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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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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여행 (최종)
2022-04-25 오전 11:01 조회 192추천 8   프린트스크랩

호텔에 들어와서 아내와 딸애는 호텔에 딸린 대중온천으로 목욕을 하러가고, 술을 마신 나는 침대에 누웠다.


아내와 딸이 시원한 표정을 하고 들어왔다. 

코로나가 무서워서 목욕탕에 못 갔었는데 이미 확진되었다가 해제되었기에 무서울 것이 없는 것이었다. 

때를 밀어도, 밀어도 계속 나와서 너무 미안하여 아주머니에게 오천 원씩을 더 주었다고 하였다. 

나더러 가보라고 하였다.

 나도 내려갔다.

 때 밀어주는 아저씨가 없어서 대충 샤워하고는 탕에 몇 번 들어갔다가 바로 나왔다.


저녁은 낙곱새라는 것을 먹었다. 

밥의 양이 너무 많아서 남기었는데도 배가 불렀다. 

TV에서는 러시아의 흑해함대 기함이 침몰되었다고 발표하고 있었다. 

흑해함대의 기함이라면 태평양 전쟁에서 야마토가 침몰한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일이 아닌가? 

이제 러시아는 큰일이 났다. 

알키비아데스에게 속아서 대규모 함대를 동원하여 시케리아 정벌에 나섰던 아테네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되리라.


딸애는 포켓몬을 잡는다고 여기저기를 헤매며 우리들을 끌고 다녔다. 

바람은 불고 날씨는 춥고, 몸을 한껏 웅크리고 다녔다. 

호텔에 왔더니 몸을 너무 웅크리고 다녀서 그런지 배가 아팠다. 

흑해함대 기함이 침몰한 것에 대하여 지나치게 곰곰이 생각한 것도 한 가지 원인인지도 몰랐다. 

밤새도록 잠을 못자고 운기조식에 힘썼다. 

몸이 아프니 만사가 귀찮았다. 

여행기를 쓸까 말까 고민하던 내 모습이 참으로 어리석어보였다.


다행히 아침에 운동을 가볍게 하고는 사우나에 들러서 때를 밀고 온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을 나서는 11시에는 몸이 말끔하게 나았다.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길을 나섰다. 

날씨가 화창하였다. 

해운대의 백사장에 밀려오는 파도가 제법 컸다. 

서핑을 하면 아주 재미있을 거라는 상상이 들었다.


해변 길을 걸으며 작년에 가로수 가지치기 하던 아저씨에게 물었던 것이 생각났다. 

나무가 처음 보는 것이고 특이하여 나무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던 것이다. 

내가 듣기에는 퉁명한 대답이 돌아왔었다. 

“먼나무요.” 

나는 아저씨가 짜증을 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일하기에 바쁜데 뭔 나무이름 타령이냐고.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아저씨는 정확하게 나무 이름을 말한 것이었다. 

나무 이름이 바로 ‘먼나무’였던 것이다.


동백섬에 다가갈수록 가로수에 동백나무가 많이 보였다. 

꽃들이 피고 지고 있었다. 

다리를 건넜다. 

이곳에도 고층아파트가 즐비하였다. 

점심으로 미역국 정찬을 먹기로 했다. 

딸애는 장어덮밥도 추천했지만 그것은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술 없이 먹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워서 미역국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선택은 탁월하였다. 

나는 되도록이면 밥을 적게 먹으려고 조금씩 젓가락으로 찍어먹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밥이 다 없어져버렸다. 

반찬이 좋아서 그런지 어느새 밥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 것이었다. 

밥을 다 먹었어도 속은 편했다.


시간이 넘쳐흘렀다. 

지하철을 타고 남천동에서 빙수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산역에 도착했을 때 시각은 1시 10 분이었다. 

예약한 기차의 출발시각은 3시 30분이었다. 

대합실에서 지루하게 기다렸다. 

딸애가 잠시 어딘가에 다녀온다 말하고는 사라졌다. 

포켓몬을 잡으려고 나가나보다고 생각했다.

 딸이 없는 것을 본 아내가 저쪽 편에 있는 도넛 가게를 가리키며 자기가 비상금이 있으니 사 먹겠다고 하였다. 

나는 눈을 부라리며 저지시켰다.

 잠시 후 아내는 딸애를 찾으러 나가겠다고 하였다. 

또 다시 내가 눈을 부라렸다. 

공연히 나갔다가 잃어버리면 누구를 고생시키려고.


얼마 후에 딸애가 돌아왔다. 

돈을 더 주고 열차표를 바꿔왔다고 하였다. 

2시 20분에 출발하는 거였다. 

그런데 정 방향은 1개 밖에 없고 나머지 두 개는 역 방향이었다. 

가족석이라고 했다. 

내가 앉은 맞은편에는 중년 아저씨가 앉아서 열심히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창가의 내 자리가 최악의 자리였다. 

도무지 발을 뻗을 수가 없는 자리였다. 

탁자 밑을 내려다보니 중년 사내의 다리가 헤라클레스의 기둥처럼 받치고 있어서 도저히 빈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동 대구 역까지 이를 악물고 참았다. 

동 대구 역을 지나서 아내가 볼일을 보러 나가고 딸애가 부축을 하러 나갔다.

 나는 얼른 딸애의 자리로 옮겨 앉았다. 

다리를 뻗으니 살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빈자리가 보였다. 

나는 딸애가 오는 것을 기다려 그 빈자리로 옮겼다.


대전역까지 편하게 왔다. 

대전역부터는 빈자리가 없었지만 50분만 참으면 되었다.


서울역에서 내려 지하철 1호선으로 갈아탔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지하철 1호선에 들어서면 서울이 지방보다도 더욱 낙후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최고급 KTX에서 무료 전철로 바로 갈아타서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집에다 짐들을 부리고는 저녁을 먹기 위하여 동네의 식당을 찾았다. 

동태 탕 집을 선택했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꽉 차있고 무척 시끄러웠다. 

종업원이 손님들에게 조용히 해 줄 것을 요구했다. 

나는 시끄러워도 좋았다. 

무사히 여행을 마쳤기 때문이었다. 

“아, 우리 동네도 역시 사람이 사는 동네이구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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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길 |  2022-04-25 오후 12:16:07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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