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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베 단편소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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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속 같은 세상 1
2022-01-08 오후 6:59 조회 578추천 6   프린트스크랩

무장한 경찰들을 향해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었다. 

시위대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그 플래카드의 글귀를 재현이는 읽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군부는 물러가라!]일 것이었다. 

미얀마의 언어로 쓰인 플래카드이었다. 

시위대가 경찰의 저지선에 접근하자 경찰들이 최루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사거리 전광판에서 방영되는 미얀마의 시위장면을 묵묵히 바라보며 재현이는 길을 건넜다. 

학교로 향한 인도에 접어들며 얼마 전에 감비아가 미얀마를 상대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 사실을 상기했다. 

이슬람교도인 로힝야족에게 미얀마가 행한 비인도적인 처사에 관한 이슬람 국가로서의 제소였다. 

그 재판에 관한 논문을 재현이는 읽어보았다. 

혹시 시험에 출제될지 몰라서 요약까지 해두었다. 

오늘은 기말고사 국제법 시험이 있는 날이다.


인도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 

다만 학교 쪽으로 향한 젊은이들의 발걸음은 다소 빠른 편이었다. 

 주변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묵묵히 조건반사적이며 규칙적인 자기들만의 발걸음. 

오늘 기말고사가 치러지는 탓일 것이다. 

학생들 모두의 머릿속에는 시험에 대한 생각만이 꽉 들어차있을 것이다.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다. 

그러고 보니 재현이는 오늘 아침을 걸렀다. 

압박감인지 불안감인지 영 식욕이 당기지 않았었다. 

고소한 냄새를 맡고 보니 이제야 배가 고픈 것이 느껴졌다. 

“모든 것은 시험이 끝난 후에”


길을 걷는 동안 머릿속에서 계속 여러 가지 용어들이 맴돌았다. 

조약과 관습, 국제법과 국내법, 통상에 관련된 환경조약, 국적, 범죄인 인도 등


교문이 보였다. 

돌을 깎아서 묵직하게 쌓아놓은 조형물이 위압감을 주었다. 

00 법과대학.


법! 교문보다도 더욱 위압적인 단어이다. 

인문이나 철학이나 경제나 과학같이 두 음절 이상이 아니고 단 하나의 음절. 그것도 더 이상의 타협이 없도록 발음이 끝나는 순간 입술이 꽉 닫혀버리는, 얼마나 고고하고 멋진 말인가? 

재현이는 그 멋에 매료되어서 법대에 진학한 셈이었다. 

약자를 위한다느니 사회정의를 구현한다느니 하는 것은 사실상 이차적인 이유였다. 

어느 책에서 본 한 구절이 생각났다. 

‘법은 궁극의 과학이다.’


교문을 지나자 넓은 운동장이 나타났다. 

신입생 때 운동장에서 축구경기를 하던 것이 생각났다. 

그 때에는 아무런 걱정 없이 오로지 젊음을 즐기기만 하였다. 

그 시절이 무척 그리웠다.


시험을 치를 학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재현이는 자기가 제일 먼저 고사장에 들어서는 게 아닌지 여겼다. 

그러나 고사장에는 이미 학생 한명이 앉아있었다. 

덕성이였다. 책상에 책을 펴놓고 보고 있었다. 

재현이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멀리 떨어진 뒷좌석에 가서 조용히 앉았다. 

“안녕, 좋은 아침이야.” 

책을 보고 있던 덕성이가 인사를 했다. 

“그래, 좋은 아침이야. 일찍 왔구나.” 재현이가 맞장구를 쳤다.


덕성이의 할아버지는 대법관으로 재직 중이고 아버지도 현직 판사 신분이었다. 

대대로 이어오는 법조계 집안이었다. 

덕성이는 수석으로 입학을 했고 흐트러짐 없이 공부에만 매진하는 타입이었다.


책을 읽고 있는 도중에 주섬주섬 책을 가방에 넣는 소리가 들렸다. 

“집중이 잘 안되는데 도서관에 가서 책을 좀 볼까해.” 

덕성이가 가방을 싸면서 말했다. 

재현이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시험이 시작되려면 아직도 두 시간이나 남아있었다. 

사실 고사장에 앉아있으니까 압박감이 밀려와서 그런지 잘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럼 나도 도서관에 가볼까?” 재현이도 가방을 챙겨서 고사장을 빠져나왔다.


도서관은 학과 건물 뒤쪽에 있다. 

걸어서 5분정도밖에 안 걸리는 거리이다. 

 천천히 도서관에 이르는 층계를 올라갔다. 

도서관 앞에 심어져있는 은행나무 잎들이 거의 다 떨어져가고 있었다. 

“아, 벌써 겨울인가?” 

재현이는 그동안 계절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서관 안은 어두침침하였다. 

그러나 공부에 집중하기에는 오히려 어두운 것이 더 좋았다. 

아무런 잡념 없이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사방이 너무도 고요하였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바깥에서 어느 정도는 소음이 들려와야 정상이 아닌가? 

덕성이가 앞에 있는 것을 의식하며 시간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 없이 책만 들여다보던 재현이는 고개를 들어 벽면의 시계를 쳐다보았다. 

아뿔싸! 시간은 시험시작 10분후를 가리키고 있었다. 

가슴이 섬뜩해졌다.


둘은 미친 듯이 고사장으로 뛰어 내려갔다. 

 고사장에서는 이미 시험지가 배부되어 학생들이 한창 문제를 풀고 있었다. 

둘은 손이 발이 되도록 시험 감독들에게 애원했지만 감독들은 이를 차갑게 거부했다.


짜증이 밀려왔다. 

재현이는 밤늦도록 컴퓨터와 씨름하고 있었다. 

“어째서 안 될까?”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되풀이해서 여러 번 코드를 살펴보아도 어디 잘 못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프로그램은 제대로 실행이 되지 않는 것이다. 

졸리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고 그냥 포기하고 자고 싶었다. 

그러나 이대로는 절대로 잠을 잘 수가 없을 것이 뻔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 번 찬찬히 코드를 살펴보았다. 

태그가 하나 보였다. 

앞부분이었다. 

앞부분이 있으면 거기에 맞춰서 뒷부분도 반드시 있어야했다. 

그런데 뒷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태그의 뒷부분을 빼먹은 것이다. 

태그사이가 길어서 그만 깜박했던 모양이었다. 

자판을 두들겨서 태그의 뒷부분을 쳐서 넣었다. 

프로그램이 제대로 실행되었다.


장래 취직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해서 코딩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의욕적인 마음과는 달리 처음부터 배움은 삐걱거렸다.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분명히 지시대로 했는데도 설치가 잘 안 되는 것이었다. 

지우고 재 설치하기를 몇 번인가 반복했다. 

몰이해와 착각의 결과였다. 

프로그램이 설치된 뒤에는 강사의 친절한 설명덕분에 한동안 진도를 잘 따라갔다. 

그런데 오늘같이 꽉 막힐 때가 자주 있다. 

나중에 해결하고 보면 대부분 사소한 문제들이다. 

태그를 빼먹거나, 띄어쓰기가 잘못되었거나, 콜론과 세미콜론을 구별하지 않았다거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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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길 |  2022-01-09 오후 1:04:2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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