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거사 준비에 나섰다. 이미 세 차례 야스쿠니 탐사를 마친 홍설민은 설민국 앞에 야스쿠니의 도면을 펼쳤다. 두 사람의 아지트에는 곳곳에 수많은 사진과 도면과 언론기사 및 그곳의 실물을 본뜬 미니어쳐로 가득했다.

“거사에 임하기 전에 저들에게 용모파기가 드러나서는 안 되기기에, 직접 야스쿠니 현지를 탐사하는 것이 불가능한 동지는, 오로지 이 도면만으로 야스쿠니내의 이동동선을 완벽하게 파악해야 돼. 내가 답사해본 바로는 이 동선을 따라 거사를 수행하는 것이 우리의 거사를 실수 없이 완수 할 수 있는 유일하고 안전한 루트야.”

홍설민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도면에 두 손을 짚으며 간곡하게 말했다. 그에게는 자녀가 있다. 설민국이 그를 간신히 설득해서 자신이 직접 거사를 수행하기로 마음을 정한 까닭이다. 야스쿠니를 도모하자는 처음의 제안에서부터 그가 거사를 하겠다고 나선 작전이지만, 설민국 부부의 자식을 갖지 않고 있는 이유와 각오를 듣고, 그는 결국 그들 부부에게 깊은 존경심마저 표시하며 거사를 양보했다.

“우리나라에 동지의 부부와 같은 사람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어. 동지의 처고모를 나도 존경하게 되네. 결국 그분의 삶이 우리를 이렇게 이끌어 주시고 있는 거야.”

두 사람의 거사 목표는 두 가지였다.

저들이 어신체라고 주장하며 영새부의 영이 깃들었다는 상징물로, 일본 최고의 도장으로 불리는 가리야나오지가 마지막으로 만들었다는 야스쿠니 군도와 그곳 봉안전에 있는 영새부에서 한국인 21,181명의 명부와 A급 전범 14명의 명부를 파내 우리나라로 옮기는 일이다.

야스쿠니를 파괴할 수도 있지만, 그저 하나의 신사에 불과한 그곳이 많은 나라에 불편하게 인식되어 있는 이유가 그곳에 A급 전범이 합사되었기 때문이고,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인 우리 국민들을 저들이 일방적으로 합사하여 그곳에 가두어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만 아니라면 저들이 야스쿠니 그곳에서 무슨 일을 벌이든 다른 나라가 관심을 둘 이유도 없는 것이다. 이 정도의 조치만 한다 해도 거사의 목적과 취지를 충분히 저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들의 만행에 대한 자성과 주변 나라들의 우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는 목표만 이루어내면 되는 것이다.

타이키는 야스쿠니 신사에 몰입되어 있는 스스로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비록 10대 중반부터 일본인으로 살고 있지만 그의 구강구조는 완벽하게 일본말을 구사해내고 있었다. 1923년 9월에 관동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인들은 한국인을 무참하게 살육했다. 그때 그들은 발음하기 어려운 일본어를 말해보라며 한국인을 색출해냈다. 지진 당시에 ‘조선인이 방화를 하고, 우물에 독을 풀었고, 폭동을 일으켰다’며 일본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와 경찰을 동원했다. 한국 정부조차 90년이 넘게 지나는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공식적인 문제 제기나 사과를 요구하거나 배상을 요구한 적이 없는 잊혀진 ’관동대학살‘. 그 삶과 죽음을 갈랐던 단어 발음의 벽을 타이키는 극복해냈다. 생각, 행동, 언어까지 완벽하게 일본인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한 스스로에게 그는 자부심마저 느꼈다. 아무도 그를 한국인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야스쿠니 신사에서 일하며 몇 년 동안 그를 알아온 직원들조차 당연하게 일본인으로 여겼다. 물론 타이키가 야스쿠니 신사에 보이는 열정도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큰 요인이었다. 직원들에게 그의 별명은 ’야스쿠니 관리인‘으로 통했다.

신사에서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유족들이 가족의 영령이 합사된 이곳을 찾는 기념일인 ‘미타마마쓰리’날이다. 약 250만 명에 달하는 영새부가 있는 이곳은 찾는 유족들이 많아 매년 자원봉사자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 올해도 타이키는 행사 진행에 분주했다. 수년째 맞이하는 행사라서 그는 모든 절차에 익숙했다. 오히려 신입 직원보다 그가 더 능숙할 지경이었다. 분주하게 행사를 돕던 그의 눈에 어린아이들 몇몇이 눈에 띠는 행동을 하는 것이 포착되었다. 여자아이 하나와 남자아이 셋이 구석진 곳을 손가락질 하며 어딘가를 찾는 듯 보였다. 네 아이 모두의 손에는 폭죽이 들려 있었다. 타이키는 신사 내에서는 폭죽이 위험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는 타이키에게 방문객이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만, 회관을 찾고 있는데 잘 안보이네요.”

