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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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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裸道)ㅡ2.상흔(傷痕)<2>
2008-08-16 오후 12:16 조회 3728추천 15   프린트스크랩
나도(裸道)

2.상흔(傷痕)-<2>

니이다 요시꼬(新田愛子)와 처음 만난 것은 1993년도 봄입니다.일본 중부의 중심도시 나고야(名古屋)에서 가까운 T시에 소재하는 I대학에서였습니다.당시 저는 I대학의 랭귀지스쿨격인 유학생별과(留學生別科)에서 1년이 좀 넘게 일본어 등을 공부하고 추천 케이스로 일어일문학 전공의 학부에 진학했을 때입니다.비자 기간의 경신에 필요한 서류가 필요해서 유학생 및 국제교류 업무를 전담하던 국제교류부에 들렀습니다.어떤 아가씨가
안냥하세요.까꽁~!
하데요.처음 보는 얼굴이였습니다.

저는 별과에 입학했을 때 뿐만 아니라 그 이전부터 뻔질나게 드나들며 국제교류부 직원들을 무척 귀찮게 하였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하기는 부장 과장을 포함해도 열 명 남짓한 직원의 얼굴을 익히는데야 한두 번이면 족한 것이기는 합니다.하지만 제가 별과에 입학하는 과정에서부터 정말 많이 수고롭게 한 까닭으로 그곳의 직원들과는 그 무엇입니까? 애증(愛憎)이라고 하나요? 사랑스럽기도 하고 밉기도 한 뭐 그런 관계였습니다.
우선 무엇보다도 저는 일본인의 보증인이 없었습니다.일본 소재 대학의 대학원이나 학부,또는 랭귀지스쿨에 입학하는 데에는 2명의 일본인 보증인이 필요했는데 저는 일본에 아무런 연고도 없었고 또 무슨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도일(渡日)을 감행한 것도 아니었습니다.그저 단순히 좀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비행기를 탔고 무턱대고 I대학의 문을 두드렷습니다.1991년 10월의 일입니다.
그렇다고 일본어에 능통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우리의 <ㄱㄴㄷㄹㅁ...>에 해당하는 기본적인 철자 <아이우에오...>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였습니다.가까스로
안냥하세요.까꽁~!
하고 인사말이나 나눌 정도였지요.이래 놓으니 처음부터 정상적인 대화가 될리가 만무하지요.주로 서툴고 단편적인 한자로 필담을 나누었습니다.그냥 돌아 가라더군요.그러나 저는 열심히 외워 놓았던 단 한 문장의 말,그 말만을 되풀이 되풀이 반복하며 막무가내로 버텼습니다.
이 대학이 마음에 든다.입학하겠다.빵긋방긋~
매일 찾아 갔습니다.그리고 역시 앵무새처럼
이 대학이 마음에 든다.입학하겠다.싱글벙글~
그랬습니다.나 참,무슨 기생도 아니공~ㅋㅋㅋ~
처음에는 완강하게 안 된다던 직원들의 얼굴이 일주일 쯤 지나니 좀 부드러워지는가 싶더니 자기들끼리 무언가 수군덕거리고는 종이에다 이렇게 쓰더군요.
現在 學期中 來年春 再來(현재 학기중 래년춘 재래)
저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습니다.내년 봄까지 기다릴 심적인 여유가 당시에는 제게 없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결국 보증인은 국제교류부장님과 과장님이 되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전례가 없던 유학생별과에의 학기중 입학(청강생 자격이였지요,아마도..)이 허용되었고 또 아르바이트 등의 주선도 그들이 해주었습니다.

안냥하세요.까꽁~!
하던 요시꼬와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 하기에 앞서 그럼 1991년도 당시에 제가 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일본에 느닷없이 유학을 할 생각을 하였던지 잠깐 살펴 볼까요?

