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o 세계 인터넷바둑의 허브
  • 겜임&채널
죽다 살아난 세상에 희망은 있더라 - 2 | 나도 작가
Home > 커뮤니티 > 박민식
박민식 새벽을 여는 詩想

작가의 말


 이 글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자와 협의하지 않은 무단전재는 금합니다.
죽다 살아난 세상에 희망은 있더라 - 2
2009-12-11 오전 3:01 조회 4078추천 22   프린트스크랩
▲ 누군가 내 앞에 흰꽃을 바쳤을 지도 모른다. 살아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이다. 이 가운데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참으로 미묘한 질문일 것이다. 하지만 과거를 살핀 후에 현실을 직시하면 이에 대한 답은 너무나 간단하다. 깍뚜기! 그렇다. 어느 쪽이라고 정해 놓지 않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 유리하게 선택하는 것이 인간이 걸어온 이기적인 역사였으니까.

 

족두리봉을 향해 산 길로 들어서서 얼마 가지 않아 만난 운명의 장소에서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산악회를 이끌 때 미끄럼틀 고래등이라 명명하고 눈 감고도 치고 올라간 암반이었기에 그로 인한 습관성 방심이 원칙을 무시한 무모함을 불렀다. 이날 바람이 무척 강해서 우회로를 택하는 것이 현명했다. 기본을 지켜야 했다. 이곳까지 오면서 주변을 촬영한 캐논 400D도 배낭에 넣었어야 했다. 카메라를 왼쪽 겨드랑이 밑으로 가로질러 허리춤에 덜렁거리게 맨 채 힘차게 암반을 올랐다. 다른 사람에게는 안전을 위해서 피해 가라고 충고하던 곳이다. 

 

이런 암반을 자일 없이 그것도 무게가 있는 배낭을 메고 오를 때는 중간에 멈추어 서서는 절대 안된다. 그랬다가는 오도가도 못하는 곤경에 빠지게 되고 누군가가 저 위에서 자일을 내려주어야 무사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몇 년을 도시에서 썩기는 했지만 오랜 세월 앞마당처럼 다녔던 곳, 사고는 항상 만만한 곳에서 나는 법이다. 그걸 잘 아는 놈이 강풍이 부는 환경에서 비박 장비까지 챙겨 넣은 배낭을 메고 카메라를 방치한 채 그것도 혼자 고래등을 타다니.......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강하게 부는 바람때문에 일직선 수직으로 오르는 것은 포기했다. 자일을 설치하지 않은 상태에서 옆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이다. 왼쪽 하단부에서 오른 쪽 방향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바람을 가급적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가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로 20~30m쯤 암반 위를 나아갔을까? 순간 더 강해진 바람으로 몸의 중심이 흔들려 자세를 낮추며 더 빠르게 나아가려는 순간 무언가가 암반에 걸렸다. 왼쪽 겨드랑이 밑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카메라의 어느 부위가 암반의 홈이나 돌출된 곳에 걸린 것이다. 결국 기본을 지키지 못한 것이 위험천만한 상황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그 찰나의 순간, 나는 고래등에 엎어졌다. 왼쪽 다리 위에 오른쪽 다리가 포개진 채 배낭 왼쪽이 암반에 닿아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두 손바닥은 암반에 밀착시킨 채였다. 오른손 엄지 손가락이 밋밋한 고래등 위에서 코딱지만한 돌출을 찾아 낸 것은 나를 저 밑으로 쏠려 떨어지지 않게 한 생명점이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침착하려고 애를 썼다. 급한 경사면에서 다시 일어나 바람을 향해 전진한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했다. 뒤를 돌아다 보았지만 대략난감이다. 몇 년 된 등산화도 밀착력이 떨어졌다. 배낭을 벗어 던져 몸이 가벼워져야 활로를 찾을 수 있는데 그 상태에서는 도저히 배낭에서 팔을 뺄 수가 없었다. 오른 손 엄지 손가락에 의지해 발의 위치를 잡아보려 했지만 그러기엔 경사가 너무나 심한 곳이다.

 

후회하기엔 너무나 늦었다. 두 다리를 벌려 무게를 분산하는 것이 최대한 버티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새벽에 정성껏 싸서 배낭에 넣어 둔 도시락이 나를 위한 젯밥이 되는가 싶었다. 평소에 하지 않던 짓을 하면 죽는다 하더니만...쯧쯧쯧... 스스로에게 냉소적인 사람이 된다. 아내와 아들과 어머니의 슬퍼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음을 알면서 아랫배에 힘을 모으고 소리를 지른다. "살려 주세요!" "아무도 없나요?" "도와 주세요!" 누군가 나의 간절한 절규를 들어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혼신의 힘으로 버티고 있을 때 기적처럼 누군가가 나타났다. 부부가 함께 산행을 오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셨다. "아니, 어째 그 위험한 곳에 매달려 있능겨?" "여보, 어째요, 119에 전화할까?" 두 분의 걱정어린 목소리는 쥐가 나려는 몸뚱이에 약간의 완화효과가 있었다. 그것도 잠시, 오른손 엄지 손가락이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고 아득한 뇌에 신호음을 전달하고 있었다. 

