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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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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3

2009-03-31 오전 2:45 조회 5684추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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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넘기고서야 한없이 이어질것 같던 그의 어떤 침묵은 끝이 났다

휘파람 소리를 내며 매섭게 불어대던 골바람이 잠잠하던 어느날

앉은뱅이 책상 간물장에서 한 권의 서책을 꺼내 걸망속에 집어넣은

임형수는 집 밖을 나섰다

심씨에게 '내 다녀오리다'라는 한마디 남긴채 산중을 떠돈지도

벌써 달을 넘어서고 있었다

가뿐 숨을 내쉬며 산능선을 오르던 임형수는 볕을 받아 따뜻해 보이는

짚북더기같은 마른 잡풀에 털석 주저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아내와 꼭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집밖을 나서던 날 먼길 떠날때만 둘러메던 걸망을 바라보던 아내가

하던 일손을 멈추고 부엌으로 가 말없이 자신의 걸망 속에 뭔가를

챙겨 넣었다

그리고 꼭지를 안아 올리며 아비의 얼굴을 가까이서 바라보게 했다

어미를 닮아 동그랗고 그렁한 꼭지의 두 눈엔 아비의 얼굴을 담으며

무심한 자신의 행보를 책하는 듯 해 가슴 한 곳이 애렸다

별말은 없었지만 아내가 꼭지의 두눈을 비러 자신에게 말하려던

의미가 무엇인지 임형수는 잘 알고 있었다

<심연화>

세종의 정비 소헌왕후가 난 청송 심씨를 본으로 둔 아내는 열여섯 되던해

안동 어느 양가집에서 보내온 꽃가마를 탓다

그리고 행복할 것 같았던 그녀의 작은 소망이 깨지기까지는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어느때부터인가 시댁식구들은 냉랭한 눈빛으로 그를 대하였고

그러기를 거듭해 시집살이 3년을 눈물로 채우던 그 해

자식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시댁에서는 성급한 소박을 놓게된다

하늘아래 하소연 할 곳도 찿아갈 곳도 없어진 심연화는

길이 난 곳으로 무작정 걷기만 하였는데

그녀가 날이 저물어 이른 곳은 친정에서 그리 멀지않은

청송땅 진안 어느 고개마루였다

의지와 달리 이곳까지 오고보니 더는 걸음을 옮길수가 없었다

맥풀린 그녀의 눈 아래 흰 과꽃들이 낯이 익었다

3년전 이 고개를 넘을때 코끝을 은근히 자극하는 향기에 참지못한 그녀가

수줍게 열어본 가마밖 풍경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청천을 따라 늘어선 흰 과꽃 그리고 갖가지의 들꽃들이 무리지어

마치 자신을 배웅이라도 하듯 한동안 그녀의 가마를 따랐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한없이 설레이던 그때의 풍경이 떠오르자 자신도 모르게

피식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나 힘없는 그녀의 미소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끈 떨어진 연마냥 오갈 때가 없어진 지금의 박복한 처지를 생각하자니

순간 심연화의 그렁하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넋나간 사람마냥 맥을 놓고 섯던 심연화가

어느 순간 가까운 인기척에

황급히 몸을 움추렸다

한 장의 그림 때문에 이시영이 백여리는 족히 넘을 안동땅까지

걸음한 것이 올해 들어 벌써 3번째였다

먹물 입힌 옷에 괴목의 뿌리같이 뒤틀린 지팡이까지 짚고보니

삿갓 아래 늘어진 긴 머리카락만 아니라면

경지에 이른 노승의 행색이었다

걸중 같은 그의 걸음 뒤를 줄곧 말없이 따르던 약관의 사내가

고개 쪽을 가르키며 입을 열었다

'이상허네 날도 저물었는데... 저기 언덕위 당나무 아래

웬 처자가 서있는데요 ?'

'와? 귀신일까바 무섭나?'

'어르신도 참...그게 아니구요 이상하잔아요

이 부근엔 인가라곤 좀전에 지나온 강변 쪽에

있던 과수집 하나뿐인데..

여기서 청송까지는 가깝다고는 하지만

아직 10여리는 족이 더 가야 하는데...'

