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만의 대화[3] | 나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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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만의 대화[3]
2021-08-28 오전 6:29 조회 306추천 5   프린트스크랩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 들으며 아들은 말했습니다.

어렸을 적,

왜 아빠는 엄마와 우리에게는 관심이 없고

삼촌들의 일에, 고모님들의 일에만 저리도 관심이 크실까,

치매를 앓으시는 할아버지 때문에 늘 걱정 가득한 아빠에게서

더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노라 말했습니다.

 

길게 변명을, 아니 해명을 했습니다.

11남매의 장남의 위치가 어떤 것인가를 어떻게 말해주어도

아들놈을 이해시킬 수는 없겠지만 아빠의 진심을 담아 말해주었습니다.

 

아들놈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초등학생 4학년, 너의 형이 6학년이던 추석에 형제들이 모였을 때

너희의 사촌동생들이 들고 온, 당시 아빠로서는 도저히 사 줄 수 없었던,

당시 아빠 월급의 절반 넘게 주어야 살 수 있던 미국에서 직수입한 합체로봇을 바라보는

부러움 가득한 너희의 눈빛을 보며 아빠는 많이 마음이 아팠더란다.

 

너희들에게는 손도 대지 못하게 하고

지들이 가지고 온 합체로봇을 가지고 노는 사촌동생들을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던 너희들의 모습이

아빠를 시업에 뛰어들게 한 가장 큰 이유였단다.

 

너희들에게 갖고 싶은 장난감도 모두 사주고

아빠가 직장에서 회식하며 들렀던 맛있고 비싼 식당에

너희들과 엄마를 꼭 데려가고 싶어서 사업을 시작했더란다.

 

지금의 컴퓨터로는 5분이면 끝낼 수 있는 작업을

밤 새워 천공해 가며 배운 아빠의 컴퓨터 실력으로는

빠르게 변하는 컴퓨터 환경을 따라가기 어려웠고

새로운 컴퓨터에 능숙한 후배들에게 밀리는 느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정년이 보장되고

노후가 든든한 연금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는데

너희들에게 더 많은 것을 해 주고 싶어 아빠는 명예퇴직을 택했고

아빠가 공직을 떠나 사업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되는 날

아빠가 공직에 있을 때 회식을 하며 

언젠가는 너희들을 꼭 데려오리라 다짐했던 그곳에서 데려가

맛있게 먹으며 행복해 하는 너희들을 보며

얼마나 아빠와 엄마가 행복했는지 지금 너는 다 이해하지 못 할 거야,

라 말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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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  2021-08-28 오후 12:45:58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아비로써, 가장으로써 스스로 등에 얹었던 짐들!
집안의 맏이로써 짊어진 고뇌들!
저희 세대의 공통분모처럼 느껴집니다.
어쩌면 후대들에게는 없을지도 모를것들,,,,,,  
영포인트 십 수년전에는 자녀가 나이드신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비율이 50% 남짓이었는데
지난 해에는 10%로 줄었다는 여론조사결과를 보았습니다.
요즘 아이들, 이라 나무라지 말고 세상의 흐름이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것도
이 시대를 사는, 나이들어가는 우리의 지혜여야 할 듯 합니다.
HaceK |  2021-08-29 오후 3:01:51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자식농사가 가장 어렵다고도 합니다.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마음은 다 같다고 봅니다.
더욱 힘내세요. ^^ .  
영포인트 피를 뽑고 비료를 주는 것은 농부의 일이지만
비를 내리고 바람을 부르고 날 맑게 하는 것은 농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듯
자녀를 키우는 것도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부분과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고 장독대에 정안수 떠놓고 치성을 드리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그냥 도닥여 주고 격려해 주고.....
할 수 있는만큼만 합니다.

다 큰 아들들 보며 이제는 오히려
제가 저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는 말아야지 다짐도 합니다.

건강하게,
죽는 그날까지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본을 보이면서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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