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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베 단편소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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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연인
2021-01-22 오후 9:13 조회 355추천 7   프린트스크랩

잊을 수 없는 연인


아침 신문에서 오늘의 운세가 ‘욕심 부리지 않고 노력하면 성공’ 이라고 나왔다.
 어차피 기대하지 않은 하루였다.
일주일에 하루 먹는 소주는 어제 이미 마셔버린 상태였다.
창가에 빗방울이 맺혀있었다.
밤새도록 비가 오고 아직도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날씨라도 화창하면 무언가 마음이라도 설레겠지만 오늘은 뭐 그저 그런 하루이겠지.


컴퓨터를 켜고 부팅이 되는 동안 책을 보았다.
책상 위에는 빨간 테두리에 가운데에는 검은 삽화가 들어있는 두 권의 책이 있다.
 ‘해저 2만 리’.
 시작 부분에 노틸러스호의 항로가 그려져 있다.
태평양에서 출발하여 인도양을 거쳐 수에즈운하를 넘고, 남극점까지 갔다가 대서양으로 올라가 노르웨이 북단으로 향하고 있다.
그것은 넨터컷에서 출발하여 대서양에서 인도양으로, 다시 태평양으로 향하는 모비딕의 피쿼드호의 항로와 방향만 반대이지 아주 비슷하였다.
책의 시작부분에 항로가 그려져 있다는 것 까지도.
해저 2만 리가 모비딕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다.


아마도 초등학교 4학년 때 ‘바다 및 2만 리’를 보았으니까 무려 59년 후에 다시 보는 셈이다.
그 때에는 한 권짜리였지만 지금은 두 권짜리인 것이 다른 점이다.
 ‘돈키호테’ 도 그렇고 ‘아라비안나이트’도 그랬다.
문고판이 아닌 원본 번역판을 보는 기분이라니.
책은 더 자세하고 실감날 테지만 어릴 때의 그 한없는 꿈을 어찌 따라갈 것인가?


컴퓨터를 켜면 보통은 바둑을 한 판 두어야하는데 이상하게 바둑 둘 마음이 나지 않았다.
나는 어제 5단으로 승단한 것이다.
한 판 두자마자 다시 4단으로 떨어질 것이 확실하고, 또 그러면 기를 쓰고 이기려고 하다가 계속 연패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게임 바둑은 9단으로 승단한 이후에는 아직도 몇 달 동안 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망설이고 있는데 딸애가 은행에 한 시까지 가야한다고 말했다.
정기예금을 연장해야한다고 하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컴퓨터를 껐다.


아내와 함께 셋이서 집을 나섰다.
아내는 어제 나와 함께 잤다.
딸애가 무슨 조건을 달면서 어제는 자기와 함께 엄마가 자야한다고 우겨댔었다.
 밤에 몰래 집을 나가려고 하는 아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딸애는 엄마와 함께 자면 푸근하게 잠이 잘 온다고 하였다.
 나는 어제 호젓하니 혼자 잘 줄 알았다.
그런데 아내가 딸의 방에서 도망쳐왔다.
조건이고 뭐고 편하게 자는 것이 최고라고 하면서, 의젓한 낭군이 옆에 있는 것이 그렇게도 좋은가?
둘이 자는 것도 좋지만 단점은 아내의 콧바람이다.
마주 보고 자면 아내의 콧바람이 보통이 아니다.
이불을 젖혀서 막아보지만 역부족이다. 결국에는 내가 돌아누워야만 한다.


은행 일을 마치고 한마디 툭 던져보았다.
 “엄마한테 뭐 맛있는 거 사 줘야하지 않겠니?” 아내가 반색을 하였다.
딸애의 반응이 긍정적이었다. “닭갈비 먹으러 가볼까”


“야호, 이런 행운이 있을 줄이야. 욕심은 안 부렸지만 노력도 한 것이 없는데.”
 나는 뛸 듯이 기뻤다. 닭갈비집에 한 번 간적이 있다. 그 집에는 지평막걸리가 있었다.