사실 제가 외형적으로 무슨 절박한 상황에 봉착하여 있었던 것은 아니였습니다.1981년에 공고를 졸업하고 보충역으로 방위 근무를 했던 14개월을 뺀 10여년을 작은 공장이나마 한 직장에서 근속하고 있었던 관계로 과장급 공장장직에 올라 빠듯하긴 하여도 생활이 그렇게 곤궁한 것은 아니였습니다.어찌 보면 어린 나이에 출세했다고도 볼 수 있었지요.주위에서 부러워하는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경우도 전혀 없지는 않았던 것이니 일개 생활인으로서는 완전히 실패한 삶의 여정도 아니었던 셈입니다.물론 눈을 위로 돌리면 한정도 없는 것이지만 그런 것에는 사실 저 자신의 관심이 별로였고 또 제가 당시의 생활에 충분히 성실하려고 노력을 했으며 그에 따르는 충족감도 상당하였습니다.
하지만 언제 어느 적부터인지 가슴 한편이 허전한 게 터엉 비어있는 듯한 느낌이 자주 들었습니다.비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가끔은 아리아리한 통증을 동반하기도 하였습니다.일에도 집중을 못하는 때가 있었습니다.자칫하면 사고를 일으킬 찰나에 소르라치게 놀라는 스스로를 자각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이성에 대한 본능적인 그리움 때문인가 하여 맞선도 보고 사귀어 보기도 하였습니다만 별무 신통이데요.이 당시에 사귀었던 한 여성분은 저의 뜨뜻 미지근한 반응에 실망하였는지 천주교의 수녀원에 들어간 분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술도 마셔보고 바둑에도 열중해보며 이러저러한 방면으로 가슴을 터엉 비어버리게 만드는 원흉을 찾던 와중에 이게 의외로 내면의 깊은 심연에서 울리는 함성소리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래서는 안돼~,사람이 젊었을 때 공부를 해놓아야지 젊디 젊은 놈이 이렇게 자족하는 삶을 영위해서는 안돼에~!
뭐 대충 이런 회의(悔疑)였습니다.

제게 이러한 공부에의 열망이 그 때까지 남아 있었던 것은 1981년 공고 졸업 당시만 하여도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타의 반 자의 반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마음속에 작은 응어리가 들어 앉았던 것이지요.더군다나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주로 대기업인 거래처 직원들이 하는 말을 깜빡깜빡 못알아 들을 때가,아니 못알아 먹는 때가 있었는데 그것이 알게 모르게 저의 자긍심에 깊은 상채기를 남기고는 하였었습니다.상황 상황에서는 못알아 들어도 애매모호하게 웃으면서 지나쳤지만 그것들이 하나씩 둘씩 겹쳐 쌓이면서 은근히 스스로의 존재감에 대한 불안,불신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였습니다.
이래서는 안돼~!

1991년도 여름에 결단을 내렸습니다.
기왕에 다시 공부하는 것이라면 정식으로 해 보자.나이도 그렇고 여건상 국내는 힘들다.외국이라면 나이에 크게 구속 받지도 않을 것이다.외국? 그러나 영어가 안되니 일본으로 가자.문법이 우선 비슷하다지 않은가?
마음의 방향성이 잡히자 아주 속전 속결로 일을 진행시켰습니다.주변을 일사천리로 정리를 하고 유학 루트도 알아 보았지만 이것은 직접 가서 부딪치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그 부딪침이 말하자면 위에서 아주 간략하게 기술한 내용입니다.

안냥하세요.까꽁~!
그럼 요시꼬와의 이야기를 해 볼까요? 역시 간단하게 하지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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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그시절 |  2008-08-16 오후 2:18:2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裸道가 자전적 넌픽션 인가요?

필마단기로 말도 안통하는 일본에 부딛친 동키호테에 추천 한표-

지나고 보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채색 되지요.


 
일곱길거리 꾸우벅~ㅠㅠ~그대그시절 어르신 때문에 재료가 소스가 이야기가 다 거덜나네유우~ㅠㅠ~자전적 픽션입니다.ㅠㅠ~꾸우벅~이네유우~ㅠㅠ~
당근돼지 |  2008-08-16 오후 2:43:5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말도 통하지 않는 일본땅에서 ....유학생별과에 학기중 입학을 허용받을수 있었다는 용기가 대단하시네요
요시꼬님 과의 후일담을 기대하면서...........  
팔공선달 여자가 있어야 역사가 짜임새가 있지요 암요 ^^=3=3=3
U리창엔B 요시꼬님 자랑하려구 먼길을 돌아서 왔는지두 몰러유~~~~~~~~
맹물국수 |  2008-08-16 오후 10:26:0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요시꼬..흠~  
선비만석 |  2008-08-17 오후 8:20:5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음......픽션이라...넌픽션이면 더 좋을라나? 아니지요 픽션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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