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를 관망하던 임지관이라 불리던 자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주위를 둘러선 사람들의 시선만 없었더라면 누가 무어라 떠들건 궂이 말을
섞고싶지 않다는 빛이 역력했다
'노옹께서 시비하시는 연유를 알 수 없지만
궂이 설명을 드리자면 이곳은 궁혈자리외다
활시위로는 명주만한 것이 또 어디 있겠소이까
하여,채백에 명주를 입힌것은 상응의 묘에 적합하다 할 것이요
또한 주위에 석립을 세우는 것 또한 궁혈이기에
시위에 메겨진 화살은 결국엔 날아가고 말겠지요
하여 그 시위를 눌러 잡아두기 위한 것이외다
이는 시신이 날아가지 않고 온전히 자리 보존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리하는 것이니 사치로움도 아니요 내세우기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니
돈질이라고 하신 노옹의 말씀은 지나침이 있소이다 .'
임지관의 말투는 겸손을 가장했지만 내용은 흡사 스승이 아둔한 제자의 물음을
서릿발같은 언날로 단번에 베어버리기라도 할 양 잔뜩 서기가 어렸다
그리고 두 사람의 눈빛은 혈장을 가운데 두고 한번 더 마주쳤다
헤진 삿갓 속에서 시퍼런 서슬이 뿜어져 나오는 듯 보이더니
다시 한번 날카로운 일갈과 함께 노구의 손에 들려있던 죽장이 허공을 그렸다
'예끼....이.. 노~~옴~~ 내밷는다고 다 말이고 끄적거린다고 다 문장이라더냐?
어디서 주워 들었더냐? 네 눈으로 직접 보았드란 말이냐?
어찌 죽은 시신이 시위에 당겨져 날아간단 말이더냐'
너무도 갑작스런 매질에 임지관은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주위 사람들이 말릴 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순간 상주의 눈빛이 낭패로움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어떤 우려와는 달리 장죽은 정확히 지관의 정수리
한 치 위에서 멈추고 있었다
'왜란때 지원을 핑계삼아 이 강산의 지기를 끊고
난자질 하던 당나라지관놈도 네놈 보다는 낫겠다
여기가 궁혈이라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껍데기에 불과 한 것이고
그 이전에 '도시혈'이 지나고 있음은 왜 못보느냐?
그리고 뭐라? 활시위와 명주의 궁합이 어떻다고?
쯔쯔...어찌 지관이라는 자가 드러나는 형상에만 연연하느냐
명주는 썩기가 어려워 용의 몸을 칭칭감아 승천을 늦추고
방해하는 것은 어찌 모른단 말이며 활시위가 날지 않도록 무거운 석립을
세운다는 말은 가당치도 않는 말이다
오히려 안산이 되는 과녁에 가볍게 날아가 꽂히도록
혈이 생긴대로 자연스럽게 지기를 다스려야 함인데... 쯔쯔'
삿갓 노인은 임지관의 주장을 단숨에 쪼개 버렸고
오고가는 말뜻을 알리 없는 보다못한 장정 몇몇에게
떠밀리다시피 능선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곳으로 한동안 임지관의 시선이 머물렀다
이제껏 나름 데로 왕성하였던 풍수철학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그냥 허무하다는 생각만이 멍한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노인의 말데로 혈장을 이룬 주위 산세를 다시한번 차근히 살펴보니
이곳은 역시 그의 말데로 시신을 넣으면 사라져 버린다는 도시혈
즉 땅속은 오묘하고도 신비로운 지각변동에 의해 조금씩 움직인다는
도시혈의 형상이 얼핏 보이고 있었다
삿갓 노인의 노성띤 일갈이 없었다면 보이지도 않았을 또다른 혈자리였던 것이다
아닌밤에 홍두깨라고 봉변당한 임지관의 상념을 덜어주기라도 할 양인지
상주의 사촌뻘인 장년이 다가서며 한마디 했다
'이보시오 임지관 너무 괘념치 마시오 원래 나이들고 입씸으로만
사는 노구들이 어디 한 둘인가베 누굴 보고 선풍수레?
나.. 참 어이가 없어도..자자...임지관 어서 서둘러 주시게
미친 노인네 때문에 시각이 많이 지체된 듯 허이...
입관시각은 언제쯤이 좋은가?'
