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피니쉬 라인 이라고 씌어진 플랑카드가 보인다.

앞서 뛰는 놈이 불과 서너걸음 앞인데, 손만 뻗으면 뒷덜미가 잡힐듯한데도 이상하게 기를써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녀석의 뒷굼치가 아른거린다.

정신은 몽롱하고 발바닥은 마치 바늘로 들쑤시는듯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이번에도 이등을 할순 없다고 이를 악물었다.

눈딱감고 젖먹던 힘을 내서 내달려보지만 마음따로, 다리따로, 결국, 그렇게 이등으로 골인지점을

통과하고서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  ...바로 이등만.

10km 일반부 대회에 걸린 상금 이백만원을 노리고 한달전부터 담배도 끊고 훈련을 해온것이 허사가

되어버렸다.

"젠장, 저눔은  틀림없이 선수 등록이 된놈일겨, 안그러고는 어떻게 삼십분 안짝으로 뛸수있냐 말여 "

이등만은 씩씩 거리며, 숨을 헐떡인다.

학창시절 중장거리 선수로도 잠시 활약했던 이등만은 학교에서의 최고 성적도 <준우승> 이었다.

상금을 못타게 된것이 아쉬운것이 아니다.

또다시 지긋지긋한 이등 징크스를 깨지 못한 것이 그저 못내 아쉬울뿐이었다.

이인자의 생활로 점철된 지난 세월, 돌이켜 생각하기 조차 싫은 기억이다.

학교에선 부반장을 도맡아 하고, 어릴적부터 프로기사의 부푼꿈에 죽어라 바둑수업에 매달렸으나,

연구생 2조생활을끝으로 나이제한에 걸려 군대에 입대해서는 중대장의 이른바 <딱갈이>로

복무를 마쳤으며 어렵게 취직한  조그만 회사에서 조차 이인자의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영업사원 하나 거느린 허울좋은 <영업부장>으로 생활한지 어언 십여년.

이등만은 또다시 이등을 못벗어난것이 너무도 못마땅해했다.

그가 유일하게 잘한다고 내세우는건 바둑인데, 실제로 그 실력은 가히 프로급이었다.

크고 작은 아마 대회에 출전도 많이 했으나 결승 문턱만 들어서면 덜컥수를 연발, 고향같은

준우승을 한것이 손가락으로 헤아릴수 없을 정도,

이쯤 되다보니, 다시는 바둑을 안둔다고 결심에 결심도 해보지만 바둑을 빼면 내세울거라곤 없는

이등만 이다보니, 오늘도 바둑사이트에 기웃거린다.

그러다 눈이 번쩍 띄는 공지.

<오로 최강전> 

<상금> - 무지 짭짤.

이등만은 지난날의 뼈아픈 과거를 털어내고 싶어서라도 기필고 한번은 우승을 해야한다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그 심정은 그야말로 신앙과도 같았고, 일생에 한번은 풀고자하는 숙명 그자체였다.

예선전에서 비교적 쉬운상대를 만나 승승장구 역시나 준결승까지는 별다른 위기없이 고비를 넘겼다.

오로사이트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 고수 <꺼먼별 바다>도 한수 삐끗해서 8강전에서 탈락하는 이변이

일어났다..덕분에 대진운도 기가 막히게 좋아졌다.

이제 결승만이 남아있을뿐이다.

이등만은 길게 숨을 내쉬면서 눈을 감는다.

이번에야 말로...

포석부분에서 상대가 정석을 비틀어 신수를 들고 나왔을때 이등만은 깊은 수읽기 끝에 응징을 하는데 성공,

때이르게 승부가 기울어지자 이등만은 내심 지긋지긋한 이등 징크스를 깰수있다고 확신이 들었으나,

왠지모를 불안감이 스멀스멀 드는것은 어인일인가...

아니나 다를까 ,돌다리도 두둘기면서 부자 몸조심에 또 조심,어려운 장면도 다 지나고 

자잘한 끝내기만 하면 되는 찰나,  컴이 먹통이 되어버렸다.

이등만은 혈압오르는걸 겨우 참아가며 인터넷 회사에 전화를 걸어 연유를 물었다.

계좌에 잔고가 부족해서 자동이체가 안된관계로 부득이 회선을 차단했다는 인터넷 회사의 답변을 듣고는

이등만은 또다시 몸서리 쳤다.

"우쒸, 던이 없으면 입금을 하라고 연락을 해야 할거아녀,,씨...

이등만은 속타는 가슴을 부여안고 근처 투다리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술이 들어가도 취하지가 않는다.  그럼에도 속은 무지 쓰려왔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집에서만큼은 최고의 가장이자 아빠가 되야지..하는 마음이들자,

잠안자고 기다릴 가족이 떠올랐다.

"그래 늦게 들어가니 뭐라도 좀 사들고 가야지"

주위를 둘러보다 조명이 화사한 선물가게 하나를 발견하고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찰나..

연이은 폭죽 소리에 깜작 놀래는 이등만.

"손님 축하드립니다^^  저희가게   <이주년 기념일>에 맞춰서 두번째 입장하신 고객께

 동남아 여행권을 드리는 행사를 열었는데 , 손님께서 당첨 되셨습니다^^*"

시계를 쳐다보니 12시를 갓 넘겼다.

순간, 이등만은 소릴 버럭 지른다.

"사장님 제 바로 앞에 아주머니 한분 들어오셨잔아요?"

"네, 손님..그분이 제일먼저 들어오셨고 다음이 손님이신데요..?'

"아니 근데 그 아주머니가 등에 아기 하나 업었잖아요..그럼 그 아이가 이등이지,

어찌 내가 이등이란 말입니까?"

"아니..그게..아기가 고객이 될순 없어서..^^;; "

"그런게 어딨어요, 아기도 사람인디..츠암나, 암튼 내는 필요 없으니 아기 엄마인 저분 드리소 마."

이등만은 물건도 사지 않고 그냥 나와 버렸다.

의아하게 쳐다보는 시선을 그냥 무시해 버리고...

다음날 이등만은 회사에 월차를 내고 법원으로 향했다.

손에는 <개명 신청서> 가 쥐어있었다.

이름 하여 < 이선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