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워가는 여정 - 공주에서
저니
그동안 글을 올리지 않은 이유가 글 재주가 없는 것이다 라고 말하면 형식적이지만, 가장
나에겐 적합한 변명이다. 이곳에 글을 쓰지 않는다고 알게된 인연까지 멀리 한 것은
아니였고 글과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한 사람과 사람의 정은 보이지 않은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간 몇 번인가의 모임도 빠져서 걱정이 되셨던지 눈에 찬 행동 하나 하지 못한 나를 공주까지
챙겨 내려 오도록 배려해주신 팔공선달, 박민식 두분 형님에게 감사드린다. 더불어 글을 함께
쓰고 나누던 여러 선배님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흔하고 그 글을 함께 공유하는 독자가 적은 시대에 그 두 물결의 만남은
참으로 각별하다. 2박 3일이 찰라처럼 지났지만, 함께 할 수 있었던 여러 시간에 스스로가
부족해서 글과 사람을 공감해서 참여한 여러 선배님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는
자성이 밀물처럼 내 감정을 북받히게 한다.
나는 왜 공주에 갔을까?
나는 왜 공주에 갔을까?
요산요수(樂山樂水) 라는 말처럼 살아오면서 쌓인 연륜이라는 지혜를 만나고 이기심으로
가득찬 나를 비워 평온을 찾고 싶어서 였을까?
요산요수(樂山樂水)
저니
나는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지만,
지혜롭고 싶어 바다를 찾고
나는 어진 사람 또한 아니지만,
어질고 싶어 산을 그린다.
눈에 담은 바다, 가슴에 그린 산.
순간이 즐겁고 찰라에 사라져도
바다 같은 평온과 산 같은 고요가
적막처럼 아득해진다.
비워진 술병처럼 내 안에 가득찬 사심은 비워질 수 있을까?
처음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
십년을 하루같이 보내긴 쉽지만, 십년을 한가지 마음으로 살긴 어렵다. 글이 좋았고 바둑이
좋았고 사람이 좋았고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좋았다. 그뿐이다. 그 겉에 아무리 두꺼운
옷을 입더라도 이 첫 마음을 잃어버리면 공허하고 추울 것 같다.
만남에 소중한 것이 사람을 많이 알겠다는 숫자라는 넓이보다 한사람 한사람 그 교제의
깊이가 더욱 소중하듯 글과 바둑을 나누던 그 주체인 그 사람과 희노애락을 나누지 못한다면
그 정체성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들도록 한 것은 나에게 깊은 조언을 해주신 도리형님의 씁쓸한 미소를 깨닫지
못한 무심함과 선비무도 내외 두분이 가슴으로 하는 대화에 심취하지 못한 나의 메마른
감성에 내 스스로가 놀랐기 때문이다.
문득 정채봉 시인의 미친 사람들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미친 사람들...정채봉
파브르는 곤충에 미쳐 지냈다.
베토벤은 악보에 미쳤었다.
퀴리부인은 라듐에 미쳤었다.
고호는 그림에 미쳤었다.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에 미쳤었다.
간디는 민족과 평화에 미쳤었다.
당신은 지금 무엇에 미쳐 있는가?
사람이 가장 많이 미치는 것은 사람한테이다. 그리고 가장 많이 빈털털이가 되는
사람 또한 사람한테 미쳤던 사람이다.
여인네의 뒷태와 같은 벚나무가 봄을 잉태하고 있는 마곡사.
극락교를 건너고 보니 가을볕에 살찐 잉어떼들이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축복을 기원하려고 빗을 몇개 샀다. 아름다운 삶을 함께 하시라는 마음과 함께....
추억이다.
떼지어 돌아다니는 잉어들을 보며 내 마음에 잉어들을 담아본다.
* 발록구니 같은 두 쌍의 잉어들.
세마리가 헤엄쳐서 따라간다.
때로는 보물을 찾기도 한다.
바보 구경하는 잉어들의 산책.
* 발록구니...하는일 없이 공연히 놀면서 돌아다니는 사람.
잉어처럼 자유로울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떠날때 보다 가벼웠다.
한사람 한사람의 얼굴이 가슴에 남는다.
여럿이 모이니 벌써 큰 모임이 되었다. 바둑을 좋아하고 글을 좋아하고 그래서 만났고
내 형과 같이 내 동생같이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즐거웠던 그 초심.
무엇을 하더라도 무엇이 변해도 그것 하나만은 변하지 않는 자리가 이어졌으면 참 좋겠다.
용마형님이 모임의 리더가 되어 우리 글벗의 우애를 이끌게 되심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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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선비만석
李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