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결핵을 앓으시던 할머니는 마루 너머 멀리 마당에 서 있는 우리에게까지 들릴 만큼 거칠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계셨다. 할머니의 임종이 가까운 것을 아신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코와 입을 큰 수건으로 가려 묶으신 채 할머니 곁을 지키셨다.
아직은 어렸던 우리에게는 할머니가 계신 방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셨고 우리는 마당 멀리에 서서 할머니의 임종을 지켰다.
폐결핵을 앓던 사람이 임종할 때면 몸속에 있던 결핵균을 모두 밖으로 쏟아낸다는 속설을 믿으셨던 아버지는 아직 어린 우리를 결핵균으로부터 지키고 싶으셨던 것이다.
할머니는 몇 번이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셨고 마지막 순간에는 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는 듯하시더니 끝내 눈을 감지 못하신 채 운명하셨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눈을 감겨 드렸다.
1890년생이신 할머니는 열일곱에 결혼하셨다.
결혼한 지 삼 년 만에 첫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둔 채 홀로된 할아버지의 재취로 들어오셨다.
그러나 그 남편마저 삼 년 만에 병으로 떠나보내셨다.
그렇게 다시 과부의 굴레를 쓰신 할머니는 당신이 낳지 않은 두 아들과 함께 남은 생을 살아 내셔야 했다.
그 삶이 얼마나 고단하셨을까.
가슴에 맺힌 한도 많으셨을 것이다.
평생을 아프게 살아오신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에도 눈을 감지 못하셨다.
어쩌면 끝내 감지 못하신 그 눈에는 고단했던 삶의 흔적과 끝내 풀어내지 못한 회한이 남아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일흔을 훌쩍 넘어서도 가을이면 직접 억새를 베어와 지붕을 새로 덮으시던 아버지께서 여든에 접어 드시면서 눈에 띄게 기력이 쇠하셨다.
게다가 마른기침이 그치지 않아 병원을 찾으셨는데, 폐암 3기라는 진단을 받으셨다.
의사도 자식들도 모두 수술을 권했지만 아버지는 단호하셨다.
“팔십 년이면 무쇠라도 녹슬고 부스러질 세월인데, 사람 몸뚱이만큼 무던한 게 없지 않으냐. 이 나이에 무슨 영화를 더 누리겠다고 수술을 하겠느냐. 그냥 편하게 살다 갈란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 무렵 아버지에게 찾아온 가벼운 치매는 어쩌면 폐암의 고통을 잊게 해 주는 진통제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일까. 아버지는 암으로 인한 고통을 거의 느끼지 않으셨고, 그렇게 삼 년을 더 우리 곁에 머물러 주셨다.
떠나시던 날, 네 아들이 모두 아버지의 곁에 있었다.
아버지는 누워있기 답답하다며 평소 앉아 창밖을 바라보시던 안락의자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마치 따스한 봄볕 아래 편안히 잠 드시려는 모습이었다.
호흡이 조금씩 길어지고 계셨다.
삼십 초쯤 지나 한 번, 다시 일 분쯤 지나 또 한 번 길고 깊은 숨을 쉬셨다.
그리고 이 분쯤 지났을까. 마지막으로 길게 숨을 내쉬셨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던 둘째가 말했다.
“가셨어요.”
아무도 말이 없었다.
누구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도 평안해보여서였을까. 우리는 누구도 울음조차 터뜨리지 못했다.
어머니가 먼저 떠나신 뒤, 아버지는 십 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큰며느리와 손자들을 보며 살아오셨고 어머니가 떠나가신 이듬 해 날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셨고 하루의 대부분을 성경 봉독과 자식들을 위한 기도로 보내셨다.
아버지는 큰 글자 성경의 마지막 빈 페이지에 일독하실 때마다 바를 정(正)자로 표시를 하셨고 아버지의 성경책을 내가 물려받았을 때, 그곳에는 바를 정 자가 열한 개, 그리고 한 일(一) 자 하나가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성경을 쉰여섯 번 완독하셨고, 쉰일곱 번째 성경 봉독을 이어 가시던 중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는 그렇게 우리 네 아들에게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만이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삶을 마무리해야 하는지 까지도 보여 주셨다.
어떤 모습으로 가야 할까. 요즘 들어 가끔 생각을 한다.
에녹처럼, 엘리야처럼 갈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언감생심이다.
결국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과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나의 마지막 모습 일 수밖에 없고 할머니처럼 아프게 떠나기보다 아버지처럼 평온하게 눈을 감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 또한 내 뜻대로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잘 살고 싶다.
떠나는 순간까지 내 삶을 잘 살아 내고 싶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남은 사람들에게 슬픔이나 짐을 남기지 않고 잘 떠나고 싶다.
백 년이라도 더 살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면서도 내일이 마지막 날이 된다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삶. 언젠가 떠날 날을 생각하며 두려워하기보다는, 주어진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아 내는 삶. 그런 삶을 살자,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