“예, 회관은 배전 오른쪽으로 가서 조금 더 들어가시면 됩니다.”

방문객에게 시선을 잠시 빼앗겼던 그는 다시 아이들의 행방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옆의 동료에게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아이들을 찾아보았다. 그렇지만 배전 근처에는 아이들이 없었다.

‘어른들하고 같이 참배를 마치고 나간 것이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자리로 돌아가려던 그의 눈에 본전으로 들어가는 문이 약간 열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오늘처럼 방문객이 많은 날에 본전 출입문이 왜 열려 있을까?’

출입문을 닫고 돌아서던 그의 머릿속에 어린아이들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 들려 있던 폭죽이 생각났다.

‘만약에 아이들이 어른들 눈을 피해서 폭죽놀이를 하려고 이 안으로 들어갔다면 큰일이다.’

타이키는 업무보다 아이들을 찾는 것이 더 시급함을 느꼈다. 본전으로 들어갔지만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는데 갑자기 본전 안쪽의 봉안전에서 폭죽이 터졌다. 곧바로 연이어 터지는 폭죽은 아직 낮인데도 확연하게 보였다. 그는 서둘러서 봉안전을 향해 뛰어갔다. 그렇지만 그가 봉안전에 들어서기도 전에 아이들의 외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어오르는 연기도 보였다.

‘불이다.’

그가 봉안전에 도착했을 때 여자아이의 옷에 불이 붙어 있었고, 봉안전의 처마에 불길이 번지고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는 재빨리 소화기를 찾아들었다. 그렇지만 소화기가 분사되지 않았다. 아이들의 비명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는 당황한 나머지 소화기의 안전핀을 뽑지 않은 것을 알아채고 다시 소화기를 아이에게 분사시킨 뒤, 봉안전의 처마를 향해 소화기를 분사했다. 그 사이에 봉안전의 소화전에서도 화재를 감지하여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소화기의 허연 분말과 물줄기로 인해 봉안전의 화재는 다행히도 초기에 진화되었다. 곧이어 직원들이 봉안전 마당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현장을 보자마자 상황이 파악 되었다.

“타이키가 아이들과 봉안전을 구했구나!”

모두가 박수를 치며 타이키에게 고마워했다. 이번 일로 야스쿠니 신사 측에서는 그를 명예직원으로 임명했고, 그의 별명도 바뀌었다. 그는 ‘야스쿠니 지킴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하시모토는 아들 타이키의 활약상을 동료들에게서 들었다. 이미 신문과 방송에서 보도된 일이었지만 아직 그는 방송매체를 접하지 못했었다.

“타이키 왜 아빠에게 말하지 않았지?”

저녁식사를 하면서 하시모토는 아들의 등을 대견하다는 듯이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으면 아빠와 엄마에게 말했어야지!”

뒤늦게 남편으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들은 최선애도 옆에서 거들었다.

“그런 상황을 만나게 된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하잖아요. 당연히 할 일을 한 거라서 호들갑 떠는 거 같았어요.”

그는 자랑스러워하는 부모님에게 쑥스러운 듯 말했다.

“아빠는 네가 진정으로 자랑스럽다. 내가 네게 전에도 말했듯이 야스쿠니는 우리들 모두에게 신성하고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다. 너는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누구라도 그렇게 잘 대처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바로 너라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네게 큰 상을 주고 싶다.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봐.”

“아빠! 저는 이곳에 와서 새 삶을 얻었어요. 저는 지금처럼 아빠와 엄마가 행복하시고, 이런 가정 안에서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기를 원해요. 아빠가 기뻐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세상의 어떤 선물이나 보상보다도 큰 행복입니다. 아빠, 깊이 감사드립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다니 나도 무척 기쁘다. 그렇지만 나는 네게 큰 상을 줘야만해. 할아버지가 너를 칭찬하시고, 네게 선물을 꼭 하라고 말하셨다.”

아들이 한국에서 데리고 온 가족들에게 별다른 호의를 보이지 않았던 아버지는 이번 일로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타이키를 처음으로 ‘내 손자’라고 말했다. 그는 그 사실이 매우 기뻤다.

“정말 아버님이 그러셨어요? 제가 더 감사하네요.”

“할아버지께 감사드려야겠어요. 아빠, 말씀하신 선물은 제가 조금 더 생각해보고 정해볼게요. 그래도 되죠?”

“물론이다. 꼭 말해야 한다.”

하시모토는 다시 한 번 타이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최선애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행복감이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