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증조산이 아득히 보이고 증조산 봉우리에서 이어진 용맥은 어느덪
고도를 낮추며 잠시 굽이친다 싶더니
이내 불뚝 솟아오르고 그런 증조산을 원군삼아 조산이 흡사 뾰족한
붓끝모양으로 다시 솟구친다
그리고 과협으로 솟아오른 두 치쯤에서 혈장을 만들기 위해 첫 입수가 시작되니
조금 더 달리던 용맥은 하나의 거대한 주산을 한번 더 만들어 내고서야
그 아래 비로서 하나의 혈장을 드러냈다
좌, 우용, 호산세가 혈장을 두 팔에 품듯 하고 그 끝으로 마르지 않는 내천이
멀리서 길게 돌아 흐르며 겹겹한 산들 사이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주산의 산정부근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삿갓쓴 인영하나가 궁혈이 맺힌 명당자리를
한눈에 내려보고 서 있었다
궁수혈은 말 그대로 한자'활궁'자를 닮은 형상의 지세에서 만들어진 혈이다
이런곳의 음택 혈은 안산에 해당하는 앞산의 모양이 과녁을 이루는 형국이면
더없이 좋은 명당으로 쳤다
정확히 궁혈을 중심으로 십 수의 남정네들이 둘러서듯 모여있었고 조금 아랫쪽 천막에는
아녀자들이 음식을 정갈히 장만하고 있었다
유교문화권인 우리나라엔 대부분 여자들이 입관을 보지 않는다
산꼭대기에서 인영 하나가 보이는가 싶더니 그는 빠른걸음으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남루한 옷차림에 몇 년동안 자르지 않은 머리카락은 뒤로 질끈 묶여있었고
너털거리는 걸음에 맞춰 등쪽에서 이리저리 흩날렷다
아직은 따갑게 느껴지는 가을볕은 산등을 타고 내려오는 죽장 짚은 남자의 헤진 삿갓사이를 파고
들고 있었다 온통 흰 수염으로 얼굴을 가린 남자의 눈빛에서 알 수 없는 분기가 느껴졌다
'에라이.... 이 너무 손들아 돈을 쳐바를 대가 없어 이런 곳에다 돈질이여..돈질이... 쯔쯔'
수 십의 남자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어 능선을 내려오는 한남자에게 시선이 옮겨졌다
자신을 향하고 있는 황당한 눈빛들에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볼품없이 쪼그라든 노구의 남자는
곧장 무리속으로 다가서는데 거침이 없었다
몰골이 찌든 산사람의 행색 그대로 였다 약초를 담음직한 짚망태는 그의 앙상한 어께쭉지에
걸려 움직일 때마다 함께 털럭 거렸다
너무나 장졸간에 당한 일이라 누구하나 대거리를 못하고 있을 무렵
또다시 헤진 삿갓 속에서 일갈이 터졌다
산골이 쩌렁거렸고 급기야 아랫쪽에 있던 여인네들까지 목을 길게 뻬는 시늉을 하며
윗쪽을 훔쳐보고 있었다
'지랄도상 지랄이여... 이것들이 다 무엇이란 말이고? 장군석에 두꺼비석까지...'
그제서야 무리중에서 제법 이마에 육수끼가 흐르는 장년이 다가선 노구에 눈을
부라리며 대거리에 나섰다
'헛... 듣자 듣자하니 댁이 뭣이간데 난데없이 나타나 육두문자가 먼저 앞서더란 말이요?'
'어디서 같잔은 선풍수를 데려와서 맥을 짚긴 짚은 모양이다만 ...헛..저건 또 무엇이란 말인고?
채백에다 명주를 ..돈질해도 아주 제대로 했구만 제데로 했어 쯔쯔...'
'뭣이요? 이자가 그런데...나 쌀이나 먹은 것 같아 어지간하면 대접은 해주려고 했더만...
돈질이라니? 자식된자로서 마지막 가시는 부모의 채백에 정성을 들인게 어찌 돈질이라
욕먹을 일이오
그리고 선풍수니 뭐니 하는데 여기 계시는 지관선생은 군내는 물론이요
수백리에 이르도록 그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거늘...가당치 않을 헷소리요
헷소리가..내가 보기엔 노인장이 선풍수 흉내를 내며 상가난 산중을 돌며
푼돈이나 뜯는 미친자로 보이오만'
'형님 그만두시지요 아버님 채백을 곁에 두고 이런자와 길게 대거리해 바야...'
상주는 사촌형님의 등등한 노기가 선을 넘을까 염려되어 급히 말리고 나셨다
그제서야 걷어부치던 소맷자락을 털어내며 펄렁거리는 바람소리를 냈다
첫 삽날이 흙을 찍어내면서부터 혹시나 혈장이 다칠까 절치부심하며 깊어지는
구덩이를 내려다 보며 인부들에게 시어머니 잔소리를 하던 임지관은 자신을 선풍수라
욕을 하며 아직도 두눈을 부라리며 쏘아보는 눈길을
마냥 피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도선의 풍수적맥을 있는 적자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나름 청춘을 사르며 산과 함께했고
이제는 산을 어느정도 알았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수 많은 산을 오르내리며 음택의 터를 정하고 좌향을 앉히면서 이같은 경우를
어디 한 두번 당해보았겟는가
최근에도 상가의 집안 큰어른되는 사람과 좌향을 놓고 격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었다
평소 풍수에 조예가 깊던 상주의 백부는 지금 좌향(시신이 앉아서 바라보는 방향)이
삼재방을 바라보니
절대 그리로는 쓸 수 없다고 제법 명분을 세우며 임지관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회두극좌는 피했으니 아무리 삼재가 드는 향이라고 하지만
반드시 삼재가 나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삼재를 만나 좋은 기운은 더욱 길하게 되는 것이 또 다른 삼재의 모습이다라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막무가내로 우기는지라
지관으로서 뻔히 알면서도 좌향을 돌려 않히는 우를 범하고야 만 것이었다
그러나 임지관은 그것에 대하여
일말의 가책 같은 것은 느끼고 있지 않았다 그저 이것 또한 모두 하늘의 뜻이려니 하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정당화시키려는 가장 일반화된 선풍수가들의 요설일 뿐이었다
도선의 적맥을 이어오던 풍수적자중 한명은 이렇게 말하였다
'탈신공개천명'이라..
[공이 신에게 있다면 뻿어오고 명이 하늘에 있다면 바꿔서라도 내것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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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당근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