이시영은 그제서야 삿갓을 밀어 올리며 좁은 길이 이어지고 있는

어스름한 언덕위를 살폈다

그리곤 금새 시봉처럼 따르는 젊은 사내를 돌아보며

뜬금없는 말로 히죽거렸다

'네놈도 이제 장가 들 때가 되었나 보구나 ..이게다...

음택의 발복이 아니구 무엇이란 말이냐, , 히힛'

'네?... 어르신두 참...장개는 다 뭐고 ..발복은 또 뭔교?'

이시영이 고개마루에 이르고보니 짐작데로 였다

자신의 엉덩짝만한 보자기 하나 달랑 품에 안고

죄인마냥 돌아서 고개를 숙인 것이

애써 말하지 않아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도 남음이었다

걸음을 멈춘 이시영은 그런 여인에게 대단한 법도라도

일러주는양 정색을 하고 주절거렸다

'자고로 .. 소박 . . . 아니.... 사연 있어 집 나온 여자는 마을어귀에 섯다가

처음 만나는 외지 사내를 따라 가는 것이 법도라면 법도 일 것이요'

또한번 뜬금없이 들리는 그의 말에 임형수는 찢어진 눈을 치뜨며

이시양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시양이 그를 보며 냅다 소리를 질렀다

'뭐 하고 섯노? 퍼뜩 가서 보따리 뻿어들지 않구서... 쯔쯔...'

아직도 의미를 알 수 없다는듯 젊은 임형수가 말꼬리를 올렸다

'예.. 에? .......'

파발마를 바꿔타는 청송역전근처에서 요기를 한 이시영 일행은

가파른 방광산을 뒤에 두고

오십여리를 더 걸어서야 삼자현의 높은 고개를 지척에 둘 수 있었다

그리고 피내골이 내려다 보이는 그의 산중거처에 이른 것은

그러고도 깊어지는 골짜기 어둠을 따라 10여리는 더 걷고 난 후였다

여인의 짐보따리를 너와를 덧댄 지붕아래 낮은 토막위에 내려놓던

임형수가 머뭇거리는 기색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르신.. 그.. 그럼 전.. 내려가 보것습니다요'

'하이고 마... 저놈 보소..야 이누마.. 혼자 가긴 어딜 가노?

데블고 같이 가야재... 쯔쯔..'

'예.. 에?'

'그라고.. 당분간은 올라올 것 없다

에구... 샥신이야.. 뭘 그리 멀뚱히 보고 섯어..

어여 데리구 내려가지 않구서...

벌써 축시가 가까워 오누만서도...'

살집이 느껴지지 않는 다리통을 한손으로 두드리며 토막 끝에 걸터 앉은

이시양이 재촉하여 소리쳤다

사내나이 스물이 넘도록 여인의 손목 한 번 잡은 적 없는 숫총각은

이시양의 고함소리에도 선뜻 어떤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임형수가 이시양과 연을 맺게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몰락한 양반가가 그렇듯 영천의 어느 작은 고을수령이었던

그의 아비는

눈이 탐스럽게 내리던 날 어떤 연유인지 잠자던 어린형수를

이불채싸안고는 종복하나 없이 급하게 밤길을 나섰다

그리고 찬바람에 잠을 깬 어린형수는 보았다

자신을 꼭 안은 아비의 가슴에서 터질 듯한 박동소리가 들렸고

그 어께너머로 줄지어 따로오던 수 많은 불빛들...

