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500년 전의 천동설(天動說)이 왜 사라졌다고 생각하시나요?
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그 이후 지동설(地動說)이 진실이 되면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 발전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중세 이전에는 왜 진실의 지동설(地動說)이 아니고 천동설(天動說)이었을까요?
인간의 오감(五感)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 진실일 때 그것은 벽(wall)이 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 벽은 바로 당대의 최고 주류학자들이 라는 겁니다.
당대의 최고의 천재들만의 주류학자들 조차, 분명히 하늘이 돌고 있는데 땅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오감의 현실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겁니다.
그런데 더 아이러니한 게 뭔지 아세요?
그 당시에도, 물리현상들 중에 같은 오감(五感)과의 괴리(乖離)인데, 전혀 (서로) 다르게 받아들여진 것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여기에 기우 여러분들 중에서도 지구가 둥글다는 지구구형설(地球球形設)과 지구가 움직인다는 지동설(地動說)을 같은 한 묶음으로 생각하시고 계신 분들이 의외로 꽤많다는 겁니다. 물론 아닌 분들이 더 많겠지만요.^^.
그러나 실제로 지구구형설은 고대 과학자(철학자)들로부터 시작되었고, 심지어 고대에 그 증명까지 되었던 이론이었습니다.
그러니 천동설의 중세시대에도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당대 과학자들에게는 기정 사실의 상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동설은 다릅니다.
고대에도 비주류의 과학자들에 의해서 지동설이 제기되기는 했으나, 주류 학자들의 천동설에 밀려서 코페르니쿠스 이전까지 2000여 년 동안 천동설이 주류 이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지동설을 머리에 넣고 살은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말할 데도 없고, 들어줄 사람들도 없고, 잘못하면 미친 사람 소리나 들을 것이니 얼마나 답담했겠습니까.
제 입장에서는 디지털 우주가 그렇습니다.
제가 왜 아인쉬타인에 대하여, 100여년 넘게 공간 물리학의 발전을 가로막은 인물이라고 헸겠습니까.
디지털 우주를 말하려면, 우선 빈 공간이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라는 것부터 머릿 속에서 지워야 합니다.
그런데 아인쉬타인이라는 희대의 천재 이단 교주가 광속불변(光速不變)이라는 것의 순환논리(巡還論理)로 (공간의 에테르) 즉 “우주공간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전제로 상대성이론을 발표하였고, 그것이 대세의 주류 이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상대성이론 발표 당시에는 이미 100여년 전에 토마스영의 빛의 이중슬릿 실험에서 빛의 이중성 즉 파동(波動)이면서 입자(粒子)라는 것이 실험으로 증명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물리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패의 실험”이라는 마이컬슨몰리 실험을 교묘히 가져다가 이용한 아인쉬타인에 의해서 공간과 사람들의 머리가 그야말로 빈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당연히 지동설 이후에 제일 큰 화두인 공간에 대한 연구가 중단되다시피 했다는 겁니다.
마이컬슨몰리 실험은 실패한 실험이 아니고, 빛과 공간에 대한 개념 자체를 잘 못 이해하고 실험한 그릇된 실험이었습니다.
물론 그 실험 가치가 너무나도 크고 위대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성질은 매우 다른, 밀가루와 전분(澱粉)이나 설탕과 소금을 같은 것으로 착각하고 요리를 한 것과 같습니다.
소리의 파동과 빛의 파동은 소금과 설탕의 차이만큼이나 그 차이가 큽니다.
그런데 마이컬슨 실험은 소리의 파동과 같은 실험 결과를 보려고
빛으로 실험을 한 겁니다.
전분을 넣어야 할 때 밀가루를 넣고, 설탕을 넣어야 할 때 소금을 넣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교훈은 얻겠지만 요리 자체는 실패한 겁니다.
여러분.
빈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는 아무런 작용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는 0에 어떤(any) 수를 곱해도 0이 된다는 논리와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빈 공간에서 중력이 작용하고, 빛이 휘어지고, 빛이 30만km/sec의 종단속도(終端速度)를 가진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공간이 휘었고 구형(球形)이라고도 하죠.
이는 시공간(時空間)이라는 추상적인 만능키 같은 것으로 그냥 지나칠 사안이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속도의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공기가 없으면 빗방울은 총알이 됩니다.
디지털 코스모스의 시작은, 빈 공간에 무엇이 있느냐 없느냐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데, 디지털인지 아나로그인지는 의미도 없고 논의 대상도 안됩니다.
이 자연에서는 어떤 것도 서로 전혀 연관(聯關)이 없는 것은 없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양자물리학(量子物理學) 태동이고 현대 양자 컴퓨터의 기반인 “양자중첩(양자중첩)”으로 본격적인 연재를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