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십년은 되었다 싶은데
서울 전철을 이용한 분은 기억나는 분이 많을 것이다. 어떤 노인이 있었다.
그리 천해보이지 않는 인상인데 의상도 그러했지만 휘청거리는 경신술이나 입성이나,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눈이나 시선이나가 절묘하게 매치된 절정고수였다.
정확히 잘 기억은 안 나는데 그의 멘트는 이러했다,
참, 목소리는 약간 쇤듯하고 역시 정신 나간 듯한 헐떡거리며 숨차하는 사운드였다.
“우리 할머니..할머니가 쓰러졌어..피를 토하고..대학병원에 갔어..갔더니...00병이래..
수술을 해야 산대...언제 죽을지 모르는데...입원비 00원 약값00원 수술비까지 합쳐서
63만..0천0백원..돈이 없어..우리할머니..할머니..”
대강 그런 내용인데 실은 좀 더 긴 대사였고 더욱 절박하고 리얼했다.
왜 녹음기나 갬코더로 그 명대사와 불후의 연기를 잡아놓지 못했는지 아까울 지경이다.
나도 절로 감동하여 조금 적선했지만 한 열댓명이 호응했던 걸로 보아
그 노인은 당시 고소득자였음이 분명하다.
...라고 말하는 것은 그 후에 그 노인을 4,5년 후까지 서너 번이나 봤기 때문이다.
멘트와 연기는 조금도 업그레이드 안 되고 변함없었다.
맨 마지막에 봤을 땐 청중의 호응이 별로 없었다.
지방에 살며 어쩌다 서울에 나가는 내가 그러니, 서울에선 꽤나 알려진 명물일 것이다.
이제와 생각하면 고작 2~3분여의 연기였지만 매 객차를 따지면 그는 아마
수천 수만회를 공연했을 것이다.
2,30년은 된 이야긴데
시골 우리 동네 c할머니가 겪은 일이다. 내가 직접 본 게 아니라 직후에 들은 이야기
지만 워낙 설명이 상세하여 90%이상은 똑같다.
어느 여름날, 동네로 차가 들어왔다. 젊은 놈 두 놈이 내리더니 c할머니 집에 바둑판을
들고 왔다. 두껍고 둥그런 다리도 달린 썩 보기 훌륭한 바둑판이었다.
집안서 바둑 두는 사람도 없고 안산다고 거절했지만 알았다며 물이나 먹고 간다며
수돗가에 걸터앉아 두 놈이 서로 장사이야기를 하며 뭐가 안 맞는지
같이 동업 못하겠다는둥 티격거리는 일방 무슨무슨 나무로 만든 최고 좋은 바둑판이라며
조훈현 조치훈이 일본서 바둑을 어떡했다며 알아듣지도, 도통 관심도 없는 이야길 하며
사라고 했건만 전혀라고 거절했다. 헌데 두 놈 서로 장사 철학의 차이로 언쟁이 심해져가는 게
아닌가. 끝내는
a 가로되 이런 촌구석서 누가 바둑판을 사겠느냐 너야말로 보는 눈이 형편없다.
이 할매만 해도 바둑에 바자도 모르는 왕무식아니냐
하며 아직 '아줌마성' 할머니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더니
b 가로되 넌 무슨 말을 그리 막 하느냐, 장사보다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
장사 하루 이틀 하고 말거냐. 한 동네서 하나만 팔아도 물건 좋다는 게 소문나면
다음 달에 올 때 서너개는 팔릴 것이다 라는 둥 제법 이해가 가는 소릴 했다.
a 암만 그래봐라, 이 코딱지 같은 동네서 하나라도 팔 것 같으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
그리고 이집 꼬라지를 봐라. 이게 폭격맞은 집인지 돼지우린지..처음부터 싹수 노란 줄 알아봤다
b 넌 인간이 글러먹었다. 사람이고 집이고 물건이고 겉만 봐선 모르는 것이다.
결국 조였다 풀었다 가지고 논 것인데 그러던 와중에 할머니는
무심히 ‘그거 대체 얼마에 파는 거냐’고 물었다.
a 넨장, 사지도 못할 거면서 뭘 물어봐. 촌구석 집에 몇 푼이나 있을라고.
기껏 담배 한두갑이나 살 쌈지 돈으로 만져볼 물건이 아니니까 꿈 깨셔.
b 너 정말 장사하자는 거냐 말자는 거냐. 아줌마가 사지는 않아도 물어보고
선전은 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 아줌마 이거 만이천원은 받아야 되는 것인데
(정확한 액수는 헷갈린다) 솔직히 원가가 만원이거든요
a 하 그 새끼 진짜 시간낭비라니까, 이런 집에 만원커녕 오천원이나 나오겠냐,
할머니 오천원만 있어도 가져가
b 어어 이 새끼가 농담을 해도, 9천원에 떼오는 걸 오천원이라니 미쳤냐, 안돼!
a 글쎄 내가 장을 지진다니까! 할매, 차에 열한 개 있는데 오천원씩에 몽땅 가져가버려
b 야 임마, 안 된다니까 너 장사꾼 맞아? 오기부릴 게 따로 있지. 쫄딱 망하려고 그러냐.
a 손해 보는 거 내가 물어주면 될 거 아냐. 넌 눈이 틀려먹었어.
이 할매 인상이나 옷 입은 꼬라질 보면 딱 모르냐,
할머니 수중에 실은 5,6천원 가량은 있었다.
b 그래도 이자식이, 그러다 옆집에서 돈이라도 빌려오면 어떡하려고...
a 다른 집도 마찬가지지, 이딴 거지같은 동네에 무슨 돈이 있어. 탈탈 털어봐야
한 개쯤 사려나..그것도 그래, 누가 이리 궁상맞게 사는 할매한테 돈 빌려주겠냐.
