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과 쌈밥집 | 나도 작가
Home > 커뮤니티 > 짜베
짜베 단편소설

작가의 말


 이 글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자와 협의하지 않은 무단전재는 금합니다.
삼겹살과 쌈밥집
2022-05-24 오전 9:12 조회 486추천 8   프린트스크랩

다음 주 화요일에 딸애가 약속이 있어서 나간다고 하였다. 

점심을 나와 아내만 먹어야한다고. 야호! 눈치 안보고 술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쌈밥집과 자장면 집을 저울질 하다가 쌈밥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결심을 했다. 

만약 그날 비가 오면 자장면 집으로 대체하기로.


그때 딸애가 뜬금없는 말을 내 질렀다.

 “새로 생긴 삼겹살집에서 점심을 잡수시지요. 맛이 있다면 저도 나중에 같이 가지요.”


우리가 산책하는 길옆에 족발집이 있었는데 그 집이 문을 닫고는 새로 삼겹살집이 생긴 것이다. 

우리는 한동안 족발 집을 애용했다. 

딸애가 술은 못 먹는데 이상하게도 술안주에 제격인 삼겹살이나 족발이나 순대 국을 좋아한다. 

아, 또 있지. 회. 

나는 술 없이는 그런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데 딸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잘 먹으면서 내가 술타령하는 것은 순전히 핑계에 불과할 뿐이라고 항변한다.


내가 족발을 좋아하는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젊었을 때 기천을 수련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버스를 타고, 또 한 번 갈아타고는 정릉 산자락에 있는 박대양 사부 댁을 찾았다. 

거기에서 운동을 하고는 직장에 가서 빵과 우유로 아침을 먹었다. 

사부님의 사정으로 운동을 중지하게 된 마지막 날 사부님과 변 사범과 나는 족발과 소주를 들고 바로 뒷산으로 올라갔다. 

마침 오월이었다. 

녹색의 나뭇잎들에 둘러싸여 앉아서 소주를 들이켜고 족발을 씹었다. 

사부님이 말씀하셨다. “족발에는 땅의 기운이 서려서 기를 양성하는데 아주 좋은 음식이라네.”


그 족발 집은 가끔씩 문을 닫았다. 

손님이 거의 없는 것을 본 우리는 영원히 문을 닫을까봐 조바심을 냈다. 

그리고 며칠 후에 다시 문을 연 것을 보고는 상당히 안심을 하고는 했다. 

딸애는 문을 열 때마다 부지런히 족발을 사 날랐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저녁 무렵에 나는 인터넷바둑을 시작했다. 

한 판을 졌다. 속이 좁은 내가 그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미 딸애는 저녁을 차리고 있었다. 

“대국을 시작합니다.” 라는 소리가 거실까지 울려 퍼졌다. 

딸애가 소리쳤다. “그거 시작하면 저녁은 없어요.” 

나는 무시하고는 다시 바둑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평소에 저녁을 차리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눈치가 빠른 나는 거실을 내다보았다. 

아, 식탁에는 상추와 족발이 올려져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재빨리 기권처리하고는 거실로 나갔다. 

다행히 딸의 분노지수가 임계점을 넘지는 않았나보았다. 

냉장고에는 딸애가 사다놓은 소주도 한 병이 있었다. 

만약 내가 눈치 없이 계속 바둑을 두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머릿속에서 진땀이 흐른다.


다시 들어온 제안에 머리를 굴렸다. 

쌈밥대신 삼겹살이라! 뭐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삼겹살도 나는 무지 좋아한다. 

삼겹살을 먹기 시작한 거는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였다. 

대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고기를 구워먹는 것은 생각을 못하였다. 

고기라면 명절 때나 그것도 국으로 멀겋게 끓여먹었을 정도였으니까. 

산 계곡에서 버너를 켜고 돌 위에 올려놓은 삼겹살에서 나던 고소하고도 맛있던 냄새!


그런데 또 다시 반전이 일어났다. 

쌈밥집에 가야만 한다고 하였다. 

아내와 딸이 산책을 하는 중에 쌈밥주인을 만났다는 것이었다. 

쌈밥주인이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하더라고.


결국 쌈밥집을 찾았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칠천 원 이었던 쌈밥은 바로 구천 원으로 올랐고 우리가 갔을 때에는 만원이 되어있었다. 

 가격이 올랐으니까 뭐 좋아진 것이 있겠지. 

그런데 반찬이 예전보다 오히려 부실했다. 

아내는 먹을 것이 없다고 투덜댔다. 

내가 보니 두부조림과 파슬리무침이 사라진 것이 눈에 띄었다. 

그냥 참고 먹었다. 마음에 안 들면 다음에 안 찾으면 그만이 아닌가? 

이 때  손님들이 들어 왔다. 

중년 아저씨가 머리가 하얀 노모와 딸을 데리고 식당에 들어섰다. 

말하는 품이 아마도 푸짐했던 옛 맛을 잊지 않아서였던 듯했다. 

그리고 그 아저씨가 밥을 먹던 도중에 한마디 했다. “어째 두부조림이 안보이네.”

내가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일어서서 식당아주머니에게 항의를 했다. 

“두부조림과 파슬리 무침이 없어졌어요. 고객들은 아주 예민하답니다.” 

식당아주머니가 아주 미안해하며 말했다. 

“아, 오늘만 깜빡 두부 부치는 것을 잊었습니다. 당장 부쳐서 대령해드리겠습니다.”


새로 부쳐온 두부조림을 의기양양하게 먹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머리가 번쩍하고는 입안이 씁쓸해졌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벌써 물가상승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버린 것은 아닌가?

┃꼬릿글 쓰기
⊙신인 |  2022-05-24 오후 4:13:1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즐거움 중에 식도락이 으뜸이지요.
군침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엽부 |  2022-05-24 오후 4:17:4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과거에 시장의 돼지족발은 발목 부분만 있어서 그것의 양도 적고 쫄깃해서 새우젓에 찍어 먹으면 배도 안 부르고 소주 안주로 딱이었는데..
요즘 족발은 허벅지 살코기가 주를 이루며, 무슨 한약 냄새같은 것이 나서 저는 요즘 돼지족발은 별로 안 즐깁니다.^^.

짜베님의 술 글은 읽는 내내 술 생각이 절로 나게 합니다.^^.
가족 모두 평안하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예뜨랑 |  2022-06-01 오후 9:21:0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너무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 띄어쓰기 포함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000 / 400바이트)
대국실입장하기
다운로드 이용안내 고객센터
정회원가입
오로볼구매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폰서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