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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베 단편소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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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00 선발대회
2021-03-29 오전 10:56 조회 413추천 6   프린트스크랩

외할머니께서 학교로 나를 찾아오셨다.
거의 모든 선생님이 나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별명이 허당인 영어선생님이 나를 기억하셨다.
그 선생님의 안내로 외할머니는 나를 찾았다.
나중에 허당 선생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아, 그 얼굴이 까맣고 조그만 학생? 내가 알고 있었지.”
그 이후로 나는 강의 실력여하를 떠나서 허당 선생님을 존경하게 되었다.


외할머니는 나에게 자기 동생 집에서 입주 가정교사로 거주할 것을 권유하셨다.
고 3이 시작된 때였다.
내가 소설 ‘병사의 죽음’에 조파르씨로 등장시킨 배경이 된 집이었다.
그 집 딸에 ‘000’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00초등학교, 00여중, 00여고에 다녔다. 
내가 유성 외갓집에 살 때 방학 때면 동생과 함께 놀러왔었다.
역시 소설 ‘병사의 죽음’ 에 나오는 줄리안의 실제 모델인 셈이다.
나는 그녀를 즐겁게 하기 위하여 뒷동산의 나무 위에서 온갖 묘기를 보이며 애를 썼다.
나뭇가지에서 거꾸로 매달려 내려오는 나를 보면서 “어머, 어머” 하고 놀랐다.
나는 그 표정 하나 하나에 감격을 하면서 무한히 행복해 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는 서로 서로 어울렸으나 6학년이 되고 나서부터는 서먹서먹해진 관계로 서로 못 본 체 했다.
그녀는 고 2때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사귀던 남학생과의 관계를 집에서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골에서 그녀의 소식을 들은 날 나는 하루 종일 멍하니 먼 산만 쳐다보면서 정신을 놓았던 기억이 난다.


그녀의 동생인 중1학생을 가르쳤다.
가르친다기보다는 그냥 같이 놀아주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다.
솔직히 나는 남을 가르친다는 것에 원천적인 능력부족을 느낀다.
무언가를 강제로 시키는 것이 싫다.
그저 내 능력에 맞춰서 같이 공부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니 남을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었지만 아직까지도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훌륭한 인재라서 주변의 사람들이 본받고자 한다면 그것이 최선의 가르침일 것이다.
그런데 한번이라도 내가 훌륭한 인재가 된 적이 있었는가?
나는 훌륭한 과학자가 되어 접시비행기를 발명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실패한 인생인 셈이다.


그녀의 3층 방에도 가 보았다.
부모님들은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었는지 가구를 치우지 않고 있었다.
그 방에서 반짝 반짝 손때가 묻어 빛나는 앉은뱅이 책상이 나중에 대학교 때 나의 방에 놓여있게 되었다.


고3초기에는 온몸이 나른하였다.
오른 손에 잡은 펜도 손에 힘이 없어서인지 스르르 빠져나갈 정도였다.
 친구들끼리 우리는 머리보다도 손에 힘이 없어서 공부를 못할 지경이라고 말을 주고받았다.
무언가 체력을 길러야함을 느꼈다.

고2때까지 시골에서 통학하던 나는 거의 영양실조 상태였다. 그러나 고3이 되어 부잣집에 입주하고부터는 영양상태가 좋아지고 있었다.

그 때 체육선생님이 000 선생님 이셨다. 미스터 00대 출신이라고 하셨다.
우람한 근육에 수업도 재미있었다.
그냥 공을 주고 너희들끼리 놀아라가 아니고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동작을 가르쳐주었다.
오죽하면 나같이 키가 작은 아이도 배구의 스파이크를 한번 해볼 만한 동작이라고 계속 시도를 해보았을까?


운동거리를 찾다가 결국 4층 맨 끝에 있는 바디빌딩 실을 찾게 되었다.
그 전에는 시골에서 운동을 한답시고 막대기 양 끝에 돌을 매달아서 역기를 들기는 했었다.
그래도 한 번 나온 똥배는 들어가지가 않았다.


역도 실에는 벤치프레스 몇 개와 덤벨, 아령, 그리고 하체 운동을 하는 가벼운 역기가 있었다.
 매일 방과 후에 역도 실에 들렀다.
 ‘땡그랑’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역기의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얼마나 정겨운 소리인가?


우리를 고무시킨 일도 있었다.
나중에 유명해진 000 선배가 학교를 방문한 일이었다.
자기가 학창시절에 맨 앞에 앉았던 이야기와 학교에서의 여러 가지 일화, 군고구마를 감 쌓던 종이에 새겨진 영어 글을 사전을 찾아가면서 읽었는데 그것이 00대 시험문제에 그대로 나왔었다는 믿거나 말거나하는 이야기 등등.
그 분은 바디빌딩으로 인생을 개척할 것이라고 포부를 토로하였었다.


고 3이었지만 나와 000은 신참이었고, 000가 우리를 리드하였다.
그동안 역도 실을 주름잡았던 고 참들도 있겠으나 고3의 부담 때문 인지 별로 눈에 안 띠었다.
어떻게 보면 역도에서는 선배인 2학년 후배들과 1학년 후배들하고 적당히 서먹서먹하게 지냈다.(그 때는 일 년 선배한테도 깍듯이 인사를 하던 시대가 아닌가?)


그 때가 가을 이었던 걸로 기억 한다
미스터 00 선발대회가 있었다.
내가 출전한다고 하니까 담임이셨던 00 선생님이 내 가슴을 만져보면서 “야, 이놈 알통 봐라.” 하시면서 흔쾌히 허락하셨다.
어디 극장인지 가서 무대에 섰다.
그 때 무대 뒤를 처음 보았다.
초라한 무대 뒤와 화려한 무대 앞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기름을 바르고(올리브기름이 좋다는데 우리는 싸구려 기름을 발랐다.) 무대 앞에서 갖가지 폼을 잡았다.
광배 근, 승모 근, 대흉 근을 선보이면서.
아이구 창피해라. 제대로 된 몸도 아니면서 무슨 용기로 무대에 섰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000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신신 당부하셨다.
“너희들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몸이 좋으니까 절대로 시비에 휩쓸리면 안 된다. 일찍들 집에 들어가거라.”


고2때까지 들어가지 않았던 나의 똥배는 고3이후로 영원히 자취를 감추었다.
확실히 바디빌딩의 효과라고 생각한다.
대학교에 들어간 다음에는 나는 바디빌딩을 그만두었다.
너무 몸매를 의식하니까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비록 그 때 그만두었지만 어쨌든 바디빌딩은 지금까지 나의 건강에 많은 보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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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판돈이다 |  2021-04-02 오전 8:21:5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짜베님의 전성기...다신 돌아오지 않을 아득한.....건강하세여  
짜베 고 2 때까지 비리 비리 하던 제가 부잣집에서 매일 소고기 곰국을 먹으면서 건강해졌지요. 소 판돈 님이 파신 소고기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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