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두메산골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쌈밥과 갈치조림, 고등어조림, 삼겹살, 어묵 탕 등등 메뉴가 풍성한 곳이다.
내가 이곳에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달에 한번쯤 아내와 딸애가 모임에 가거나 특별한 일이 생겨서 아내와 딸내미가 나를 자유롭게 할 때뿐이다.
그 경우에도 나는 소머리 국밥집이나 자장면 집이나 순대 국 집 등등에 저울질을 하는 통에 그 집에 갈 확률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이번에는 기회가 생기자마자 그 집으로 가기로 나의 결심을 굳혔다.
그 집 주인에게 고마움을 느낀 일이 있었다.
아내와 딸과 함께 그 집에 갔을 때 (그때에는 딸내미가 나한테 술을 먹지 말도록 엄중히 주의를 주고 있을 때였다.)
주인아주머니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술을 한 병 내왔다.
이게 웬 횡재일까? 모두들 망연자실했지만 나는 사태를 깨달았다.
처음 내가 이집에서 혼자 술을 마실 때 이 두메산골을 찾아오기 위해 산 넘고 물 건너서 무척 고생을 했노라고 떠벌린 적이 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그 때의 나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내와 딸이 어어? 하는 사이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우리 집에서 그 식당까지 가는 길은 정말 험난하다.
우선 산을 넘어야한다. 끝없는 오르막길, 숨을 헐떡거리며 도중에 마주치는 성황당들 마다 돌을 얹어가며 쉼 없이 올라가서는 꼭대기에 이르러서야 땀을 식힌다.
(하하 실제는 간단한 오르막 계단길입니다). 그리고 잠시 쉰 다음에는 힘든 내리막길과 깊은 물을 건너야 한다는 사실. (실제로는 완만하지만 그래도 차가 무수히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험한 내리막길과 깊은 물을 건너는 것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식당에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했다.
쌈밥에 *** 빨간 것 한 병. 보통 때는 파란 것을 마시지만 오늘에는 어쩐지 빨간 것이 마시고 싶었다.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하여 글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다시 마음을 바꾸었다.
딸애가 가족끼리 영화 ‘어나더 라운드’ 을 보자고 했기 때문이다.
술에 관한 덴마크 영화라고 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술에 대하여 다소 긍정적인 내용인 것 같았다.
술에 기겁을 하는 딸애이지만 그런 영화를 보자고 하는 것을 보면 그래도 딸애에게 일말의 이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아직 관람은 안 했지만 술을 좋아하는 나의 존재를 인식 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빨간 것과 파란 것의 맛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파란 것은 우선 시원하고 상쾌하다.
반면에 빨간 것은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
둘 다 냉장고에서 꺼내왔으니까 똑 같이 시원할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차이점이 존재할까? 도수 때문일까?
사실은 맛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냥 선입관일 지도 모른다.
빨주노초파남보. 파장의 차이에 따라 그냥 그렇게 느껴질 지도 모른다.
색깔을 지우고 그냥 잔에다 따라 준다면 우리는 아무런 차이점을 못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절대 그게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분명히 나는 차이점을 느끼는데 무슨 신박한 헛소리냐 라고. 맛에 대하여 예민한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 모임에서는 대부분 파란 것을 마신다.
나이가 들고 자제심이 생겨서 그럴지도 모른다.
파란 것을 마시면 그런대로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느낌이 든다.
요즈음의 세상에 딱 맞는 컨 셉이 아닐까? 적당함!
그런데 기어이 빨간 것을 찾는 친구들이 있다.
같은 값이면 맛있는 것을 마시겠노라는. 그런데 빨간 것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하게도 도를 넘는, 주정뱅이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대부분의 식당이 의자를 설치했지만 이 집은 아직도 앉은뱅이 탁자이다.
나는 그 점도 마음에 든다.
짜리몽땅한 나인지라 그런지 앉은뱅이 탁자가 전혀 불편하지가 않다.
책상다리 자세나 무릎 꿇은 자세가 건강에 안 좋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적응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버틸 만큼 내력을 단련한다면 오히려 불편한 자세도 오히려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쯧쯧 참으로 미련한 사람일세.) 그리고 엉덩이가 따끈따끈 한 것은 또한 덤으로 따라오는 호사가 아닌가?
한 상 가득히 차려놓고 점심을 즐겼다. 된장찌개, 두부조림, 파슬리 무침, 상추와 깻잎, 보쌈, 등등.
tv를 보면 ‘고독한 미식가’란 프로그램이 있다.
프로에 등장하는 사람은 일본 배우인데 키가 크다.
키 큰 사람은 잘 먹는다는 사실을 나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 배우는 술도 못 마시면서도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는다.
그 배우는 그 프로로 인해서 무명 배우에서 일약 인기배우로 발돋움했다고 하였다.
아내는 그 프로만 나오면 아주 열심히 본다.
만약 내가 먹는 것을 화면으로 찍는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잘 생기지도 안했지만 (사실 못생겼지) 먹는 모습이 그 배우처럼 그렇게 우아할 수가 도저히 없다.
하하하, 내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만약 찍는다면 가관이겠다.
나는 맛있는 부분에서 흐뭇한 표정을 짓는 것이 아니라 인상을 잔뜩 찌푸린다.
그리고 술을 마실 때면 더 더욱 얼굴을 구긴다.
희열에 잠겼을 때의 그 표정은 누구나가 다 감추려고 하지 않을까?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사람 속에 천당과 지옥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어제 ‘벌거벗은 세계사’란 프로에서 소말리아의 현상에 대해서 관람하게 되었다.
소말리아의 참혹한 현실과 해적질에 관하여 인간의 악함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인간. 대 자연에 비하면 참 하찮으면서도 알 수 없는 존재이다.
어쩌면 대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점심을 잘 먹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 같은 행복이 가끔 (자주는 말고) 찾아왔으면 좋겠다.
수용소군도에서 작가가 외친 장면이 마음속에 선하다. ‘
세상의 모든 위대한 일들은 남에게 나보다 어리석은 자들에게 맡기고 나는 알타이의 자연으로 들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