이미 열이 받을 대로 받은 할머니 ‘저, 정말 한개 오천 원씩에 모두 줄겨?’
b 아녀요, 이놈이 정신이 나가 말실수 한 겁니다. 절대 안돼요. 만원이면 누구라도
사가는 물건을 어떻게 오천 원에 줘요. 미안합니다.
a 하 그새끼 시골 물정 진짜 모르네. 백번 죽었다 깨도 그런 돈 안 나오니까
염려 붙들어 매. 할매 그러쇼. 오천 원씩에 모두 줄게 있는 대로 긁어와 보셔.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니까
할머니는 두세 집에 가서 돈을 빌렸다. 왜냐는 물음엔 전혀 응답을 않고 말이다.
그리고 6만원 돈을 내놨다. a와 b는 급기야 멱살잡이를 하고... 된통 당해 충격 먹은
a는 징징 울고, 제발 안 된다며 사정하는 b도 물리치고 c 할머니는 바둑판 열두 개를
끌어안고 말았던 것이다. 쫄딱 망한 a와 b가 기가 팍 죽어서 떠나버렸고.....
저녁이 되면서 차차 사정이 알려졌다.
가까운 곳에 바둑을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기도 했지만 이웃집이라 득달같이 달려가 봤다.
물론 사기 당했구나하는 직감이었다. 과연 내가 보기에도 얼핏 보아
별 하자 없는 바둑판이었지만 묵직하기는 했어도 비자도 은행나무도 아니었다.
더욱이 바둑알도 바둑알 통 하나도 없는 열두 개의 바둑판이라니...
할머니는 그때까지도 통쾌하게 복수를 했고 수지맞았다는 태도였고
아직 흥분, 상기되어 있는 터라 사기일 거라는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다음날 장에 그 무거운 바둑판 두개를 가지고 팔러나갔는데
시골 장에서 팔릴 리가 있겠는가. 좀 더 큰 읍이라든가 이리저리 판로를 알아보는
며칠이 지나자, 아니나 다를까, 바둑판은 금이 가거나 뒤틀리거나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거나 다리도 부러지는 등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결국 쓸 만한 것은 두어 개뿐이었는데(그중 하나는 내가 샀지만 일 년도 안 되어
금이 점점 벌어져 바둑알도 풍덩풍덩하는 바람에 폐기하고 말았다)
나머지? 나머지 아홉 개는 c 할아버지의 원한 맺힌 도끼질에 박살이 나서
아궁이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심각한 손해는 아니었지만 많은 이의 웃음거리가 된
할머니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바둑이라면 쳐다보기도 싫어했을지 모르며
괜스레 바둑 두는 사람까지 미워 보이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당시 비슷한 사기로 시간도 안 맞고 종도 안 울리는 거대한 괘종시계를
열개나 산 할머니도 이웃마을에 있었고 품질불량의 밥상등은 비일비재했다.
요즘도 시골엔 건강식품이니 다단계니 해서 순진한 노인을 울리는 쓰레기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 비루한 사기꾼들은 지금 겨우 5,60정도 되었겠지만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혹시 아직도 전철의 노인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엔 별에 별 사기꾼이 너무도 많다. 정치꾼들부터 시작해 양심불량의 상인등..
바둑의 작전사기대국자도 마찬가지다.
양심이 마비되어 당장은 괴롭지 않을지 몰라도 반드시 응보가 있으리..
ㅡㅡㅡㅡ*2005년..경에 바둑사이트에 쓴 글 같습니다*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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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9
10년도 더 오래된 글이지만 전에 타이젬에...혹은 오로에 올렸던 것 같기도 한데...
몽롱..기억상실 지병에 걸린 것인지.. 하여간 작년 중반부터 놀기 시작한 '이동활의 음악정원' 카페에도 올렸지요. 그곳도 나작과 마찬가지로 대개 조회는 일이백에 추천 두어건 정도인데
간간 기계실수인지 다른 요인인지...혹은 제목이 그럴싸해서인지... 좌우간 이글은 1600조회나 했는데 스스로 넘버스리안에 든다는 자뻑^^을 하게 되었다는 ㅋ
조회는 많지만 추천은 또 겨우 2건이라니.,..ㅜ 12만명 카페안의 특정방이긴 하지만 작년 한해 1000조회 넘긴 게시물은 서너명정도로
...그곳도 광장처럼 진부해지고 오염되어 가는듯해 마음이 거의 떠난 상태입니다. ..........해서 쓸쓸한 오로의 나작이 생각난 것이지요. ...거기던가 다른 곳이던가... 가까운 회원이 '딴데 가봐야 별거 읎슈'....했는데.. 내가 가서 별거 있게 만들면 되는규....했는바.. 방금 주먹구구로 검색해보니 작년 한해의 나작도 1000반열이 서너분은 되시는듯...
열번이나 기록한 선달님은 썼다하면 무조건인데 왜 안 쓰는지? 인사가 아닐지 모르지만 음방 어디방 어떤 아줌인지 할매는 수백게시에 수천 댓글이라선지
(허당은 그리 판단함) 중딩보다 못쓰는데도 발군의 많은 조회와 추천인데...
지난해 네번이나 천조회돌파...허당도 두건.. 조회야 기계실수도 있고 추천도 자천가능한데다 이중아이디도 있을 터이므로 큰 의미는 안 두지만
두말하면 숨찰 정도로 독자의 댓글은 필자에게 큰 힘을 주지요.
저도 그러했지만 대개 본문게시보다 댓글 수출?이 많더군요..
한 일이주 많이 올린 성 싶은데 다른 작가를 위해 일단 멈춤합니다.
읽지 못한 지난 글도 읽으며 옛날 추억도 더듬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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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선한달○
선한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