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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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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가는 길 1
2021-10-04 오후 1:56 조회 304추천 7   프린트스크랩

아내의 65세 생일이 다가왔다.
그러면서 뒤따라 지하철 무임승차권이 나왔다.
이 승차권을 가지면 수도권에서는 어디든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것이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하지 않았는가?
 어릴 적 우리 면에서는 면장을 선거로 뽑았었다.
 내 생각에는 모든 일을 정의롭게 처리한다고 여기든 어머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다.
“고무신 한 짝이라도 주는 놈을 뽑아야지.”
이왕 선거 얘기가 나왔으니 대학교 때 총 학생회장 선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야겠다. 한창 선거전이 치열할 때 우리 고등학교 동창들은 저녁에 중국집에 모였다.
그리고 oo 선거 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여기 무슨 고등학교 동문들이 모여 있다네.”
 oo 선거 사무소의 담당자가 득달같이 달려와서는 저녁 값을 계산하고 갔다.
 내일은 xx선거 사무실에 전화를 걸 것이다.


공짜와는 관계가 없지만 발동이 걸렸으니 선거 이야기를 하나만 더 추가.
학과 대표를 선출할 때였다.
두 명이서 각축을 벌였다.
한 명은 나와 동향이고, 또 다른 한 명은 타 지역 출신이었다.
동향 친구들은 모두 나에게 같은 지역 출신자를 뽑을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존경하든 교수 한분이 늘 말씀을 하셨다.
“좁은 땅에서 무슨 지역타령을 하는 것인가?
나는 철석같이 그 말씀을 새겨듣고 있었다.
오로지 인물만을 보고 선거에 임하겠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었다.
결과는 한 표 차이로 타 지역 후보가 학과 대표로 선출되었다.


저녁때 동향 친구들이 술에 취한 채 나의 하숙집으로 찾아왔다.
분위기가 살벌하였다.
한 눈에 봐도 나를 혼내주려고 온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한창 혈기가 왕성한 내가 그런 것을 겁낼 일이 있겠는가?
길거리에서 조폭에게도 맞장 뜰 각오로 대들던 내가 아닌가?
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유도 검은 띠를 매 봤고, 대학교에 들어와서도 국술원 합기도장에 다니던 나였으니.
그리고 그 때 한창 인기를 끌던 이소룡의 영화를 모두 보아왔던 터라 오히려 싸움이 반가운 나였다.
그러나 착한 우리의 친구들은 말로만 떠들었지 차마 손을 댈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우리들은 모두 술집에 가서 서로의 아쉬움을 달랬다.


6호선 지하철 종점인 신내역에서 춘천 행 전철로 갈아탔다.
상봉에서 타면 확실히 앉아갈 수는 있지만 평일인 만큼 자리걱정을 하는 대신 시간을 절약하려고 하였다.
평일인데도 전철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아내와 나와 딸 셋은 간신히 여기저기 빈자리를 찾아서 흩어져 앉았다.


차창 밖으로 불암산의 뾰족한 봉우리가 보였다.
불암산은 아름다우면서도 삼엄하다.
 산은 별로 높지 않지만 깎아지른 절벽이 사뭇 위협적이다.
70년대 중반 상계동에서 근무했을 때 직장동료가 썼던 시의 앞부분이 기억났다.
‘쫒긴 곰처럼 상계동에 밀려와서 맨 처음 대한 건 말 없는 산수화 한 폭.’


기차가 별내역을 지났다.
 전에 직장 동료들과 함께 배를 먹으러 태릉을 지나 야트막한 야산에 위치한 과수원에 간적이 있었다.
 수 십 개의 배를 실컷 먹겠다고 비장한 결심을 했지만 단 한 개를 다 먹기도 전에 그만 배는 꽉 차버렸다.
포만감에 젖어서 바라본 별내면의 풍경이 일품이었다.
누렇게 익은 벼들이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그 별내면에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숲을 이루고 있다.


별내역 다음은 퇴계원 역이다.
서울에 올라오기 전에 서울지역에 대해서 가장 궁금했던 곳이 퇴계원과 의정부이었다.
서울에서 북쪽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두 도시, 퇴계원과 의정부는 과연 어떤 모습의 도시일까?


