐겁지만, 대국이 끝난 뒤에 모습은 권투시합 뒤에 벌개진 선수들 얼굴이다.
운동선수는 서로 등을 두드려서 승자와 패자의 기쁨과 위로를 교차할뿐이지만
바둑처럼 죽일듯 싸우고도 웃으며 술 한잔 나눌 수 있는 정신적 교감의 세계는 흔치 않다.
바둑은 그 경기조차 상생의 미덕이 있다. "덤". 이규태씨가 쓴 '한국인의 의식구조'에서 보듯
우리나라는 덤의 문화이다.
덤은 단지 짜투리나 나머지 부분의 더주기가 아니라 마음을 덜어주는 것이다.
바둑에서의 덤은 승부를 내기 위한 짜투리가 아니라 서로 상생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마치 이야기속 형제가 쌀가마니를 들고 밤새 서로의 집을 오고가듯 ....
오늘도 큰 Y형의 음식이 사람들의 마음에 쌓이고
작은 Y형의 미소가 겨울을 녹이는 훈훈한 금정기원의 덤이 될 것이다.
<6 편으로>
이 기회에 작은 Y형의 건강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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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꾹리가아
별天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