 


 

마음을 비우기로 한다. 죽은 목숨이라 생각하니 두렵기 보다는 여유가 생긴다. 최선을 다해 떨어지기로 한다. 저 아래 왼쪽 나무 위로 나를 던지리라 마음을 정한다. 이 자세로 미끄러지면 옆으로 굴러 떨어질 것이므로 바로 끝장일테니 정면을 보고 떨어지기로 한다. 온 몸에 쥐가 날듯이 모든 기력이 빠져 나간다. 나는 두 발의 뒷꿈치를 경사면에 붙인 채 앞으로 향하고 이미 피가 나는 엄지 손가락을 해방시키기로 결심한다. 처절하게 버티어 준 오른손 엄지 손가락을 마침내 뗀다. 순간 바로 추락할 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배낭 뒤에 나란히 매달려 있던 스틱이 암반에 끌리며 떨어지는 속도를 늦추어 주고 있음을 느꼈다. 최대한 등을 붙이며 방향을 나무 쪽으로 잡아 주르륵 낙하하는 순간 저 아래 할머니께서 "어째 어째"를 비명처럼 쏟아내셨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던가?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하지 않았나. 당장 죽을지언정 절망을 버리고 희망을 택하는 내가 되고 싶었다.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살 수 있어. 나는 내가 원하던 나무 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바로 아래 나무가 보였을 때 몸을 앞으로 던져 두 손을 내밀었다. 내가 주목하고 있었던 팔목막한 나뭇가지를 붙잡았다. 내 몸뚱이와 배낭의 무게에 떨어지는 가속력까지 합쳐져 나뭇가지를 붙들고 있으면 많이 다칠 것이라 생각했다. 떨어지는 가속도를 나뭇가지의 탄력이 충분히 완충작용해 주었다고 판단한 순간, 손을 놓았다. 땅에 착지했을 때 나는 서 있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마리아님 고맙습니다.

 

떨어지는 나보다 더 놀란 가슴이 되신 노부부께서 달려오셨다. 내 몸을 여기저기 만지시며 연신 괜찮냐고 신통하다고, 천운이라고, 우리가 도와줄 수 없어 미한했다고, 죽는 줄 알았다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되레 내가 그 분들을 안정시켜야 했다.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앞길에 스스로 말뚝을 쳐 힘들게 한 적은 없었는가? 이번 경우가 그러했다. 말뚝 정도가 아니라 생사의 갈림길에 나를 방치한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모한 짓인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오른손 엄지 손가락을 밴드로 지혈하고 나서야 온 몸을 살펴 보았다. 신기할 정도로 다친 곳이 없다.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진중하게 올렸다.

 

새 생명을 거저 얻은 기분! 기도를 끝마치고 나자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진 듯 하다.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무엇이 걱정이란 말인가?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이 더더욱 아름다워 보였고 의미롭게 다가섰다. 무모함에서 비롯된 생사의 기로에서 기사회생한 나의 삶이 너무나 소중해지기 시작했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온 몸의 기력이 빠졌지만 의욕은 송글송글한 땀처럼 재생되고 있었다.

 


 

길어야 10분도 안되는 절체절명의 순간, 그 시간은 너무나도 공포스런 아픔이고 참회였다. 미늘에 낚였다 구사일생으로 빠져 나온 물고기처럼 금세 미끼를 다시 무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 심신을 위로하고자 오른 산의 초입에서 온 몸의 기력과 진을 다 빼앗긴 어리석은 사람은 고민을 한다. 집으로 가서 놀란 영혼과 진저리 친 육신을 쉬어 주어야 하는가 아니면 두번 다시 잊지 못하도록 참회를 하며 스스로에게 벌을 내려야 하는가?

 

역시 후자를 선택하기로 한다. 하지만 넋이 거의 빠진 심신을 달래주는 게 먼저이다. 20여 분을 움직여 조용한 장소를 찾아내 나무 사이에 해먹을 쳤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살아난 뒤에 우울하고 맥빠진 귀가보다는 자숙과 반성의 시간을 갖기로 하였으니 휴식이 필요했다. 한 시간 남짓 해먹에 누워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바람의 찬 기운이 등을 훑고 지나가도 춥다 여기지 않았다. 설핏 잠에 들기도 했다.

 

전화벨이 울린다. 아내였다. 사실대로 털어 놓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걱정 어린 분노가 폭발했다. 내가 죽을 뻔한 그 암반을 아내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는다. 욕을 먹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다시는 위험한 곳에 가지 않는다고 약속하고는 통화를 마친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집에 돌아가서 다시 한번 치러야 할 아내의 폭격을 각오해야 한다.

