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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C신체검사에서 떨어졌습니다.
2021-08-18 오전 8:09 조회 409추천 7   프린트스크랩


오래 전, ROTC신체검사에서 떨어졌습니다.

테니스로 단련되어 나름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신체검사에서 떨어졌습니다.

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님이 득달같이 올라오셨습니다.

대학병원의 방사선과로 나를 데려가셨습니다.

엑스레이를 찍어 본 교수님는 사진을 보여주며 폐에 결절이 있다 했습니다.

결절의 상태로 보아 오래 전 폐결핵을 앓고 나은 상처로 보인다 했습니다.

어렸을 적 몸이 약해 

어머님이 개구리도 구워주시고 

지렁이 태워 가루 만들어 먹이기도 하시고 

심하게 홍역은 앓았지만 폐결핵을 앓았던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나도 모르게 폐결핵에 걸렸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치유가 된 것이고

그런 경우가 결코 드물지 않다는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서야 아버님은 이해를 하셨고

나도 그 때서야 어렸던 어느 무렵 내가 폐결핵을 앓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의 오십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새롭게 일을 시작하며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백신을 맞고 건강검진을 하고

얼굴에 드문드문 박힌 검버섯도 빼고 이덕화가 쓰는 가발도 몇 개 새로 맞추었습니다.

며칠 후, 건강 검진의 결과를 보러갔더니

폐에 결절이 보인다며 가슴 사진을 다시 찍어보아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에게 오십년 전에 들었던 그 이야기를 다시 들었습니다.

나는 잊고 살아왔는데

내 몸은 나도 모르게 앓았고 나도 모르게 치유되었던 폐결핵의 흔적을

그 오랜 시간 지우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로의 광장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로의 광장에 내가 올렸던 개의 사진은 지워지지 않고

인터넷의 공간을 떠돌고 있습니다.

무지한 아이들이 뱉어낸 무지막한 욕설들조차 지워지지 않고

인터넷의 저 어둡고 음습한 공간을 떠돌다 가끔씩 눈에 뜨이곤 합니다.

 

우리 살아온 흔적은 이렇듯 지워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나의 얼굴에 깊어진 주름살 하나하나 마다에 내 살아온 시간의 흔적이 남고

손가락의 마디마디에 세월의 흔적이 엉겨 붙고

마우스 붙들고 지내온 수십 년의 시간 탓에

지문조차 거의 지워져 버린 오른 손 엄지손가락에도 내 살아온 삶의 흔적이 남고

악필인 나를 닮은 두 아들의 글체에도

이제 막 사십 개월을 넘어선 손자의 말투와 몸짓에도

젊었던, 어렸던 내 모습이 남아있습니다.

 

천만 년 전 공룡의 발자국이 지금도 남아 있듯이

오늘 우리 사는 모습은 어떻게든 기록이 됩니다.

지워도 지워지지 않고 지우려 해도 흔적조차 없이 지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나왔던 시간들이 이렇게 남아 오늘을 사는 나에게 손가락질 하는데

오늘도 내게 와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됨을 공부하고 돌아가는 우리 꼬맹이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를 생각하면 어깨가 무겁습니다.

아장거리는 이쁜 아이들 데려와 맡기는 젊은 엄마들에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를 생각하면 두렵기 조차합니다.

 

저들에게,

저들 모두에게

좋았던 원장님, 좋았던 선생님으로 기억되기를 소망하며

또 하루를 시작합니다.



┃꼬릿글 쓰기
머루 |  2021-08-18 오후 5:42:21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불합격이 오히려 더 좋은결과를 가져다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건강하세요. ^ ^ .  
영포인트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꽤 고집 있게 살아왔음에도 뜻과 다른 길들을 걸어야 했던 지난 날입니다.
그 길로 저를 이끈 것이 운명인지 하나님이신지 아니면 사주팔자였는지 모르겠
습니다.
제 삶의 주인은 제가 되어야 하는데
많은 부분에서 타협하고 양보하며 살아왔습니다.

이제라도 스스로 즐거울 수 있는 일
이제라도 스스로 보람 있다 여길 수 있는 일
그런 일들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건강해야겠지요.

돌아보면 정말 별 거 아닌 삶이지만
마지막의 순간에
[그래 나 잘 살았어.] 생각하며 미소 지으며 가겠습니다.

우리 그렇게 살아보십시다.
⊙신인 |  2021-08-18 오후 9:03:29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제 지난 삶에 대해 되돌아보며 글을 읽었습니다.
참으로 제 삶은 부끄럽습니다.
당당하지도 자랑스럽지도 못한, 후회스럽지만 참회하지도 않았던 많은 과오들!
이제라도 참회하고자 하나 연락할 길도 없는 대상들,,,,,,
하루를 살면 그만큼 업보를 더 쌓는 삶인듯 합니다.  
영포인트 돌이켜보면
학창시절의 친구들에게 저는 좋은 친구는 아니었던 듯 합니다. 굳이 점수로 바
꾼다면 D학점.
이십년의 공직생활을 돌아보면 동료들에게 저는 그저 그런 동료였습니다.
역시 점수로 바꾸어 본다면 C학점 정도?

부모님에게, 그리고 집사람에게도 좋은 자식, 착한 남편이지 못했습니다.
두 아들에게도 후하게 점수 준다 해도 겨우 C학점 정도의 아빠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좀 더 잘 살고 싶습니다.
제게 와서 공부하는 꼬맹이들에게, 그리고 두 손자에게는 적어도 B학점을 맞는
선생님, 원장님, 그리고 할아버지이고 싶습니다.

그래서 [상놈은 나이가 벼슬] 이라는 말이 있지 싶다는 생각을 하며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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