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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망備忘의 기록記錄 - 5
2021-05-10 오후 12:52 조회 696추천 7   프린트스크랩

비망備忘의 기록 記錄 - 5

 


제주시에서 서귀포까지의 거리는 해변을 따라 동쪽으로 돌아가면 90km,

서쪽으로 돌아가도 90km입니다.

이렇게 일주도로를 따라 돌아가는 버스를 타면

제주시에서 서귀포까지는 편도 세 시간의 먼 거리였습니다.

물론 한라산을 넘어가는 횡단 도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라산을 넘어가는 길의 도로는 포장되지 않아 차량의 통행이 거의 불가능한,

조선시대부터 선조들이 걷던 산길이었고 

그 길을 넓히고 포장도로로 바꾼 것은 5.16. 군사정권이었습니다.


전국에서 강제모집 된 부랑아들이 투입된 도로의 확장 및 포장공사는

대부분 삽과 곡괭이로 이루어졌고 그 공사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공사가 끝난 후 

한라산을 횡단하는 도로의 이름은 5.16.도로라 명명되었고 

도로의 건설을 위해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 위령비가 세워졌습니다.


그 분들의 희생으로 

제주시에서 서귀포까지 오가는 산길이 열리고 

그 길을 미니버스가 운행을 시작하며

서귀포에 가는 시간은 일주도로를 돌아서 가는 것에 비해 절반이하로 시간이 단축되었습니다.


산천단에서 흘러내려

동문시장을 지나 제주시를 가로지르며 서부두의 옆으로 흐르는 산지천은

장마 때나 태풍이 몰아온 폭우가 쏟아져야 비로소 물 흐르는 산지천은

평소에는 군데군데 생활하수가 고여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그런 마른 하천, 건천입니다.

사철 내내 거의 물 흐르지 않으면서도 산지천이 그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일 년에 몇 번은 훌륭하게 하천의 역할을 해주는 때문이었고

산지천이 없다면 제주시가지는 큰 비가 올 때마다 흐르는 물 감당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 초반까지의 산지천은 그냥 자연의 모습 그래도 건천이었습니다.

그 산지천이 변화를 시작한 것은 

5.16. 군사정부가 들어서며 전국적으로 시행된 하천 정비사업이었습니다.

5.16. 군사정부는 국민들에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래서

한라산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포장하고 제주시에서는 산지천 정비사업을 하였습니다.

 

산지천의 정비사업은 간단했습니다.

물 흐른 흔적 남은 마른 하천의 바닥에 그냥 콘크리트 부어 넣고

그 위를 긴 막대기로 대충 저어 골라주면 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덜 마른 콘크리트는 어린 우리에겐 좋은 놀이터였습니다.

덜 마른 콘크리트위로 뛰어노는 우리의 발자국은 그대로 남았고 

그 남겨진 발자국에 신이 나서 더 뛰어놀았습니다.

 

우리의 시멘트 놀이는 또 있었습니다.

새로 짓는 집들의 시멘트벽과 돌 틈새에 덧칠되는 시멘트와 

문설주의 시멘트는 우리 낙서의 장이 되어주었습니다.

 

지난해, 제주도를 여행하신 분 누군가가 찍어 올려주신 사진을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육십 년도 더 전에

영 포인트가 여덟 살 즈음에 친구의 집 담벼락에 낙서한 그림이 그대로 남아 있음에 놀랐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산지천 진흙에 덮혀

여덟 살 즈음에 친구들과 고무신 신고 마르지 않은 콘크리트에 찍었던 발자국도

천만 년 전 공룡의 발자국처럼 남아있을는지 모른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발자국을 남깁니다.

[오로의 광장]은 사라졌지만

[오로의 광장]에 우리 찍었던 발자국은 어디엔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당신의 그 개 짖는 소리도 그대로 남아있고

도저히 입에 담을 수조차 없었던 그 상스러운 욕조차 그대로 남아있음을 명심하세요.

 

, 함부로 하지 마세요.

, 함부로 쓰지 마세요.

당신이 어제 했던 말이, 당신이 앞에 썼던 글이 

오늘 당신이 하는 말과 쓰는 글을 꾸짖을 수 있음을 늘 명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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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판돈이다 |  2021-05-10 오후 4:27:51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유소년기의 아련한 기억들....아픈 상처 덜한 유소년기는 축복입니다.
중산간도로 사진인가봐여.....아주 옛날 그리고 조금 옛날 마누라와 걸었던 사려닝가 숲길
이 떠오르는 군요.
그때만해도 뻑 하면 까악 끼안던 시절이었는데...........지금은 서로 소가 지붕위 닭쳐다보
듯입니더.....
 
영포인트 성판악 지나 서귀포 쪽으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길 양옆의 나무가 서로 손을 잡듯이 터널을 만들어주는 그 길입니다.
젊었을 적 육지의 친구들에게 자랑하던 길이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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