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화 둥실 고추로다
동네방네 알리시고
정한 수 떠다 놓고
여명마다 빌으시네
뜨거울까 식을세라
아궁이 불 토닥이고
어딜 가도 업고 안고
눈길 한번 떼지 않네
자나깨나 내 새끼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어화둥둥 내 새끼
어화둥둥 내 새끼
내가 기억하는 울 할머님의 손주 사랑이다
몇 줄의 글 나부랑이로 그 많은 사랑을 어찌 옮길 수 있으랴
험한 말 입에 담지 않고 하늘에 순응하며 농사만 지으시고
쉰에 홀로되어 딸 하나 의지하며 살아오신
일 백 년의 세월에 얼굴엔 고난의 수읽기가 19로의 19로 만큼 겹치시고
그 많은 밤을 지샌 인고의 세월이 쌓여 머리엔 백 년 설로 덮였다.
할머님이 많이 편찮으실 때
일어나지도 못하시니 대소변도 불편하고 어머님이 밤새 수발 하시는데
나는 애만 태우고 있다
그러다 엄니마저 쓰러진 몇 달간은...
우리는 서로를 보며 그저 눈물만 흘렸다.
힘들어 고개도 못 드시면서도 일 나갈 때나 들어올 때 손을 내미셨다.
나와 늘 하던 하이파이브를 하시자는 것이다
마이 벌어온네이...마이 벌어왔나...
엊그제만 해도 힘차게 부딪치던 할머님의 손바닥은 이제는 힘이 없어
그냥 내미시고
나는 그 위에다 손을 부딪친다. 그리고 환하게 웃는다
마이 벌어오께...그런데 어째 끝말이 떨리고 눈이 침침 해지던지.
앉아 있기도 힘드신데 나만 보면 웃으시고
나서기만 하면 돈 벌러 가는 줄 아신다
고생 해레이...마이 벌어 온네이...
소파에 어머님과 앉아서 뭔가를 드시다
화장실 갔다 일 나가는 나에게 기어코 불러서 손에 쥐어 주는 밀감 하나.
시동을 걸고 한쪽 까서 밀어 넣었는데.
우씨...
요즘 밀감은 왜이래..?
눈물 콧물 다 나오네. 빌어먹을...
할머니.
이제는 각오도 하고 마음의 준비도 되었건만 왜 이리 서러운가.
피덩이라고는 어머님 밖에 없으셔 모신지 30여년
10여 년 치매 수발도 이제는 하룻밤 악몽같이 지났고 천수 백수가 낼 모래다
어젯밤 꿈에서 생전 입에 담지 않던 외가 친척들을 늘어놓으면서 화전놀이 하더란다
당신께 이것저것 권하고 오랜만에 모두 인사했다고 하신다.
얼굴과 옷매무새까지 설명하면서.
어머님이 "당신도 오라 하시더냐" .하시니 그런 소린 안 하더란다.
108사찰 순례길은 가시는 길 적적하지 마시라 손자 정성 넣어 드리려 나선길
갈수록 길은 멀어지고 세상은 이내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하지만 50여 년의 우리의 교감을 믿었고 할머니는 나를 기다리셨다
내가 100번째 순례를 마치고 3일 뒤 하얀 눈이 펑펑 오는 날
100수를 끝으로 병원에서 산소호흡기를 제안할 때 손을 흔드셨다.
그리고 그 손을 계속 들고 계셨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 하이파이브 였고 나는 할머니 가슴에 쓰러졌다.
할매요..........
장례를 치르고 100통의 편지와 순례 사진을 넣어 드리고
49제를 마치고 나머지 8통을 보내 드렸다.
살아서 애태우듯 가신 뒤에도 이놈이 굶을까 지켜보고 챙기시리라.
젖꼭지 빨던 시절부터 지금껏 50여 년
당신은 내 마음의 고향이요 안식처 였습니다.
당신의 눈에서 고향의 언덕과 정자나무를 보았고 실개천을 떠올렸습니다.
당신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는 언제나 당신의 가슴에 쓰러져 쉴 수가 있었습니다.
야구연습 한다고 장독대 성할 날 없고
축구하다가 씨암닭 발로 차 가마솥으로 후송시키고.
태권도 자랑하다 동네 애들 코피 내고 몰래 쌀을 퍼다가 건빵으로 바꿔먹고
온 동네 서리하러 다니며 말썽 피워도 내 새끼는 절대 그럴 애가 아니다
다른 애들 때문이다.
안아주고..감싸주고...
"내가 그렇게 말렸는데도 그눔에게 시집가가 지만 고생하지 내 까지...
전답 다 팔아먹고 죄받아서 중풍 왔는거 아이가.
내는 니만 믿고 살아 왔데이".
그래도 니는 내 한테 잘했데이. 고맙데이...진짜 고맙데이...
세상을 원망하면서도 외손자에게는 늘 고마워했다.
뭣이라도 내놓을 라면 늘 하시는 말씀에 우리는 또 눈물바다가 된다
아무도 믿지 않았다. 어머님 조차도...
집 밖을 나설 때는 내가 없으면 죽어도 안 나가셨다.
우리 선달이는 믿는데이...
절대로 나를 버릴 아가 아이제. 다른 놈은 다 안 믿는다. 절대로...
이게 우리의 50년 믿음이었다.
할머니
부름 만으로도 포근하고 아늑한 이름이여
내 시린 마음을 밤낮으로 데워주던 따뜻한 가슴이여
벌써 어둠이 밀려오는 내 마음의 고향 노을을 바라보며
저어둠이 덮기 전에
마지막 남은 붉은 옷자락을 부여잡고 마음에 깊이 새기려 하는 어리석음이
허접한 글나부랑이로 영전을 바라보며 젖은 상념의 짚단에 불을 지핀다.
벌써 2년째 맞는 우울한 새해.
지난 밤부터 아침까지 술을 마셨다.
바둑두다가 대창에서 떠들다가 게시판 갔다가.
나름 조용히 한 해를 마무리한다고 시작 한 술이 새해로 이어졌다.
아버지의 억지 춘향 30년 할머니와의 애닯은 추억을 꺼내 든 것은
30여 년 간병전우 엄니에게 올해부터라도 좀 더 편하게 모시자고
다짐하려 한 것이다.
언젠가 염라대왕이.
너에게 부귀영화를 줄 수 있다 하지만 니 명이 짧다
오래 살고 싶으냐.? 라고 묻는 꿈을 꾸었다
누가 일찍 죽고 싶겠소. 둘 다 주시오. 했더니.
꿈이었다
그때 내 앞에 막걸리 석 잔이 있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그 막걸리 석 잔이 내 업을 닦은 후의 포상인가 한다.
할머니 아버지로 두 잔은 확보했고 한 잔만 남은가보다.
일어났다 쓰러졌다 를 반복하고 있지만. 운명이라면 나를 갈구지 말고
엄니 고생시키지 마라.
저승 잔이 얼마나 큰지 모르지만. 이승에서 먹고 채울 일은 아니지 않는가.
그래. 다시 붙어보자 운명아.
내 아무리 하수지만 지난 30년 동안 당한 게 있으니 해볼만하다.
사수 앞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