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 건강하세요..

대국이 곧 시작된다.

작은 가방을 들고 들어오신 이창호 사범님.

대국장에 가방을 들고 들어온 사범님은 처음이라.. 속에서 무얼 꺼낼지 무척 궁금하였다.

이윽고 가방을 열어 꺼낸 것은..

차곡차곡 개켜서 쌓은.. 물에 적셔 얼린 손수건..

네 장? 다섯 장?

자주 열이 오른다더니.. 그에 대한 그 나름의 대책인가보다.

옆에서 누가 챙겨주지는 않았을텐데..

대국 하루 전날..

한 장 한 장 손수건을 꺼내 물에 적셔..

한 장 놓고 비닐 한 장 올리고.. 그리고 다시 또 한 장..

차곡 차곡 손수건을 쌓아올려 냉동실에 넣는 이창호 사범님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춥지 않은.. 그리고 그리 덥지도 않은 대국장.

그러나 송글송글 배어나오는 식은땀과.. 마른 기침.

아.. 건강이 많이 나빠지셨다더니..

정말이었구나..

매번 승부를 결정해야 하는 싸움.

그 전쟁터 한복판에서 싸워왔을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

연신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모습에...

애써 소리를 죽여 마른기침을 하는 그 모습에..

그렇지만 반상에 시선을 고정시킨 흔들리지 않는 그 눈동자에..

마음이 아팠다.

episode 2. 악플러.

은하는 인터넷을 좋아한다.

투어를 마치고.. 이창호 사범님에 대한 글을 쓰기위해 인터넷 검색창에 ‘이창호’를 쳤다.

화려한 그의 경력. 성적. 어린 시절 이야기. 그의 바둑에 대한 관전기..

인터넷은 그에 대한 글들을 셀 수도 없이 토해냈다.

인터넷의 토사물에는.. 제비 엄마가 새끼들에게 토해내주는 귀한 양식 같은 글들도 있었지만...

그의 성적에 대한 비난.. 그리고 그를 욕하는 목소리들..도 함께 있었다. (이런 글은 뭐라고 표현해야하지?

김치전이랑 막걸리를 먹고 한꺼번에 담벼락에 토해놓은 것 같은 글들.. 쯤으로 표현하면.. 너무 심한가..?)

악플들을 보면서..

악플을 쓴 악플러들도 미웠지만..

좀 잘하지.. 왜 이런 소리를 듣는거야..  하는 생각에

괜히 그가 못마땅하고.. 원망스러웠다.

나는 수능이 끝나자마자 과외와 학원 강의를 시작했다.

처음엔.. 내가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엄마는 아직 수험생인 동생.. 공부라도 좀 봐주라며..

야참을 먹는 내 식탁 앞에 동생을 앉히곤 했다.

그런데..

학원 강의는 그 후로도 몇 년 간이나 계속했는데.. 동생을 가르치는 건 그리 오래 하지 못했다.

밖에서는 아무리 이해가 느린 학생들도 웃으며 가르치겠는데..

동생은 조금만 이해를 못해도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그야말로 속에서 불이나는 것 같았다.

분통터져 못 가르치겠다고.. 화를 버럭!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를 수 회 반복한 끝에..

결국 동생 가르치기는 실패로 끝났었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동생이 그리 이해가 느린 편도 아닌데..

열심히 잘 따라오고 있었는데도..

다른 사람은 다 못해도 ‘내’ 동생인데.. 이것도 모르냐고..

‘내’ 동생이니까 이 정도는 해야하지 않냐고..

내 기대에 못미친 데에 대한 화를 죄 없는 동생에게 냈던 못된 누나였다.

사실 지금 이창호 사범님의 성적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예전의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기에.. 너무나도 멋있었기에..

당연히 최고여야하는데.. 라는 내 기대가 깨어져서..

괜시리 열심히 하는 이창호 사범님을 괴롭히고 있는건 아닐까?

그는 너무 ‘사랑받은’ 댓가를 치르고 있는 걸꺼다.

그는 단순한 프로기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존심. 대한민국의 대표 프로기사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남다른 기대를 걸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이 악플을 달은 걸꺼다.

사랑이 너무 커서.. 기대가 너무 커서..

이해가 간다.

악플러도. 이창호 사범님도.

그리고 그때 뒷 통수를 몇 번이나 맞으면서도 묵묵히 참으며 누나의 짜증을 들어야 했던 착한 내 동생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