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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베 단편소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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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
2020-07-11 오전 10:08 조회 941추천 5   프린트스크랩


희생양


마지막 남은 재난지원금을 털어서 빙수를 사먹자고 딸애가 제안했다.
나와 아내는 즉시 수락했다.
먹을 수 있을 때 우선 먹고 보자는 것이 나와 아내의 신조이다.
공연히 아낀답시고 쟁여두었다가 엉뚱한 데에 돈을 날리는 수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틀정도 내리던 장맛비가 오전부터 개어서 오후에는 햇살이 비친 하루였다.
저녁을 먹고는 빙수가게로 향했다.


길을 걷는데 아내가 말했다.
“어? 비 한 방울이 떨어졌어.”
그러고 보니 나도 한 방울 맞은 것 같았다.
 “뭐, 몇 방울 떨어지다가 말겠지. 시원하군.”
정말로 비는 몇 방울 떨어지다가 금방 그쳤다.


가게에서 빙수를 시켰다.
멜론빙수였다.
전에는 주로 콩고물이 올려져있는 빙수를 사 먹었었는데 약간 색다른 메뉴였다.
네모진 멜론 조각이 빙수를 감싸고 있었다.
멜론 조각들을 보고 있자니 자카르타 생각이 났다.
자카르타에는 멜론상하이라는 빙수가 있다.
멜론을 두 조각 낸 다음 속을 파내고, 거기에 빙수를 넣은 것이다.
그냥 유리그릇에 빙수를 넣은 좀 더 가격이 싼 것은 에스상하이라고 부른다.
멜론상하이는 빙수 맞 보다도 멜론을 파먹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보기보다 맞은 그저 그렇다. 비주얼을 보고 상상했던 그 맛이 아니다.

나에게 상상했던 것 보다 맛이 덜한 것으로는 우선 야자를 꼽을 수 있다.
중학교 때 PT 109 라는 영화를 단체로 관람한 적이 있었다.
존 F 케네디가 젊었을 때 정장으로 근무한 남태평양에서 활약한 어뢰정에 관한 영화였다.
그 때 섬에 고립된 군인들이 따 먹든 야자가 무척 맛있어 보였다.
 “시원하고 달고 상큼하려나? 나도 언젠가는 저 야자를 맛볼 수 있으려나?”
그 소원을 30년 후에 자카르타에서 풀었다.
길거리 어디에서나 야자를 팔았다.
야자에 구멍을 내고 빨대를 꽂아준다.
“뭐야, 이거.”
그냥 밋밋하니 달지 않은 옥수수 대 씹는 맛이었다.
그나마 얼음과 설탕을 넣어주니까 괜찮지 그것마저 없다면 정말로 별로인 맛이다.
또 하나 실망한 것은 오렌지이다.
어릴 때, 동네에서 아버지가 미군부대에 다니던 친구가 길에서 오렌지를 까고 있었다.
외할아버지와 함께 길을 가던 내가 그 냄새를 맡았다.
냄새로서만 보면 환상의 맛이었다.
얼마나 맛이 있으면 저런 냄새가 날까?
“외할아버지는 저거 먹어보셨어요?”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한번 먹어봤다고 말씀하셨다.
혹시나 그 친구가 한 조각 줄까하여 길에서 기다렸지만 그 친구는 한 조각도 주지 않고 오렌지를 다 먹어버렸다.
황홀한 냄새만 풍기면서.
그 오렌지와 비슷한 맛의 귤을 처음 맞본 것은 대학교 4학년 때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와서였다.
귤 한 박스 사온 것을 방안에 풀었다.
가슴을 두근거리며 하나를 깠다.
냄새가 어릴 때 친구가 먹던 오렌지와 비슷했다.
입안에 넣어봤지만 별게 아니었다.
달고 시금털털하고. 그렇지만 그 자리에서 귤 한 박스를 다 까먹었다.
감자 맛 보다는 확실히 좋았다.
고등학교 때 중국에 관한 어떤 소설을 읽었는데 감자가 아주 시원하고 달았다고 나온 부분을 읽었다.
무식한 나는 날 감자를 깎아서 먹어보면서 “이 맛일까 아니면 저 맛일까?” 하고 감자의 달고 시원한 것을 느껴보려고 애썼다.
그 소설에 나온 감자가 바로 귤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빙수를 반쯤 먹었을 무렵 밖을 내다보던 딸애가 소리쳤다.
 “밖에 비가 오네?”
아내가 내다 보더니 “어, 정말이네? 비가 많이 오는구나.”
가로등 불빛에 비친 빗줄기가 제법 굵었다.
오전에 개었으므로 또다시 비가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우산을 가지고 나왔을 리가 없다.
이제는 집에 어떻게 갈 것인지가 문제가 되었다.
 딸애가 제안을 했다.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셋 중에서 희생양을 찾기로. 그가 비를 맞고 집에 가서 우산을 가져오는 것이다.
내가 불쑥 나섰다. “내가 가지.”