 

배낭에서 사과 하나를 꺼냈다. 이런 달콤함을 다시 맛볼 수 있다니! 사과라는 자연이 가져다 준 기운이 온 몸에 퍼진다. 어느 정도의 기력이 회복되었다. 짐을 챙겨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뼈저린 참회의 산행을!

 


 

이 아름다운 세상을 다시 만나게 해주신 분께 감사의 성호를 긋는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고 산은 여전히 초록빛이었다.

아, 세상이 너무 아름답구나!

   


 

족두리봉을 지나고 비봉을 지나 사모바위에 도착한다. 열린 하늘을 대하니 온 세상이 내것만 같았다. 갈증이 나고 배가 고픈 걸 보니 평상으로 돌아왔나 보다. 기진맥진하며 왔으나 도시락을 맛 볼 행복한 점심시간이다. 사모바위 바로 아래 그늘에서 먹는 도시락은 꿀맛이었다. 하마터면 젯밥이 될 뻔한 도시락은 기꺼이 나를 다시 태어나게 돕는 에너지요 영양분이 되어 주었다.

  


 

저 남자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간직할 준비를 하고 온 사람이다. 빛과 시간과 공간을 마음에 들게 담아내느라 궁리를 하고 있다. 무언가에 빠져 있는 사람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산과 하늘과 구름이 그를 더욱 멋지게 채색해 준다.

 


 

2.5km의 하산 코스를 두고 5.6km를 선택한 것은 뼈저린 반성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충분히 지친 몸을 이끌고 5.6km를 걷기로 한다. 삼각산의 아름다운 산세는 잠시 뿐이고 지난 여름 장마로 망신창이가 된 산길을 따라 하염없이 걷고 또 걷는다. 어깨는 부서질 듯하고 두 다리는 휘청거리지만 살아 있음에 대견해 하며 앞으로 어떤 상황에도 감사하며 살아가리라 다짐을 한다.

 


 

"길이 아니면 굳이 가지를 말라!"

걷고 또 걸으면서 25년 전 인터뷰를 했던 송광사 불일암의 법정 스님 말씀이 떠오른다. 당시 대학생 기자로서 찾아 뵌 법정 스님은 내게 큰 가르침을 주셨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쇠 귀에 경 읽기가 된 꼴이다. 존경하는 그 분께 괜히 죄스럽다. 그 분의 다른 가르침도 연결되어 떠오른다.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나니, 사랑하는 사람도 미워하는 사람도 갖지 말라!" 


 


 

가물거리는 미래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현실에서 배운다. 마실 물이 떨어져 시원한 음료에 대한 환상 속에서 7시간 째 걷고 있다. 천근만근의 몸뚱아리를 끌고 참회의 하산을 하던 중에 만난 약수터. 나란히 참선중인 파란색 플라스틱 바가지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는다. 단물의 진정한 의미, 그것은 철학이 아니라 목 마른 자만이 체득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없는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저 가파른 길을 경운기가 올라간다. 아무리 기계라 하지만 무거운 지게를 맨 사람보다 더 힘겨워 보인다. 경운기를 운전하는 아저씨는 허리에 복대를 하고 있다. 고단한 삶, 그것이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일지라도 우리는 받아 들여야 한다. 찡그리지 말고 즐겨야 한다. 험한 길을 고통스럽게 오르면 반드시 통쾌한 바람을 안고 편히 내려올 때가 있는 법이다. 저 일행에 비하면 나는 지금 얼마나 편한 길을 내려가는가? 또 하나의 가르침을 얻은 그 순간에 감사한다. 그대여, 현실을 사랑하라!

 


 

내 목숨을 위험하게 만든 짐이 내 목숨을 살리기도 한다. 세상은 변화무쌍하게 나를 가르친다. 잠시 무거운 인생을 내려 놓고 나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참회를 한다. 매일 새로워져야 진정한 인간이 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평범하지만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를 위해 매 시간 매 초마다 나를 일깨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니, 노력이 아니라 호흡처럼 자연스러워 함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삶이 아니라, 얼마나 살 만한 세상인지를 나 자신에게, 가족에게 그리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몸소 아름답게 펼쳐 보이고 싶다. 범사에 감사하면서.

