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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망備忘의 기록記錄 - 14
2021-05-24 오전 10:39 조회 520추천 9   프린트스크랩

비망備忘의 기록記錄 - 14



용두암의 바다는 깊습니다.

제주도의 바다는 대부분 깊습니다.

물론 완만하고 모래 있어 해수욕장이 만들어지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제주도 바다는 몇 미터만 헤엄쳐 나가도 수심이 금방 10미터가 넘어갈 정도로 깊습니다.

용두암의 바다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용두암의 바다는 수영을 배우기에는 대단히 위험한 바다입니다.

 

그 바다에서 수영을 배웠습니다.

낮에도 배웠지만 주로 밤에 배웠습니다.

자정이 넘어 부모님과 형제들이 잠들고 공부가 끝나면 바다로 나가곤 했습니다.

물론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가로등 어스름한 불 빛 아래서

이 바위 위에 서서 저 만큼에 떨어져 있는 바위까지의 거리를 눈대중으로 재보고

내가 저기까지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때로는 십 미터 때로는 이십 미터 쯤 떨어진 바위를 보며 저기까지 갈 수 있을까를 가늠합니다.

 

갈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바다로 뛰어듭니다.

가면 살고 가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의 헤엄이었고 단 한 번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수영을 배웠습니다. 목숨을 걸고.

 

생존수영을 배우기에는 용두암만한 곳 없습니다.

더구나 수영이 끝나고 나면 용천수에 몸 헹굴 수 있는 용두암은 최적의 생존수영배움터였습니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깊은 밤 바다에서 수영을 배우듯이 살아왔습니다.

수학과 통계학을 공부하고 공무원의 길로 뛰어든 것도

정년이 보장된 자리에서 뛰쳐나와 연금을 포기하고

퇴직금 일시불로 받아 내 일을 시작한 것도

어느 것 하나 확실한 내일이 보장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나 살아있음은

바다에도 지지 않았고

사업에서도 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기지는 못하였지만 적어도 지지는 않았기에 오늘 나 살아있습니다.

 

이십 년을 공부하고

이십 년을 공무원으로 살고

이십 년을 내 사업하며 살아왔습니다.

이제 나는 다시 새로운 이십 년을 준비합니다.

 

손자를 위해 시작하는 영재교육 사업은 내 인생의 삼모작입니다.

목표는 이십 년입니다. 두 손자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건강이 허락할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이십 년은 더 건강할 수 있으리라 믿고 시작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교사진을 꾸려야 하며

우리만의 교재를 만들어야 하고

영재교육에 맞는 설비를 해야 합니다.

해야 할 일은 태산이고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할 수 있다, 응원해 주는 집사람은 나의 가장 든든한 후원군입니다.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나는 수영을 못합니다.

그러나 어지간한 물에서 라면 죽지 않고 살아 나올 자신 있습니다.

생존 수영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목숨 걸고 싸우는데 질리는 없다는 각오가 나에겐 있습니다.

 

이제 다시 바다를 건너는 도전을 시작합니다.

어쩌면 태평양 만큼이나 넓을 수도 있고

이 도전에서 나는 평생 처음 실패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심장 저 깊은 곳에서 뜨겁게 피가 솟습니다.

나는 할 수 있습니다!!!



┃꼬릿글 쓰기
Acod8938 |  2021-05-24 오후 3:01:21  [동감2]  이 의견에 한마디
크게 응원합니다. You can do it !!  
영포인트 Yes... Yes, I can !!
킹포석짱 |  2021-05-24 오후 5:47:21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피가 너무 뜨거우면 터질 수도 있으니 조심 하시고....., 질 줄도 아는 자비심이 있으시길~ 건승!^^  
영포인트 손자들 보고 있으면 가끔 신기합니다.
이놈들이 어디서 온 거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배를 쭉 내밀고 쉬~ 하는 모습에서 70년 전의 제 모습이 보이고
나의 등과 손자의 등 같은 위치에 검은 점이 있다며 집사람은 신기해 합니다.

그 손자들을 위한 싸움이고
그래서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을 저는 시작했습니다.

영재교육을 준비를 해가며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준비의 과정도 문제지만
적어도 일 년은 버텨내야할 운영자금도 있어야 하고
교육과정도 누구나 욕심낼 만큼 튼실해야 합니다.

9월 개원을 목표로 하는데
같이 교재를 개발하는 직원들의 인건비가 벌써부터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이겨낼 것이고
두 손자에게 자랑스러운 할아버지가 될 것입니다.
반드시!!!
⊙신인 |  2021-05-24 오후 8:00:54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9월,,,,그리 넉넉치 않은 시간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선배님이 하시는 일이니 가능하겠지요^^
건강 잘 챙기시고요,,,, 멋진 결과 기원드립니다!  
영포인트 이제야 비로소 중고등학교 때부터 꿈꾸던 그 길을 찾은 느낌입니다.
영재를 발굴하여 키워내는 일, 큰 의미가 있을 것 같고
더구나 그 일이 나의 손자들을 위한 일이어서 더욱 힘이 납니다.

열심히, 혼신의 힘을 다해볼 생각입니다.
이제 저는 저의 길을 갑니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이 오로에서의 마지막 글이 되겠네요.

언젠가 내 다니는 책방의 맨 앞 진열대에서
신인님의 [달의 금]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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