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두 사람이 같이 수요 집회를 참관하는 중이다.

집회는 시작된 지 벌써 3년이 지나 150회를 넘기고 있다. 국내에서도 관심이 점점 많아져 참석하는 계층이 다양해지고 있었다. 또한 중국과 일본에서의 관심도도 높아지는 듯 가끔씩 두 나라의 취재진이 보이기도 했다. 중국의 네티즌들은 주로 부러움을 나타냈다.

‘한국은 일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적절한 방법으로 징계하려는 시도를 잘하고 있어. 우리나라는 그런 노력이 부족해. 시민의식이 낮은 것도 이유 중의 하나겠지!’

중국의 네티즌들이 수요 집회에 대한 중국 매체의 뉴스에 남긴 많은 댓글은 대체로 이랬다.

그렇지만 일본 매체의 뉴스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은 달랐다. 대부분 거의 무반응이었으며, 일본 우익들의 반발만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일본 측의 방해 공작도 일어나고 있음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오늘도 집회장의 주변에서 일부 시민들이 소란을 벌이는 모습이 보였다.

분명히 한국말로 소란을 일으키고 있는데 그들의 주장은 일본의 주장이나 반응과 너무도 흡사했다. 그들이 들고 있는 현수막의 내용도 마찬가지였다.

‘위안부의 강제동원 주장은 거짓말이다.’

‘위안부들은 자발적으로 돈벌이를 나갔다’

‘일본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집회를 즉각 중단하라’

광화문 일본 대사관 건너편에는 이렇게 쓰인 현수막을 들고 난동을 부리는 무리들도 보였다. “저들에게는 아직도 일본이 조국으로 여겨지나 봐.”

혀를 차며 울분을 참지 못하는 설민국의 팔을 최선미는 팔짱을 낀 팔로 지그시 눌렀다.

“그러게 ‘토착왜구’라고 다들 말하잖아.”

“아무리 사람들의 생각이 다양하다고 해도, 저런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도저히 납득이 안 돼.”

“불행히도 일본에 의해 길러진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는 많아. 일본이 막강한 자금력으로 우리나라의 가난한 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하고, 자기 나라에 유학도 시켜주잖아. 그렇게 길러진 한국사람 같은 모습의 일본인이 저들에게 이용되고 있어. 치밀하고 집요한 일본인들의 전략에 일본 머리를 가진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거야. 일종의 좀비지”

“저런 종류의 사람들은 명성황후를 살해하는데 도움을 준 그 시대의 친일 부역자와 하나도 다를 게 없어.”

“맞아!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 지금 시위 현장 주변을 봐. 어린 학생들도 참여하기 시작했고, 외국인들도 많이 동조하며 참여하고 있잖아.”

사실이었다.

그동안 시위에는 학생들을 비롯해 정치인, 종교단체, 노동단체, 각종 시민단체가 동참했으며, 중국, 인도네시아, 미국, 영국등지에서 꾸준한 참가를 보였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아픈 역사를 가진 필리핀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일본이 반발하고 방해 공작을 시도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수요 집회 반대 시위자들의 양상이 예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그들 중 몇몇이 이상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일부가 술이라도 취한 듯 광화문 앞 대로를 무단횡단 하려고 나서고, 일부는 제지하려고 하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그 와중에 2명이 대로를 무단 횡단하여 수요 집회 참석자들에게 달려들었다. 건장한 두 남자의 공격에 수요 집회는 한 순간에 무너져갔다. 그들은 그대로 집회에 참석하고 있던 위안부 할머니들을 공격하려고 다가섰다. 설민국은 순간적으로 최선미의 팔을 뿌리치고 그들에게 달려갔다. 그렇지만 한발 늦었다. 이미 그들이 할머니들 바로 앞에 다가서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다음 순간 성난 황소같이 내달리던 그들이 보도 블럭 위에 갑자기 나동그라졌다. 주변의 모두가 어리둥절해 있는 와중에 어떤 남자가 그들의 발 주변에 떨어져 있는 물건을 집어 들더니 대중 속으로 사라졌다. 그것은 로프 처럼 보이기도 하고 짧은 나뭇가지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남자는 그들의 발 뿌리에 그것을 던져 넣어 넘어지게 만든 것이다. 보도 블럭 위에 나뒹군 그들을 집회 참석자들이 재빨리 제압해 다행스럽게 더는 큰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다. 설민국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최선미에게 돌아왔다. 그녀는 그 혼란 속에서도 태연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휴! 할머니들이 다치지 않아 정말 다행이네.”

“민국 씨는 돌발적인 상황이라 놀랐겠지만, 나는 별로 걱정 안했어.”

“그러게. 자기는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 있었어?”

집회 참관을 마친 두 사람은 인사동의 찻집에 앉았다.

최선미는 마음속으로 고민하던 말을 그에게 해주기로 결심했다. 이미 이성으로 만나고 있는 상대방에게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고, 지금까지 지켜본 그의 모습이라면 자신을 이해해 줄 것이라는 신뢰도 있었다. 다만 자신의 신분을 타인에게 노출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조직의 규율이 마음에 걸려 고민이 깊었었다.

“나 자기한테 고백 할 일이 있어.”

그녀의 말에 그는 차를 마시다 말고 멀뚱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까 집회에서 내가 차분하게 있을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줘야 할 것 같아. 나는 집회에 난입한 두 사람이 할머니들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어.”

“그걸 자기가 어떻게 알고 있었어?”

설민국은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눈이 크게 떠져 있었다.

“그 집회 장소는 이미 조직에서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야.”

“어떤 조직에서 무슨 관리를 하고 있다는 거야?”

그의 궁금증은 오히려 당연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가 자신이 모르는 어떤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그리고 그걸 자기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가 재차 물었다.

최선미는 느긋하게 차를 한 모금 입에 물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그런 모습은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중으로 보였다. 그도 궁금증을 잠시 참았다.

시선을 그에게 다시 돌린 그녀가 말을 시작했다.

“민국 씨! 혹시 ‘대한독립의군부’라는 거 들어봤어?”

그는 생뚱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해보고 말했다.

“아니, 처음 들어보는데.”

옆은 미소를 띄운 그녀가 말했다.

“자기가 모르는 것이 아니고, 처음 들어보는 게 당연한 거야.”

“그래? 그럼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모두가 아는 조직이 아니라는 거고, 자기는 어떻게 그 조직을 아는데.”

“맞아. 그 조직은 비밀조직이고, 나는 그 조직의 일원이기 때문이야.”

설민국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갑자기 들이미는 그녀의 말을 미처 머리가 납득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의 말을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응, 그래! 자기가 비밀 조직의 조직원이라는 말이지. 아까 뭐랬지, 대한 뭐?”

“대한독립의군부!”

그녀가 또박또박 천천히 다시 말해주었다.

“하하, 대한독립의군부. 조직 이름이 꽤 고전적이다.”

“맞아! 고종황제의 명으로 조직된 거야.”

“자기 지금 나한테 농담하고 있구나.”

그녀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농담이 아니라는 말이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찻잔을 들어 한 모금을 마셨다.

“나는 대학생이 되던 해에 대원이 됐어. 그 이전부터 입단을 원했지만, 성년이 되어야 가능하다고 해서 늦게 들어간 거야.”

그는 조용히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