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이는 중력을 설명하지 못했고,
뉴턴은 중력의 원인을 설명하지 못했으며,
아인슈타인은 양자를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모두 “설명하지 못한 채로 다음 질문을 남겼기 때문에”
과학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전문 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저로서는 과학의 진정한 발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과학의 발전은,
새로운 추론이나 가설이 나와야 하고, 그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이 발전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과학의 발전은 완결된 체계의 축적이 아니고 불완전한 체계의 교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편에서 지구 구형설과 지동설의 차이에 대하여 의외의 공부를 하신 분들도 많을 겁니다.
오늘은 같은 우주를 나타내지만 결이 다른 '유니버스(Universe)'와 '코스모스(Cosmos)'에 대하여 구별해 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제일 간단한 이분법으로 나누면, 유니버스는 형이하학적이고 코스모스는 형이상학적입니다.
즉, 은하와 우주의 시간, 우주 팽창, 그리고 시공간의 휨 등을 구체적으로 관측하고 다루는 것은 유니버스에 해당하고, 우주의 초기와 탄생, 그리고 푸앵카레 추측에서 사유하는 우주 공간 전체의 기하학적 위상(구형 공간 구조)과 차원(次元)이나 그 본질을 논하는 것은 코스모스에 해당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제 연재의 제목인 “경이로운 디지털 코스모스”에 ‘디지털’이 붙은 근본 이유이기도 합니다.
거시(巨視)의 우주이지만 미시(微視)의 양자와 연관하여 이야기하려면, 눈에 보이는 공간을 뜻하는 '디지털 유니버스'보다는 우주의 질서와 본질을 꿰뚫는 '디지털 코스모스'가 장차 제가 펼쳐갈 논리에 정확히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양자컴퓨터의 기본 메커니즘인 양자중첩과 양자얽힘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양자중첩은 단일 양자가 여러 상태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하며, 양자얽힘은 두 개 이상의 양자가 중첩 상태로 비국소적(거리 무관) 연결 관계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양자중첩의 핵심은 바로 불확정성(不確定性)입니다.
지금부터 적절하지는 않겠지만, 이해하기 제일 적절한 예를 들어서 양자중첩을 설명드리겠습니다.
두 명의 이란성 쌍둥이가 있습니다.
이 둘은 성별이 정해지지 않은 채로 태어났습니다.
그렇다고 일반적으로 말하는 양성애자나 두 가지의 성기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간성(間性) 또는 인터섹스(intersex) 또한 아닙니다.
지금부터 말하는 “성별(性別)“의 기준은 XY 염색체와 성기(性器)로 구별함을 말합니다.
그런 의미로 양자중첩 상태의 이란성 쌍둥이가 있다고 해봅시다. 그 둘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신체로 태어났습니다. 이것이 양자중첩입니다. 그리고 한 명이 이성을 만나 상태가 결정되는 순간, 멀리 있는 나머지 한 명의 성별도 동시에 결정된다는 논리가 바로 양자얽힘입니다.
그리고 양자얽힘은 양자중첩의 개념과 밀접한 관계인 것은 맞지만, 이것은 동시성(同時性)의 문제로 그것에 대한 인식이나 실험 또는 그 결과의 해석에서 양자중첩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양자얽힘은 두 쌍둥이 중에 서울에 있던 한 명이 이성을 만나서 관계 시에 신체가 남자나 여자로 결정이 났을 때에, 뉴욕에서 있던 다른 한 명은 그냥 집에서 친구들과 식사를 하는 도중에 갑자기 서울과 동시에 서울의 쌍둥이에게 결정된 성별과 반대 성별의 성기가 동시에 생겨나서 성별이 정해진다는 논리의 현상입니다.
여러분 양자 중첩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양자얽힘이 이해가십니까?
정해지지 않은 두 쌍의 양자의 중첩이 하나를 확인하는 순간 두 쌍이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즉 안드로메다로 떨어져 있어도 동시에 결정이 된다는 동시성의 작용 문제이기 때문에 (물론 두 가지가 모두 적용이 되는 것은 맞지만) 양자중첩은 양자컴퓨터에, 양자얽힘은 빛보다 빠른 양자통신의 기본이론으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양자중첩과 양자얽힘은 실험으로 확인이 된 걸까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양자중첩과 양자얽힘은 직접적으로 확인된 실험은 전무(全無)합니다.
다만 벨부등식 실험이라는 간접 실험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는 두 방(房) 중 한 곳에 무조건 동전이 있다는 전제 하에, A방을 찾아보고 동전이 없으니 B방에 동전이 있다는 논리의 실험입니다.
직접 B방을 뒤지지 못하는 논리는 ”하나의 관측이 두 개의 상태를 동시에 결정한다“는 양자 원리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로렌츠와 푸엥카레의 에테르 존재론(存在論)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관측할 수 없고 어떠한 운동 상태도 지정할 수 없는 대상(에테르)을 가설로 세우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필요하다.“라고요.
그런데 그 수십 년 후에 양자얽힘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라는 국소성이론에 대하여
닐스 보어는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측정하기 전 대상이 독립적으로 가지고 있던 물리적 상태(실재)를 논하는 것은 성립할 수 없다.” 라고요.
저 두 논리를 정리하면
아인슈타인은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닐스 보어는 “측정하기 전에는 물리적 상태(실재)를 정할 수 없다”입니다.
비슷한 듯한 저 두 논리가 처음에는 아인슈타인이 로렌츠와 푸엥카레의 에테르론을 덮어버리는 승리였고
그 말년에는 닐스 보어의 승리와 아인슈타인의 패배로 결정이 났습니다.
마치 아인슈타인의 업보처럼요...
그 실험이 바로 벨부등식 실험입니다.
이 실험들로 관련해서 2022년에 노벨 물리학상이 결정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글이니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에테르 부재론(不在論)의 상대성이론은 언젠가 깨질 이론입니다.
그리고 어떤 거리에서도 동시에 결정된다는 양자중첩과 양자얽힘은 아인슈타인의 국소성이론의 승리로 될 것입니다. 즉 “양자 중첩은 없다.“라는 겁니다.
현재 양자컴퓨터의 개발(開發)은 겨울기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 말은 더 이상의 진척(進陟)에 정체(停滯)가 생겼다는 말도 됩니다.
제가 보기에 양자컴퓨터는 동전 없는 방에서 동전 찾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양자컴퓨터는 없었던 일로 되냐 하면 그것은 아닐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양자 컴퓨터를 개발하면서 생긴 모든 기술들 중에서 단지 양자중첩의 부분만 대체될 거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러면 상온에서의 진정한 양자컴퓨터가 개발될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 이거 아세요? 실제로 양자컴퓨터 불가론(不可論) 학자들이 꽤 존재한다는...
이후에 양자컴퓨터에 대하여 그 메커니즘을 설명드릴 기회가 있을 겁니다.
원래 양자중첩과 양자얽힘 만으로도 시리즈 연재가 가능할 정도이지만 지면상 2~3편으로 하겠습니다.
디지털 코스모스에 양자부터 거론하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 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