한동안 그렇게 아비를 따르던 불빛들이 멀어질때 쯤

끊어질 듯 거칠었던 아비의 숨소리도 어느새 평온을 찿아갔다

그러나 주변을 수시로 살피는 충혈된 아비의 눈빛은 그를 바라보는

형수의 어린 마음도 함께 경직시켯었다

그런 아비는 마을이 나오면 돌아갔고 길을 걷다가도

말발굽소리가 들리면 몸을 숨겼다

그렇게 방향을 알 수 없이 끊없이 이어지던 조심스런 발길은

청송땅 어딘가에 이르러서야 끝이났다

그렇게 신분을 숨긴채 피내골에 정착한 명석했던 그의 아비는

바쁜 철에는 논밭에 손을 빌려주며 댓가를 얻었고 일없는 겨울 한철은

억척스럽게도 숯굽는 노역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부자의 척박한 삶을

연명해 나갔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삶도 임형수가 열다섯 되던 해 운명은

또 한번 소용돌이쳤다

겨울 어느때 쯤이면 언제나 그렇듯 아비는 어김없이 피내골을 이웃한

또다른 깊은 골짜기인 가마골로 향했고

그러던 어느날 아비는 돌아오지 못했다

아비만 돌아오길 밤새 기다리던 열다섯 형수에게 다음날 해가

중천에 솟고서야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온 아비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시신을 내려놓고 빈 숯지게를 다시 둘러메던

노인의 입을 통해 그나마 아비의 마지막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다

숯가마에 채울 참나무를 베기 위해 올랐던 아비가 얼어붙어

비탈진 땅에 비끄러져 손쓸 새도 없이 변을 당했던 것이다

가마에 이미 불을 붙인 터라 인정이 아닌줄 알면서도

이제서야 시신을 거두어 왔다는 노인은 몇 닢의 엽전을

형수의 손에 쥐어 주며 한숨 섞인

넋두리를 하더니 돌아갔다

'시신의 입에 물려 함께 뭍어 주거라 노자라도 하게..

히.. 휴...이느무 씨상...'

아비의 나이 겨우 마흔중반이라 요절이라고 하는것이 옳을 것이다

별안간 숯지게에 실려온 아비의 시신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린 형수는

이것이 꿈인가 싶었다

처음엔 눈물도 나지 않았다

세상 모든것이 멈춰 버린 듯 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처량스런 새소리만이 어린 형수를

대신해 울어주기라도 하는듯 잔대숲에 둘러쌓인 그의 집을 맴돌았다

며칠이 지나도록 형수는 아비와 함게 있었다

방안으로 옮긴 아비의 시신은 겨울이라지만 악취를 풍겼고

이미 벌레들이 꿈틀거렸다

보다못한 옆집 조씨가 이 골 중턱에 산다는 걸중을 찿아갔고

딱한 사정을 듣던 이시양이 무엇인가를 주섬주섬 챙겨

바랑에 넣고서는 빠른걸음으로 산을 내려왔다

말라버린 눈물자욱위로 또다시 한줄기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는

소년을

이시양이 한쪽으로 물러서게 했다

그리고

살이 녹아 흐물거리는 채백에서 벌레들을 들어내고 종지에 약초 달인

물을 찍어 깨끗한 천으로 닦아냈다

한동안 정성을 쏟던 이시양의 이마에서 이제 땀이 맺히고 있었다

겨울날 온기 없는 구들방에 있는자가 맞는가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염습을 끝낸 이시양은 소년에게 아비의 시신을 지게했다

그리고는 미리 정해둔 장지라도 있는양 주저없이 앞을 걸었고

소년은 말없이 그를 따랐다

그렇게 피내리 깊은 골을 빠져나올 쯤 이시양의 걸음은

우측에 보이는 낮은 야산을 향했다

이어지던 걸음은 얼마후 야산의 8부쯤 되는 곳에 이르자

비로서 이시양이 멈췃다

능선에서 계곡쪽으로 약간 비켜 내려간 곳에 사람 하나

누울만한 평지를 내려보던 이시양은

들고 있던 지팡이를 가르키며 소리쳤다

'저곳에다 아비의 채백을 뭍거라 머리는 지금 있는 이곳으로

두게하고 깊이는 석자 이상을 파되

아래에서 머리통만한 돌들이 나오면 멈추고

바닥을 다져 입관을 시키면 된다

또한 봉분은 되도록 낮즈막히 하고 떼는 따로 입힐 필요가 없는곳이다

이곳이 비록 명당의 조건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볕이 좋고 세찬 골바람도 직접 오지 않고

돌아가는 곳이니 무난한 음택의 자리라고 할 수 있겠구나!'

말을 마친 이시양은 소년의 뒤를 따라온 조씨를 내려 보며 재촉했다

'뭐 하는 겐가... 퍼뜩 나서지 않구...'

'아...예...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