어릴 때 동네에서 ‘돼지창자’ 놀이를 많이 하고 놀았다.
공터에다 돼지창자처럼 꼬불꼬불하게 금을 그어놓고 공격 팀과 수비 팀으로 나누어서 게임을 하는 것이었다.
 돼지창자의 끄트머리에는 돌 하나를 가져다 놓았다.
공격 팀이 이 돌을 탈취하면 게임이 끝나는 것이었다.
꼬불꼬불한 길의 내부나 외부에서는 상대방을 넘어뜨리면 상대방이 아웃된다.
 내부에서 외부로, 또는 외부에서 내부로 상대방을 밀어내도 상대방은 아웃이 된다.
서로 밀쳐내고 넘어뜨리는 경기이기 때문에 제법 터프한 게임이었다.
이 게임이 시작되면 초기에는 “와아”하고 소리를 질러대면서 양 팀원들이 서로들 활발하게 움직이게 된다.
그 와중에 몇몇은 일찍이 아웃이 된다.
활발하던 움직임은 일종의 급소인 병목구간에서 멈춰지게 된다.
수비 팀과 공격 팀이 서로 먼저 움직이지 못하고 대치한 상태가 계속되게 된다.
아무래도 지형 상 먼저 공격하는 쪽이 불리하기 때문이다.
이 대치상태를 깨트리는 것이 주로 나의 몫이었다.
그냥 눈 딱 감고 상대방 진영으로 돌진하는 것이다.
어차피 내가 죽어도 우리 팀의 작전에 기여한바가 되는 것이고, 혹시 운이 좋아 살아남으면 그야말로 순식간에 우리 팀의 영웅이 된다는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각 팀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대장급의 친구들은 절대로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허접한 삼류 전사이기 때문에 홀가분하게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딸애가 준 장바구니를 머리에 쓰고 집으로 뛰었다.
한 참 뛰니 숨이 찾다.
뛰는 것을 멈추었다.
전에 한번 멋모르고 뛰었다가 ‘테니스 락’ 이라고 종아리가 붓는 병에 걸려 이주일쯤 고생한 생각이 났다.
그것보다도 더 겁나는 것은 공연히 뛰다가 갑자기 쓰러지는 비참함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나이가 나이니 만치.


나이의 문제를 실감한 것은 언젠가 인터넷 바둑을 둘 때였다.
 전날 계속 져서 오기가 나 있었기에 날이 밝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았었다.
바둑이 치열하게 전개되다가 상대방의 소탐대실에 힘입어 내가 유리하게 되었다.
 불리를 의식한 상대방이 무리하게 침입해왔다.
수읽기를 세심하게 하며 전심전력을 기울여 상대방의 돌을 잡았다.
이 때 진이 상당히 빠진 모양이었다.
상대방이 갑자기 묘한 곳에 돌을 놓았다.
나중에 복기해서 알게 된 것이지만 그 곳은 이미 나에게 잡힌 곳이었다.
그런데 나는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이때까지 바둑이 어떻게 두어졌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른바 불랙아웃 상태에 빠진 것이었다.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이대로 내가 쓰러지는 것인가?
 바둑을 그만 두어야했지만 다 이긴 바둑이라 포기하면 그 아쉬움에 대한 상처가 더욱 쓰라릴 것 같았다.
포기하지 않고 최대한 기력을 아끼면서 한 수씩 두어나갔다.
다행히 패가 났는데 상대방이 작은 패 감을 써서 내가 이길 수 있었다.
상대방이 그 패를 쓰지 않고 자체 패 감을 썼으면 내가 지는 바둑이었다.
그날부터 이틀 동안은 바둑을 쉬었다.


집에 도착하니 머리가 함빡 젖어있었다.
몇 올 되지 않는 초라한 머리카락이 머리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 거울에 비쳐보였다.
머리를 수건으로 털어낸 다음 우산 두 개를 챙겨들고 빙수가게로 향했다.
가게 밖으로 아내와 딸이 나와 있었다.
빗줄기는 이미 잦아들은 상태였다.
 “그냥 조금만 더 앉아있었으면 됐을 텐데 공연히 고생시켰네.”
 아내가 미안해하며 말했다.


┃꼬릿글 쓰기
그리움 |  2020-07-11 오후 3:10:0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ㅎㅎㅎㅎ 재밋게 잘 읽어보앗읍니다. 항상 건강 유념하시고 자주 올려주시길 바랍니다^^


 
팔공선달 |  2020-07-12 오전 8:09:3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래도 가족으로부터 신뢰를 얻었네요^^ 머리카락 보험에 드세요. 후다닥=3=3=3  
가내평안 |  2020-07-16 오후 6:33:5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짜베님글 늘 감동으로 읽습니다.
가내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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