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기억하시나요?

은하의 계시원 첫! 개시국..

바로 유창혁 사범님의 대국이었습니다.

그때 사범님이 지셔서.. 악수도 못청하고..

그래서 이번에 이기시면.. 꼬옥! 악수를 청하리라.. 하고 다짐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에도 실패.

대국 초반.

심각한 두 분의 표정.

그리고 빠른 행마..

흑.. 조훈현 9단

평소에는 그냥 맘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사범님인데..

반상앞의 조훈현 사범님의 눈빛은..

20대 기사들의 그것과 다름이 없었다.

빛이 나고.. 뜨거웠다.

목이 묻힐 정도로 어깨를 움츠리고

반상앞에 온 몸을 끌어다놓은듯한..

흡사.. 반상안에 들어갈 듯한 자세의 조훈현 사범님.

그의 집중력은 옆에 있는 나에게도 느껴질 만큼 대단했다.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이던가?

기원에서 조훈현 사범님을 뵌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조훈현 사범님의 뒷모습을 뵈었다.

어! 조훈현 사범님이다! 라는 동생의 말에..

얼른 돌아본 내 눈앞으로..

조훈현 사범님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계단을 두 칸씩 올라 윗층으로 사라지시는 조훈현 사범님.

그래서인지 조훈현 사범님의 별명은 ‘제비’란다.

바람둥이 ‘제비’가 아니라.. 물찬 ‘제비’

그리고 그 맞은편..

백.. 유창혁 사범님..

신을 벗고 의자위로 올라앉은 유창혁 사범님.

의자 팔걸이가 좁아.. 어설피 불편한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유사범님의 모습은..

갓을 안 쓴 선비의 느낌.

지난 울산투어에서 유창혁 사범님이 해설을 하신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었다.

말수가 적어 해설과는 안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사석에서의 유사범님은 말 수가 적다.

조용히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동조의 미소를 보내는..

그런 유사범님의 모습에 익숙한 은하이기에..

해설자 유사범님은 상상이 안갔다. (나중에 해설하시는걸 보고.. 새삼 반하긴 했지만..^^)

유창혁 사범님은 몇 살인지 알 수가 없다.

그의 표정으로.. 혹은 그의 눈빛으로 그걸 짐작하기엔 무리다.

주민등록상의 나이로만 가늠한다면.. 그건 가능하리라..

그러나 말이 없는 사람의 속에는..

뱉지 않은 말들이 함께 나이를 먹어 간다고 했던가..?

그의 속 나이는 몇 살일까?

이 두 사람이 반상을 앞에 두고 만났다.

반대의 코드를 가진 두남자의 싸움.. 이라고 표현하면..

너무 내 맘대로 표현한걸까?  (내 일기니까.. 난 그렇게 표현하고싶다. ^^)

이어폰을 통해 해설자 김지명 사범님의 멘트가 들린다..

유사범님은 대국 중 혼잣말을 하는 것을 싫어하신다고...

그래서일까..?

그의 대국에는 소리가 없다.

물도 조용히.. 숨도 조용히..

그가 만들어 내는 소리라곤.. 오직 반상위 흰 돌의 발 소리뿐...

조국수님은 종종 혼잣말을 하신다.

한숨도 쉬시고.. 한탄도.. 감탄도 하신다.

나는 그 모습이 좋다.

돌의 행마를 진정 느끼는 것 같다.

적진으로 들어간 흑돌의 가쁜 숨..

죽음을 앞에 둔 흑돌의 한탄까지..

그는 잔득 움츠리고 앉아.. 반상을 들여다보며..

돌과 대화를 한다.

짧은 은하의 실력으로 형세판단을 한다는게 우습지만..

초반엔 형세를 알 수가 없었다.

백돌과 흑돌이 얽혔다가 떨어지고.. 밀고 당기는..

그야말로 팽팽한 줄다리기..

중반으로 접어들었을까..?

조국수님의 표정이 조금 밝아지셨다.

잔득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목도 좀 펴고..

이제 그 중얼거림도 조금씩 들리기 시작한다.

조국수님의 표정을 보니 바둑이 조금 유리한가보다.

그럼 유사범님이 지시는건가...?

그러나 유사범님의 표정으론 도무지 승부를 알 수가 없다.

반상을 내려다보다가..

초읽기가 몇 번 남았는지 흘끗 보고..

물을 한모금 마시고..

무심히 돌을 집어 반상위에 올린다.

그저 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