임지관 임형수는 머릿속이어지러웠다
삿갓 노인의 말데로 이곳이 도시혈이라면 지금의 명당은 바로 쓸수 없는 터였다
지금 입관해바야 어차피 생기가 맺히기도 전에 시신은 땅속 어디론가 흘러가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 오고 현기증이 일었다
<피내골>
지관 임형수가 서당골 박씨 문중 선산에 7대종손 박필의 봉분을 만들어 주고
30십리를 걸어 ' 피내리'에 있는 자택으로 돌아온지도 벌써 달을 더하고 있었다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임지관의 두문불출은 이웃한 조서방이 가끔 잔대가 둘러쳐진
그의 집안을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임지관이 누구던가! 백리 밖 사대부가에서도 큰일이 있을 때마다 아랫것들을 보내
조상의 명당을 찿고 후손의 발복을 빌려고 안달을 내던 위인 아닌던가! 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못배운자들의 묘터를 잡아주는것에도 그다지 인색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청송땅에서는 제법 명지관으로 존경을 받았고
자연히 집안에 머무는 시간보다는 집을 떠나 있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어떨땐 반년 가까이 명당을 찿아 경상도며 전라도땅까지 산중 곳곳을
떠돌다 돌아 온 적도 있었지만 집안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야 일주일이 고작이었다
소문이 무섭다고 그가 집안에 발을 들여 놓기가 무섭게 인근에선 어떻게 알고 왔는지
좋은묘터를 봐달라며 하루에도 몇이나 그의 집을 다녀가곤 했다
그런 그가 별다른 이유없이 벌써 두달을 넘어 집안에 머물럿기에 조서방은 한번 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곰방대에 연초를 밀어 넣고 아궁이에서 꺼낸 숯덩이로 담뱃불을 붙이던 조서방은
일전에 있었던 한가지 일이 떠올랐다
며칠전
임지관의 집을 나오던 낯선 사내 하나가 연신 뒤를 돌아보며 사람이 변했다는둥,
없는자의 터는 이제 봐주지 않는다는둥 하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자조어린 말투로 제법 큰소리를 내다가 돌아갔다
얼마 안되는 십 여채 피내리에서도 임지관과 조서방의 집은 조금 떨어진 왼딴곳이었다
허리춤에 미치는 돌담 하나를 두고 이웃했지만 다른곳은 잔대가 뻬곡히 둘러쳐져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인가의 흔적을 찿을 수 없었다
이내 뻐끔 뻐끔 연기를 내뿜던 조서방이 급히 등을 돌린 것은
빨랫감이 담긴 대바구니를 이고 들어서는 지관처의 기척 때문이었다
황토막에 대바구니를 내려놓던 여인의 입에서 끙 하는 소리가 났다
선돌에 엉덩이 올려 놓고 잠시 숨을 고르던 여인이 아이를 불렀다
'꼭지야 ...꼭지 인나서?'
그녀의 외모만큼이나 무척 부드럽고 가녀린 음색이었다
임형수의 나이 마흔을 넘긴지도 벌써 여러해가 되었지만
자식은 늦동이 다섯살 꼭지가 유일했다
아비는 밖에서 들려오는 어미의 목소리에 눈가를 앙증맞게 비비고 일어나는
꼭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가엔 이미 잔잔한 미소가 번져 있었지만
말투는 뭉퉁했다
'새 수부터 하거라..'
'으..응...네..'
부녀간의 짧은 대화가 끝날쯤 한지를 댄 외닫이문이 삐그덕거리며 열려지고 있었다
열려진 방문으로 겨울한기가 순간 밀려 들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모녀의 눈빛은
봄꽃을 보듯 화사하고 따듯하기 그지 없었다
'아고 잘 잣어요? 이리 온...'
'엄마...'
품에 안긴 애기의 눈꼽을 치마자락을 접어 떼주던 어미는
한편으론 남편의 기색을 살폈다 그리고 한동안 품고있던 의구심을 조심스레 드러냈다
'서당골에서 뭔일이라도 있었던 게요?'
'....'
남편은 말이 없었다
답은 바라지도 않았다는 듯 처는 한번 더 혼잣말처럼 조용히 말을 이었다
'달포전에는 한마실 덕보 영감님의 장지도 한마디로 거절해 돌려 보내시더니...
지관 살 돈이 없어 장지도 제데로 못정하던 그댁 총각이 나보고도 그러더이다
어떻게 한마실 살면서 이렇듯 인정이 사납냐고... 사람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는둥..'
'허... 이녁이 상관할 바가 아니요'
그제서야 처는 마지못해 내밷는 듯한 남편의 차가운 음성을 들을수 있었다
그러자 처는 더이상 바깥일에 관하여 말을 더하지 않았다
그리고 품에서 자신의 가슴을 헤집는 꼬물거리는 고싸리손을 한없이
사랑스런 눈길로 내려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이런...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어미 젖무덤을 찿아...허... 새수부터 하레도 저런다....허허허..'
임형수의 말투는 철없는 딸을 나무레고 있었지만 그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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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당근돼지
달선공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