신 났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점잖게 걸었다.
혹시 부정이 타서 딸애의 마음이 도중에 바뀌면 안 되므로.


장위동 쪽으로 걸어가면서 오른쪽을 보니 숲속에 아파트들이 있고 그 위에 산등성이가 보였다.
경치가 좋았다.
 딸애가 말했다. “저 집들은 KIST에 속해 있는 거야.”
 KIST 소리를 들으니 예전에 내가 쓰려고 하던 글이 생각났다.
제목으로 벌교까지만 쓰고 중지한 글이었다.
 내가 쓰려고 했던 내용은 결국 우리 동네의 자랑이었다.
제목을 ‘벌교에서 힘자랑’이라고 쓸려고 했다.
벌교에서 힘자랑 말고 여수에서 돈 자랑 말라 로 시작해서 우리 동네 자랑을 하려고 하였었다.
그 당시에 우리 동네의 어떤 식당에 들어갔을 때였다.
우리가 주문을 하고 나서 식당에 외국인 둘이 들어왔다.
남자 한명과 여자 한 명이었다.
둘은 서툰 우리말로 음식을 주문하였다.
인도 사람들 같았다.
지적인 인상이 둘의 얼굴에 배어있었다.
 아마도 연구하러 KIST에 온 과학자들이 분명하였다.
저들이 찬드라세카르만큼 유명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나는 공연히 기분이 으쓱하였다.
 “우리 동네가 이런 곳이야. 이곳에서 뭐 아는 체 하지 말라고.”


닭갈비를 먹는 동안 내내 젊은이들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냥 음식만 먹는 것하고 음악을 들으면서 음식을 먹는 것은 사뭇 다르다.
요즈음에는 ‘싱 어게인’을 보아서 그런지 음악에 좀 더 관심이 갔다.
물론 막걸 리가 곁들이니 금상첨화라고나 할까.


갔던 길을 되돌아서 집으로 왔다.
날이 풀려서 길거리에 있던 얼음은 대개가 다 녹은 상태였다.
길가의 풀과 나무들이 축축하게 물기를 머금었다.
집으로 오는 동안 내내 내 머릿속에서는 어떤 노래 소리가 계속 맴돌았다.
 ‘잊으려 애를 써도 발버둥 쳐도 잊을 수 없는 연인, 내 마음의 연인.’
이미자 씨의 ‘잊을 수 없는 연인’ 이었다.
노래방에서 부르던 나의 18번이다.

언제나 친구들 하고 모여서 음식도 먹고 노래도 불러볼 터인가?

┃꼬릿글 쓰기
킹포석짱 |  2021-01-23 오전 12:21:0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  
不倒翁 |  2021-01-23 오전 9:27:1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엄지척!!^^  
一圓 |  2021-01-25 오전 9:14:5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제 아내의 콧바람도 만만치 않습니다.
올리시는 글을 보며 잔잔하게 펼치시는 진솔함에
무릎 치는 일이 많았습니다.
사는 곳은 다르지만 중랑천 근처에 늙은이들 일상은
다 비슷한 가 봅니다.
감사하게 잘 읽고 갑니다.  
영포인트 |  2021-01-25 오후 12:19:3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We All Lie]의 [55호]를 응원했습니다.
[29호]의 절규가 너무 마음에 다가 왔습니다.
[30호]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느꼈습니다.

[29호]와 [30호]는 올어게인으로 탑텐에 올랐는데
[55호]는 남은 한자리를 놓고 오늘 경연을 하네요.
[We All Lie]
또 듣고 싶은데 어찌 될런지......
벌써 오후 10시반의 싱어게인을 기다립니다.  
짜베 저녁은 컵 누들로 간단하게 때우고, 10시 30분에 치킨이 배달되어 옵니다. 싱어게인 보면서 한잔 해야겠지요.
30호, 대단합니다. 섬세한 정서에 말도 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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