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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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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냄새
2020-04-07 오후 12:31 조회 572추천 8   프린트스크랩

바람의 냄새


아침 신문을 읽고 있었다.
신문을 읽으면서 아침을 먹는다.
물을 끓여 가루 커피를 타고, 빵을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갑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환기를 시켜야지.”
거실 앞창과 뒤창을 모두 열었다.
이젠 완연한 봄으로 들어섰는지 창을 열어도 춥지가 않았다.
한 참 신문을 보고 있는데 앞창에서 바람이 불어들었다.
순간적으로 냄새가 난 느낌이었다.
밟아보지 못한 먼 이국땅 초원의 냄새인가?
냄새를 느낀 순간은 0.1초도 안된 찰나였다.
실제 냄새가 난 것인지 안 난 것인지도 불분명하였다.
냄새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 일어서서 창밖도 내다보고 서성거려도 보았으니 냄새의 조짐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읽고 있던 신문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그것도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환해졌다.
 TV에서 자주 본 ‘세계테마기행’의 장면이 내 의식의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가 불어온 바람 에 의하여 머리에 촉발된 건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 냄새의 기억은 신이 나에게 준 선물임이 분명하였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일상이다.
친구들을 만날 수도 없고 여행을 다닐 수도 없다.
그저 무료한 하루가 또 지나갈 뿐이었다.
신문보고, 컴퓨터보고, 인터넷바둑 두고, 책 읽고, 딸애 투덜거리는 소리 듣고.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들이 보면 호강에 겨워 헛소리하는 줄 알겠다)


그저께 일이 생각났다.
인터넷 바둑을 두고 있는데 산책을 나갔던 마누라와 딸애가 들어왔다.
대뜸 딸애의 고성이 나의 고막을 때렸다.
쇠기둥을 만지지 말라는 딸애의 충고를 치매기가 있는 마누라가 기어코 어긴 모양이었다.
다시는 엄마와 산책을 나가지 않겠다며 딸애가 악을 써댔다.
고함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나의 부아가 들끓어 올랐다.
몇 마디 쏘아댔다.
언쟁이 오가며 바둑은 계속 나에게 불리해져갔다.
결국 불계로 패하고 말았다.
몇 번 더 두었으나 두는 족족 모두 져버리고 말았다.
도무지 수읽기가 되지 않는 탓이었다.


바둑을 끝내고 안방에 들어가 마누라 옆에 누웠다.
분이 복받쳤다.
침대를 손으로 치며 마누라한테 소리 질렀다.
“제발 좀 잘 하라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집안의 모든 유리가구들을 박살내고픈 무서운 생각까지도 들었다.
나도 모르게 투덜댔다.
“에이, 코로나에 걸려 죽어버려야지.”


마누라는 나를 호구로 여긴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때도 나와 단 둘이만 있으면 맛있는 반찬은 모두 마누라 차지가 된다.
내 바지락 칼국수 안에든 바지락도 모두 건져다 먹는다.
둘만 있을 때는 내가 그냥 두는 편이다.
그런데 딸애가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집에서 밥을 먹을 때 딸애는 맛있는 반찬은 모두 분배를 해 준다.
나는 내 몫을 내 밥그릇 안에 보관한다.
그것을 마누라가 딸애 몰래 훔쳐 먹다가 들킬 때가 있다.
딸애의 불벼락이 떨어진다.
딸애는 관용이 없다.
불법적인 일을 보고 참지를 못한다.
잘 못한 일은 어디까지나 잘 못한 것이다.
그렇게 에누리가 없으니 회사도 못 나가고 결혼도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누라는 나를 호구로 보지만 딸애한테는 꼼짝을 못한다.
딸애는 그것을 은근히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딸애가 최신의 교육이론을 접한다면 태도가 달라지겠지만 어느 세월에 그것을 기대할 것인가?


좋은 점도 있다.
마누라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를 닦지 않고도 늘 이를 닦았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래서 늘 딸애가 강제로 이를 닦게 한다.
마누라는 금세 이를 닦고 나온다.
그냥 대충 닦고 나오는 것이다.
딸애가 검사를 하고는 직접 데리고 들어가서 다시 닦아준다.
그대로 두면 치과에 가서 엄청난 치료비를 물어야하기 때문이다.


어제는 딸애가 우리에게 고분고분했다.
그저께 저녁에 설쳐 댄 것이 미안했던 모양이었다.
덕분에 나의 분노도 다 풀렸다.


아침에 기천의 내가신장을 서면서 다시금 다짐을 했다.
이 고통을 참는 것처럼 제발 일상에서도 잘 참아내자.
그저께 내가 정도이상 폭발하지 않은 것이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오늘도 그저 평범한 하루 일 것이다.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기쁨은 바람의 냄새처럼 그저 순간적으로 왔다가 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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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길에 |  2020-04-07 오후 3:52:4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사실적으로 묘사하신 내용 아주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고맙습니다.  
tlsadd |  2020-04-07 오후 5:17:4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저도 때때로 성질머리 치솟는데...참 약이 없네요..나이 헛먹었어요.  
팔공선달 |  2020-04-08 오전 7:21:1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산다는 거 별거 아닌데....  
킹포석짱 |  2020-04-09 오전 9:57:0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효녀를 두셧군요,......(.세상은 스쳐지나
가는 바람?)  
짜베 |  2020-04-09 오전 10:10:2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부끄럽습니다.  
虛堂人 |  2020-04-09 오전 11:35:3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저도 마누라가 문제가 많은데...
그 문제 반이상이 저로부터 비롯되어...
그걸 알면서도 좀체로 나아지지가 않으니...
다행 이쁜 딸이 있어서리.....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왜 인생엔 연습이 없는 것인지...
재도전이 안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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