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우리 가게 앞에 있는 와코비아 라는 은행이 털렸다.

용감한 범인은 권총을 들고 단독 범행을 저질렀다.

은행원이 주는 돈뭉치를 한가방 챙겨들고 은행을 나섰는데 이 불쌍한 강도는 정말 가난한 친구였나보다.  은행을 털었지만 도주할 차도 없어 그냥 뛰어서 도망을 갔는데 그나마 돈가방을 들고 뛰던중 돈이 폭팔 해버렸다

은행원이 돈다발을 넣으면서 잉크와 연기를 뿜어내는 특수 폭탄을 함께 넣었는데 그것이 폭팔 한것이다.

혼비 백산한 이친구는 비닐백을 버리고 도망갔고

길거리엔 잉크로 얼룩진 백불짜리 달러들이 바람에 날라 다니고

또 길가던 사람들이 그돈을 주우려고 아우성이고...

몇일뒤 TV 에서 이 불쌍한 은행털이범이 잡혔다는 뉴스를 보았다.

잠깐 만져보긴 했어도, 그돈으로 국밥 한그릇 사먹어 보지 못한채 그만 영창 신세를 지고 말았다.

나도 얼마전 은행을 털었다.

그러나 난 멋지게 성공을 했다. (아, 약간의 상처를 입긴 했지만...  - -;;)

미국에서는 좀체로 보기 힘든 커다란 은행나무가 아이들 학교앞에  열댓그루나 있는데 이상하게도 은행열매는 구경을 할수가 없었다.

어려서 들은 기억에 은행나무는 암놈 숫놈이 있어서 암놈만 열매를 맺는다고 하는데 이놈들은 전부 숫놈들이란 말인가... (아니면 전부다 암놈?)

아 그런데 몇주전에 비 바람이 몰아치고 난 다음날 보니 한 은행 나무 아래 자그마한 살구 처럼 생긴 열매가 수천개나 떨어져 있었다. (숫놈들 사이에 암놈이 숨어 있긴 있었구나 !)

비닐봉지에 은행열매를  몇십개 주워 담아 집에 가지고 와서 살구빛 육질을 벗기고 보니 어려서 보았던 하얀 은행이 나왔다.

와 얼마나 신기하던지...

그런데 퀴퀴한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일주일을 닦지않은 발꼬랑 냄새와 썩은치즈 냄새의 절묘한 조화라고나할까.

하여튼 열개정도를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몇분간 구웠다. (혹시 터질까봐 밤 구울때 처럼 딱딱한 껍질 일부를 깨서 집어넣었다.) 

그리고 선명한 녹색의 속살을 꺼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입 베어 먹었다.

오, 예 !  바로 이맛.

쪽득 쫀득 하면서 향긋한 은행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미국에 와서는 한번도 먹어 보지 못했으니 몇십년만에 은행맛을 다시 본것이다.

저녁에 아내에게 주었더니 어린아이 처럼 좋아 한다. 
아내가 고등학교 졸업할때 까지 살았던 인천집 앞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가을이면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매년 한가마씩 거두어 겨울내 두고 먹었다고 한다.

어둑 어둑해 지는 저녁에 둘이서 다시 은행 나무로 가서 은행을 털었다.
사실 은행을 턴것은 아니고 이미 땅에 수북히 쌓인 은행을  두봉지 가득 주워 모았다.

은행에 대해 인터넷으로 조사를 해보니 외피열매를 벗길때 장갑을 끼라고 한다.
그리고 한번에 열개 이상은 먹지 말라고 한다.  은행에 독성이 있긴 있나보다.  
은행은 가래 해소에 좋고 술 해독에도 좋다고 한다.

열매에 독성이 있어서 옻 처럼 간지러울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이미 삼십개 정도를 맨손으로 깠지만  별 이상이 없어 장갑을 끼지않고 맨손으로 육질을 벗겨내었다.
 다행이 손에 옻은 오르지 않았지만  그 고약한 냄새가 손에 배어 손을 따스한 물에 불려 닦아내고 향수를 뿌리고서야 외출을 할수있었다.

아, 그리고보니 약간의 문제가 더 있긴 있었다.

은행을 다 까고나서  손을 대충 물에 닦은후 쉬하려고 거시기를 만진것이 탈이 나고 말았다. 
은행열매 만한  거시기 두알이 간지럽기 시작하더니 다음날 불이 나는듯 했다. 
손은 피부가 두꺼워 별탈이 없었는데 거시기 피부는 상당히 예민하여 걸리고 만것이다.

몇번씩 닦아내고 몇가지 피부 연고를 바르고 해도 가라앉지를 않았다. 
일주간 고생끝에 겨우 가라 앉기는 했으나 몇날밤을 잠도 설치고 고생을 했다.

역시 어떤 종류의 은행이든  은행털이는 그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가 보다.

그래도 창고에 한말 정도의 뽀얀 은행을 볼때 마다 마음이 뿌듯하다.

긴 겨울 내내  와인 과 함께 따스하고 쫄깃 쫄깃한 은행을 까 먹을 생각을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