 



┃꼬릿글 쓰기
자객행 |  2009-12-11 오전 7:13:0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외연은 三綱領이고 내연은 八條目이니
님은 언제나 바른 생활의 사나이입니다. 한짐 번뇌를 산에 지고가 놓고 오는것이 산행이라지요.  
돌부처쎈돌 그러려고 노력하며 살아 갑니다. 말이 행동을 앞서 가지 않고 행동이 말을 왕따하지 않도록 일신우일신^^ 감사합니다.
youngpan |  2009-12-11 오전 7:22:1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아코..정말 폭격 당해도 싸지 싸~~
하지만 땅콩을 알려줘도 알지 못하니
나중에 만나서 어떤 폭격을 당할꽁..  
youngpan 눈에 보이는 위험을 금방 깨닫지만 보이지 않는 위험을 어이 알아볼까요..
돌부처쎈돌 그러게 말입니다^^ 폭격 엄청 당하였지요. 그 여파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땅콩^^ 안 먹으려고 노력중입니다. ㅋㅋㅋ
돌부처쎈돌 보이지 않는 위험을 만들지 말아야지요^^
당근돼지 |  2009-12-11 오전 8:46:0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러한 상황속에서도.........이렇듯 아름다운 사진들 감사 합니다.  
돌부처쎈돌 그러한 상황에서 살아 남았으니 흔적을 남기게 되는 것입지요^^
영바모 |  2009-12-11 오전 8:54:1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살다보면 여러번 죽을 고비를 당하죠. 그때마다 몽골이 송연해지면서 후회와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초딩때 추락해서 두다리 골절된 경험...사춘기 내내 악몽에 시달리며 성격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더군요. 가급적 바르게 살자...유혹에 넘어가지 말자...친구따라 강남가지 말자. 등등 곱씹으며.. 박시인님, 소중한 경험을 했군요...  
돌부처쎈돌 그러한 경험은 두번 다시 하지 말아야 할 터인데 워낙 모자란 사람이라서 두고두고 곱씹으며 살아가고자 한답니다^^
沙里 |  2009-12-11 오전 9:27:4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헐 ~~ 정말로 죽다 살아나셨네요. 다시 얻은 삶 축하합니다~~즐겁게 보내세요^^  
돌부처쎈돌 그렇습니다^^ 정말로 죽다 살아났습니다. 감사합니다^^
꽁꽁수 |  2009-12-11 오후 6:59:5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또 한겹 성숙하셨군요 .
우리는 항상 이렇게 모든 위험과 같이 하고있다고 생각함니다 .
겉으로 보이는 위험도 스스로 못 느끼는 위기들도 항상 동행 하고있으니 ..
쬐금만 더 세상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고 오늘도 반성함니다 ..
다행입니다 ㅎ
약속한 술한잔 못하고 떠났으면 꽁수 마음에 큰 짐이였었을텐데 ..감사함니다 ,  
돌부처쎈돌 그 약속을 언젠가는 지킬 수 있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uzuro |  2009-12-11 오후 8:00:5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저도 혼자 산행 갔다가 가파른 바위에서 오도가도 못하던 경험이 있는데, 버티던 힘이 거의 떨어질 무렵 겨우 우연히 지나가던 분의 도움으로 벗어났던 적이 있지요.
그 뒤론 절대 혼자서 산에 오르지 않았던 것 같네요. 신중한 사려 없이 무작정 벌인 많은 일들이 미치는 파장, 그 책임과 수습의 고뇌를 거치며 나름 성숙해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이를 허투루 들고 싶지 않은 것...저의 작지만 큰 소망입니다.
 
돌부처쎈돌 그 소망을 저도 간직하고 하루하루에 정성을 다하며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별天地 |  2009-12-12 오전 10:47:4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얼마전 칼로 손가락을 살짝 베었습니다. 근데
신기한 건 그 작은 상처에도 신경 쓰이고 손으로 세수도 못하고
불편한 데,, 많이 다친 사람, 병원에서 보는 숱한 환자들, 치매 , 암환자
그리고 마음이 다친 사람들은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또 얼마나 강한가에 대해서도 동시에 생각해 보았어요.
현장감 있는 사진과 함께 멋진글 잘 보았습니다. 족두리봉 !
족두리는 한복을 입고 머리에 네모난 장식품 ,,  
돌부처쎈돌 그렇게 작은 것에서 큰 것을 생각할 줄 아시는 분이니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실 수 있는 것이겠지요^^
못안 |  2009-12-12 오후 12:55:1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제 3의 경험 주시어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읽어습니다..^^&  
돌부처쎈돌 타산지석을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은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 합니다^^
AKARI |  2009-12-12 오후 2:21:0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하느님이 특별히 사랑하고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아들.
박민식님^^*  
돌부처쎈돌 그리 선하게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줄 아는 분이기에 하느님과 더불어 박민식이가 특별히 존중하고 사랑하는 분, AKARI님^^
gks5506 |  2009-12-15 오후 9:43:3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  
돌부처쎈돌 햐... 이 글을 쓴 지가 벌써 7년 전이라니...세월 참 빠릅니다^^












* 띄어쓰기 포함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000 / 400바이트)
대국실입장하기
다운로드 이용안내 고객센터
정회원가입
오로볼구매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폰서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