중학교 때 대전의 신흥동 지역에서 하숙을 하였다.
여름이 되면 동네아이들과 어울려 냇가로 수영을 하러갔다.
옥천으로 향하는 철길 둑을 지나서 판암동으로, 판암동을 지나서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 들어섰다.
대전에서 금산으로 통하는 길이었다.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우중충한 철물점 건물들을 지나 한 참을 간 후에 신작로에서 벗어나 논둑길로 들어선다.
향긋한 벼 냄새를 맡으며 논둑길을 다 지나면 냇물에 보를 막아 제법 깊은 곳이 우리들을 반겨주었다.
그 때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그랬는지 중학생과 초등학생들인 우리들은 모두 홀딱 벗고는 냇물에 뛰어들었다.


신나게 놀 때는 좋았지만 돌아올 때는 그야말로 지옥의 행군이었다.
지친 몸과 배고픔으로 우리들은 한 발짝을 떼기도 어려웠었다.
그 때 멱 감으면서 바라보던 남쪽의 산 넘어 금산은 과연 어떤 곳일까 하던 궁금증이 나중에 퇴계원과 의정부에 바로 대비가 되었을 것이다.


금곡역을 지날 때마다 늘 아내가 하는 말이 있다.
어릴 때 자기 집에서 일하던 언니가 금곡으로 시집을 갔는데 그 언니가 무척 알뜰하고 야무져서 시집가서도 잘 살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아내는 어린 시절을 부유하게 지냈다.
 도자기 사업을 하던 장인어른 덕분에 공장에서 일하는 일꾼들 외에도 집에서만 가사 일을 돌보는 도우미가 두 세 명 정도나 되었다고 하였다.
장인어른은 그 때 지프차를 타고 다니셨다고 하였다.
황해도에서 살다가 6.25전에 단신으로 월남한 장인어른은 자수성가한 표본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장인어른이 사업을 확장하다가 그만 사기에 걸려들어 장인어른은 충격으로 반신불수가 되시고 아내네 가족은 졸지에 극빈층이 되었다.
결국 여기저기로 떠돌다가 흘러들어온 곳이 상계동 철거민 촌이었다.


아내와 나는 상계동의 한 다방에서 선을 보았다.
큰 어항에 금붕어 여러 마리가 유유히 헤엄쳐 다니는 그런 다방이었다.
요즘 말로 바로 ‘옛날식 다방’ 인 셈이다.
엄청 서먹했었는데 아내가 자기네는 예전에 도자기 공장을 했었다고 운을 떼자마자 내가 마침 그 때 읽었던 중편소설 ‘사금파리의 무덤’에 대해서 신나게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 되었다.


일곱 식구가 단칸방에서 생활하고 있었지만 나는 처갓집에서 한 번도 누추하다는 느낌을 갖기 않았다.
오히려 처갓집에 갈 때마다 따스하고, 온화하고, 아늑한 기운이 나를 감쌌다.


눈 덮인 천마산은 달력에서 보이든 스위스의 융프라우 봉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 천마산을 보았을 때는 스위스에 가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스위스의 융프라우 봉에도 올라가 보았다.
 충청도의 시골 놈이 아주 크게 성공한 셈이다.
아닌가? 내가 성공한 것이 아니고 그만큼 국가가 발전한 탓인가?


대성리는 MT의 천국이라고 불린다.
대성리 역을 지날 때마다 나는 의아해했었다.
오른쪽으로 북한강이 보이지만 강변에 별다른 시설도 없고, 사람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장에서 대성리로 연수를 한 번 다녀온 후에야 진실을 알게 되었다.
 대성리 촌 활기의 주 무대는 북한강 변이 아니고, 역에서 내린 다음 큰 길을 건너서 왼쪽의 조그마한 언덕길을 넘은 다음부터였다.
언덕길을 넘어서자마자 별천지가 펼쳐진다.
구운천의 맑은 물이 잔잔히 흐르고, 그 냇가를 따라서 카페와 식당과 연수원들이 줄줄이 끝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있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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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  2021-10-04 오후 8:27:3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구수하고도 재미나게 풀어내시는글!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짜베 주책 없는 하소연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킹포석짱 |  2021-10-05 오전 10:41:2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옛 생각이~~~그리고~그 유치 찬란함을 시처럼 엮는 글 솜씨~부럽습니다^^,감사합니다,  
자포카 |  2021-10-05 오후 8:41:3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사람냄새 풀풀나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차창밖 풍경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네요~~  
삼나무길 |  2021-10-07 오전 4:11:4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반가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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